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13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 (요한복음 3장 16-21절)

요한복음 3장 16절은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 중 하나 입니다. 성경 전체를 대표하는 구절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유명한 말씀은 다음과 같은 표현으로 시작 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그런데 이 표현을 조금 더 마음에 와 닿게 해석하면 이렇게 번역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잘나서, 무언가 구원 받을 만한 자질이 있어서, 우리가 하나님께 유익해서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사랑하셨기 때문 입니다.
그렇다면 16절에서 말하는 ‘세상’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바로 유대인뿐만 아니라 모든 이방인을 포함한 온 인류를 가리킵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택 받은 민족이란 자부심이 높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신들만 좋아하시고 다른 나라 사람들은 상종도 안하신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매우 강했습니다. 급기야 유대인들인 이방인들과 겸상도 하지 않고 함께 식사도 하지 않을 정도로 타 민족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오해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그 사람의 인종, 피부색깔, 언어, 문화를 뛰어넘어 온 인류를 사랑하시는 것이죠.
성경은 온 인류를 뜻하는 이 세상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헬라어로 ‘아가페’란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무조건적인 사랑,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사랑 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해서 어디에 써 먹으려고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말씀으로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그 무엇이 부족하시겠습니까? 성경은 다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셨다고 전해주기 위해 여기에 ‘아가페’란 단어를 사용한 것이죠.
그렇다면 하나님의 이 놀라운 사랑은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 밖에 없는 그의 아들을 주셨습니다. “독생자를 주셨으니…” 말이란 것은 정말 입 밖에 내기가 얼마나 쉬운 것입니까? 그러나 실제로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남을 위해 내어준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아들 셋이 있는 어머니가 그 중 하나를 적군이 던지는 수많은 포탄이 바로 앞에서 터지고 총알이 날라드는 전쟁터에 보내야 한다면, 자식이 셋이나 되니까 “하나 즘이야”하고 아무렇지 않게 보낼까요? 아니요. 어느 자식도 보낼 수 없다고 울구불구 난리가 날 것입니다. 그럼 자식이 다섯이면요? 똑같습니다. 그래도 안 됩니다. “내 아들을 죽이려면 차라리 나를 죽여라!” 그게 부모 마음 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들이 하나 밖에 없으십니다. 그래서 독생자 예수 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신의 이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우리를 위해 내어 주셨습니다.
그냥 내어주신 것이 아니라 갖은 수모와 모진 고통을 당하도록 내어 주셨습니다. 우리 죄를 대신 갚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채찍질 당하시고 두 손에 두 못과 두 발에 큰 대못을 박히셨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시는 예수님의 고통이 얼마나 컸겠습니까마는,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십자가에 달려 죽는 그 모습을 지켜보고 계셨던 하나님 아버지는 또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요?
서울 강남의 한 병원에서 수술 받던 25세 남자 청년이 죽고 말았습니다. 사인은 병원 측의 실수였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아들을 잃은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이 과다출혈로 인해 죽어가는 수술실 녹화 장면을 입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려 500번 이상 영상을 보며 “왜 내 아들이 죽었을까? 무엇이 내 아들로 죽게 하였을까?” 찾고 또 찾아 모조리 기록한 뒤 법원에 증거로 제출했다고 합니다. 이미 죽은 아들 입니다. 그런다고 아들이 살아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어머니가 이토록 죽은 아들에 대해서 집착하고 있을까요? 아들에 대한 사랑 때문 입니다.
불완전한 인간이 자식을 향해 갖고 있는 애타는 마음도 이러한데,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신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 예수님을 향한 마음은 얼마나 더 크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이 아픔을 참으셨습니다. 왜요? 세상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멸망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 밖에 없는 아들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18절에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원자, 예수님을 믿는 자는 그의 죄가 사함 받고 구원을 받고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거부하는 자는 그의 죄값을 스스로 치뤄야 함으로 이미 심판을 받은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악한 자들은 결국 자신들의 행위를 감추려고 하다가 결국 심판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악인들이 예수님을 미워한 까닭은 예수님은 빛이시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다가오시면 자기의 악함이 더 잘 드러나기 때문 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진리를 따르는 자는 이 빛으로 나올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반복해서 죄를 짓고 사는 죄인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끊어 내기 위해서 빛이신 예수님께 나와 오시길 원하십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 앞에서 철저하게 자신의 죄를 주님 앞에 내려놓고, 죄로부터 온전하게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로 진리 안에서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