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선한 목자’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선한 목자의 특징은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데 있습니다. 여기서 양들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목숨을 버리신다는 것은 주님의 대속적 죽음, 즉 십자가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세례 요한은 증언 했습니다. 선한 목자 되시는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양들의 죄를 대신해서 자신의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양을 위해 희생하는 선한 목자 그 분이 바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과 같이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가 있는 반면에 ‘삯꾼’이 있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삯꾼은 말 그대로 삯을 위해서, 돈을 위해서 양을 치는 사람 입니다. 삯꾼은 양이 좋아서 양을 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유익을 위해 양을 치는 사람 입니다. 따라서 이리가 양을 잡아먹기 위해 공격해올 때 자신이 피해를 입을까 두려워 양을 버리고 도망칩니다. 그 결과 삯꾼에 의해 보호받던 양은 이리에게 잡혀 먹고 죽게 됩니다. 예수님이 선한 목자라면 삯꾼들은 누구를 의미하는 것일까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처럼 겉으로는 유대인들을 위한 종교적 행위들을 하고는 있지만, 속으로는 자신의 탐욕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사람들의 영혼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자기 밥그릇만 챙기는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종교지도자들 밑에서 지도 받는 유대인들의 영혼은 날로 죽어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14절에 예수님은 다시 한번 자신이 선한 목자이심을 강조하시며 자신과 양은 서로 잘 아는 관계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앞서 요한복음 10장 3-4절을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알아들기까지 합니다. 그만큼 목자와 양들은 서로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속한 양들과 자신이 서로 친밀한 관계에 있음을 말씀 하셨습니다. 15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여기서 양과 자신과의 관계가 마치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신을 알고, 자신이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가 서로 사랑하는 관계이듯이, 또한 하나님과 예수님이 서로 상호 내주 하듯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영혼들은 주님과 서로 사랑하는 관계가 되며, 서로 상호 내주하는 관계가 됩니다. 즉 우리가 주님 안에 있게 되고 우리 안에 주님이 거하시는 관계가 됩니다. 이러한 깊은 친밀함이 주님의 양들에게 주어집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러한 양들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버리신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다시 한 번 예수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이 바로 우리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대목 입니다. 진실로 우리 예수님은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신 선한 목자이십니다.
16절에 예수님은 또 다른 양들이 있음을 언급하셨습니다. 이 양들은 우리에 들지 않는 양들 입니다. 그러나 곧 우리 안에 들어오게 될 양들 입니다. 이들은 누구일까요? 바로 이스라엘 밖의 이방인들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주로 이스라엘 민족을 대상으로 하셨습니다. 요한복음에서도 예수님은 이방인에 대한 선교 사역을 명시적으로 말씀하시거나 명령하신 적은 없으십니다. 그러나 이방인 선교에 대한 구절들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요한복음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 중 하나인 사마리아 여인 구원 사건은 이러한 이방인의 구원에 대한 예수님의 관점을 잘 보여줍니다. 당시 이방인으로 여겨지고 심지어 개와 같이 천하게 취급을 받던 사마리아 사람들을 구원하심으로 예수님은 복음이 유대인이라는 울타리를 뛰어넘어 이방 영혼들을 포함하게 될 것을 말씀 해 주셨습니다. 이들이 바로 16절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 입니다.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우리들도 바로 이러한 양들 가운데 포함 됩니다. 본래 육체적으로 유대인이 아닌 우리들도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께서 돌보시는 양의 무리에 들어오게 됨으로 주님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어주셨습니다.
17절에 예수님은 자신의 희생이 자발적인 헌신임을 말씀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잡아감으로 주님께서 자신의 목숨을 빼앗기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빌라도에 의해서 죽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발적으로 희생이요, 헌신이었습니다. 18절에 예수님은 자신의 목숨을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 아버지에 뜻에 따른 죽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순종의 죽음입니다. 자신의 죽음이 세상에 생명을 주는 유일한 길이라는 사실을 아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의 양들을 사랑하사 친히 자신의 목숨을 십자가에 자발적으로 내려놓으신 것 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죽음은 실로 아름다운 죽음이고 영광스러운 죽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목숨을 십자가에 내려놓는 것이 곧 생명을 되찾는 길음을 알고 계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죽음 그 자체로 끝나지 아니하고 영광스러운 부활로 이어지게 됩니다. 또한 예수님의 부활은 이제 그의 사랑하는 양들의 부활로 전해지는 위대한 사건이 되었습니다. 실로 우리 선한 목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양들을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이 사건은 얼마나 큰 감동이요 영광입니까? 죄인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자발적으로 주신 예수보다 이 세상에서 아름다운 이름이 또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에 대해 믿지 못한 유대인들에게는 예수의 이름이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가 미쳤다고 말하고 그가 귀신들렸다고 주장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믿고 섬기는 예수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는 우리를 사랑하시사 자신의 목숨까지도 아낌없이 십자가 위에 내려놓으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모진 고통과 고난도 다 겪으셨고 살을 찢으시고 피를 흘리시며 죽으셨습니다. 이 놀라운 사랑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예수, 실로 그는 선한 목자로서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우리를 위해 자신의 전부를 내어주신 구원자 예수를 우리가 어찌 찬양하지 않겠습니까?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날마다 우리 선한 목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하며 그 분을 섬기며 예배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