마르다와 마리아의 사랑하는 오빠 나사로는 중한 병으로 인해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두 자매는 깊은 슬픔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큰 시름에 빠져 있는 이 두 사람 앞에 예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그러나 나사로가 죽은 지 벌써 나흘이나 되었습니다. 그의 시체가 안치 되어 있는 무덤 밖으로 시체 썩는 냄새가 흘러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불가능한 일을 일으키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곁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았던 사람들의 반응을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세상에, 죽은 자가 무덤에서 다시 걸어 나오니 얼마나 놀랐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귀신인 줄 알고 두려움에 쌓여 소리를 지르며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가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귀신이 아니라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것이었습니다. 자신을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소개하신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신 기적을 일으키신 것이죠.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시자, 이 모습을 지켜 본 많은 유대인들이 곧 저를 믿고 따르게 되었습니다. 어찌 안 믿을 수 있겠습니까?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났는데 말 입니다. 너무나도 놀라운 광경을 두 분으로 목격한 사람 중에는 바리새인들과 친분이 있던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한 걸음에 달려가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기적에 대해서 보고 했습니다.
여기서 한 번 잠시 생각해 봅시다. 시카고의 어느 한 한인교회에 출석하는 40대 남자 집사님의 장례 예배가 열렸습니다. 그 교회 담임 목사님께서 장례 예배를 집례하는 가운데 싸늘한 주검이 된 그 집사님의 시신을 향하여 “아무게 집사님 일어나십시오!”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분명 숨이 멎고 죽은 것이 확실했던 그 집사님이 관에서 일어나 다시 살아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아마 CNN, NBC, FOX News 할 것 없이 온갖 매체들이 다 이 사건을 취대하기 위해 교회로 모여 들 것입니다. 또한 주변의 한인교회들도 이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서 조사진이라도 꾸리지 않겠습니까? 죽은 사람이 나흘이나 되었는데 다시 살아났다? 이것은 논의의 여지 없이 엄청난 기적 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한 번 살펴 보십시오. 저들은 공회를 소집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회의 했습니다. 이들의 관심사는 “지금 이 사건이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기적인가?”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를 없애버릴까?”하는 것이 이들의 주된 관심사였습니다.
이상합니다. 똑 같은 사건인데 한 쪽은 이 사건으로 인해 예수를 믿게 되었고, 다른 한쪽은 이 사건으로 인해 예수를 위험인물로 간주하고 죽이려 합니다. 47절에 공회가 열렸다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가 셀 수 없이 불어남으로 인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서로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열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들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름으로 현재 로마 정권에 대한 정치적인 쿠데타 세력이 일어나게 되면 현재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권력과 기득권을 잃어버릴 것을 염려 했습니다. 또한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을 못 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 공회에 그 해 대제사장이었던 가야바가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요 11:49) 여러분들은 정말 그렇게도 모르겠소? (요 11:50) 백성들을 위해 이 한 사람을 죽게 해서, 민족 전체를 망하게 하지 않는 것이, 정녕 여러분들에게 유익이 되는 줄을 알지 못하는 것이오” 대제사장 가야바는 예수가 죽는 길만이 이스라엘 민족이 로마 제국에 멸망 당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예수를 따르는 무리로 인해 로마 정부에 대항하는 반역 세력이 일어나게 된다면 로마가 정예부대를 이끌고 와 예루살렘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이는 엄청난 위기 상황인 것이죠.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들은 이러한 상황에 이르지 않기를 바랬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 가야바가 예수 한 사람이 죽는 것이 민족 전체가 망하는 것보다 낫다고 말한 것입니다.
대제사장 가야바의 의견이 반영되어 공회는 예수를 죽이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공회는 나사렛 이단 예수가 죽어야 로마 제국에 대항하는 불온 세력이 사라진다는 이유로 예수를 죽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로 생각하고 따르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무리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라 할지라도 함부로 예수님을 잡아 갔다가는 백성들에게 돌에 맞아 죽을지도 모릅니다. 이에 이들은 어떻게 하면 백성들의 불만을 잠재우고 동시에 예수를 죽일 수 있을지 모의하기 시작 했습니다. 결국 자신을 죽이기로 한 공회의 결정으로 인해 예수님은 다시 드러나게 사역을 하지 않으시고 유대 지역을 피해 사역 하셨습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잡기 위해 수배령을 내렸습니다.
자, 오늘 예루살렘의 정치적 종교적 리더들이 모인 자리에서 결정이 된 회의의 내용과 상황을 보면, 예수님께 결코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수배령이 떨어짐으로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하는 길이 막혀 버렸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중앙 권력으로부터 죽음에 처할 위기에 몰리게 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이 모든 역사가 인간의 뜻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 속에서 그 분의 뜻대로 흘러가고 있었다는 사실 입니다. 즉 겉으로 보면 예수님께 불리한 상황이었으나, 결국에는 이 공회의 회의 결과를 토대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이 완성되게 됩니다. 예수님을 죽이자는 결정을 내리게 한 중요한 역할을 한 대제사장 가야바가 말에 대해서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51-52절 말씀을 보십시오. “(요 11:51)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에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요 11:52)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 즉 가야바가 예수가 죽어야 이스라엘이 산다고 말한 것도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일어난 일로 그의 십자가 대속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민족을 살리는 일을 미리 예언케 하심이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상황은 결코 좋지 않았습니다. 자유로운 복음 전파의 길은 막혔고, 예수님은 공공의 적이 되었습니다. 수배령까지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 가운데 하나님의 계획은 여전히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하늘에서 참새 한 마리가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으면 일어나지 않습니다. 즉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좋지 않게 흘러가고, 어려운 환경이 펼쳐진다 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신 것은 아닙니다. 악한 상황 가운데서도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여전히 우리를 위하여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그분의 뜻을 따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해 선을 이루는 줄을 압니다. 물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은 여전히 불의한 세상입니다. 때때로 어려움도 있고 아픔도 있습니다. 눈물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며, 끝까지 주님의 길에 서 있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에게 약속하신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 선하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일하고 계심을 굳게 믿고,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상황이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 안에 있음을 신뢰하며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