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 요한이 베푸는 세례를 받기 위하여, 이스라엘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요단강으로 모여 들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세례 요한 곁에서 그의 사역을 돕고 그의 가르침을 받는 제자들도 있었습니다.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도 세례 요한의 제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아 본 다음 날, 요한은 자신의 제자들과 함께 있다가 예수님을 또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하고 말했습니다. 이에 스승의 말에 세례 요한의 두 제자가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40절 말씀을 보면 이 날 예수님을 따라간 두 제자 중 한 사람이 바로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 였습니다.
예수님은 두 사람이 자신을 따라오는 것을 보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그러자 예수님을 따라오던 두 사람이 말합니다. “선생님, 지내시는 곳이 어디입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와서 보아라”고 말씀하시며 자신이 사는 곳에 두 사람을 초대 하셨습니다. 이 두 사람은 예수님을 따라 그가 거하시는 곳을 찾아갔고 그 날 예수님과 함께 그 곳에서 지냈습니다. 39절 말씀을 보면, 이들이 예수님의 집에 거한 시간이 열 시 즈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시간은 오늘날로 말하면 새벽 6시에 시작 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따라서 열 시는 오후 네 시 즈음 됩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그 시간에 두 사람은 예수님의 집에 들어간 것이죠.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습니다만, 아마도 집에서 예수님과 저녁을 먹고 오랜 시간 동안 그 분과 함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집에 찾아가 주님과 깊은 대화를 나눈 사람 중 한 사람인 안드레는 예수님께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그의 스승이었던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보고 ‘하나님의 어린 양’,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자’, ‘하나님의 아들’이란 수식어로 불렀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그 자신이 직접 예수님을 만나보니 실로 이 분은 특별한 사람이란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 집에서 나온 안드레는 곧장 그의 형제 시몬이 있는 곳을 찾아 갔습니다. 41절에 보면 “그가 먼저…” 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는 안드레가 예수님을 만난 이후 가장 처음으로 한 일이 다름 아니라 그의 형제를 찾아갔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표현 입니다. 41절을 계속해서 보면 안드레가 그의 형제 시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그런데 이 표현이 영어 성경을 보면 번역이 조금 다릅니다. “We have found the Messiah!” 다시 번역하면 “우리가 메시아를 찾았어!”이죠.
안드레의 감격이 느껴지십니까? 예수님의 집을 떠나자마자 허겁지겁 형에게 달려와서 전쟁의 승전 소식을 전하는 병사처럼, 흥분한 목소리로 그의 형 베드로에게 큰 기쁨의 소식을 전하고 있는 안드레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We have found the Messiah!”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의 가장 큰 소원은 죽기 전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아를 직접 보는 것이었습니다. 안드레는 지금 자신이 바로 그 ‘메시아’를 만났다고 확신하고 기뻐하고 있는 것이죠.
저는 설교를 쓰면서 안드레의 감격을 어떻게 비유해 볼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문득 이런 장면이 들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밤낮 열심히 공부했던 한 학생이 있습니다. 자기가 꿈에도 그리던 대학 합격 발표날, 컴퓨터를 키기 전에 먼저 두 손을 모으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컴퓨터를 키고 대학교 웹사이트에 들어가 대학 합격 여부를 알고자, 자기 아이디랑 비밀번호를 입력해 봤어요. 그리고 엔터키를 쳤습니다. 잠시 화면에 로딩이란 글자가 나옵니다. 그리고 1년 같이 길게 느껴지는 몇 초자가 지나가고 드디어 화면에 글씨가 보입니다. “Congratulations!” 막 기뻐서 자리에서 일어나서 방방 뛰지 않겠습니까? 아무도 없는 방이라도 혼자서 “와!”하고 소리를 지르진 않을까요? 전화기를 찾아서 당장 부모님께 전화하지 않겠습니까? “아빠 회의 중이면 어떻하지? 내가 괜히 방해하는 것 아냐?”, “엄마 지금 손님 맞이하고 있으면 어떻하지? 내가 괜히 유난 떠는 것 아냐?” 이런 생각 전혀 할 틈도 없습니다. 좀 방해하면 어떻습니까? 너무 좋은 소식인데! 감격에 찬 희열이 마음 속에 가득 차고 있는 것이죠.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때, 안드레가 느꼈을 감정… 우리가 상상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대학교 합격 이야기가 가슴에 와 닿지 않으시면, 우연하게 산 복권이 1등 당첨 되었다고 한 번 생각해보세요. 그 날은 길 가다가 넘어져서 쌍코피가 나고 다리에 멍이 들어도, “이게 뭐 대수냐?” 하고 실실 웃으며 남들이 볼 때는 정신나간 사람처럼 그렇게 희죽 거리지 않을까요?
안드레는 그의 형 베드로의 집을 찾아갈 때 어떤 걸음걸이로 갔을까요? “어서 우리 형에게 이 소식을 전해줘야지!”하는 생각에 아마 평소보다 더 빠르고 경쾌한 걸음으로 그의 형을 찾아가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드디어 그토록 찾던 형 베드로를 만나자 안드레는 기쁜 마음에 소리치듯 입을 열었을 것입니다. “We have found the Messiah!” “형, 형은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아마 믿지 못 할거야. 근데말야 형 내 말을 꼭 믿어줘. 우리가 메시아를 찾았어!”
그럼 이제 이 말을 들은 안드레의 형 베드로의 입장이 되어 한 번 이 장면을 생각해 봅시다. 한참 대낮에 열심히 일하고 있던 베드로, 아마도 내일 잡을 고기를 위해 그물을 손질하고 있거나, 바다 위에서 쓸 연장을 손보고 있거나, 가사 일을 돕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한참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는데, 하나 밖에 없는 동생이 허겁지겁 달려와서 가쁜 숨을 몰아내며 하는 말이 “형 우리가 메시아를 찾았어!” 였습니다.
처음 이 말을 들은 베드로는 얼마나 황당 했을까요? 만일 제가 오늘 새벽예배 때 처음 설교를 시작하며, “여러분 우리나라가 드디어 통일이 되었습니다! 남북이 드디어 하나가 되었습니다”하고 말한다면, 설교는 둘째치고 여러분 스마트폰부터 꺼내지 않으시겠어요? “지금 저 목사가 하는 말이 진짜인가? 가짜인가? 저 양반이 강대상에서 거짓말 할 사람은 아닌데? 그럼 진짜 통일이 되었단 말인가? 에이 설마…” 이런 의심 반 기대 반 섞인 마음으로 진위 여부를 확인하지 않겠습니까?
베드로의 마음이 딱 그 마음 입니다. 베드로는 누구보다 자기 동생 안드레를 잘 알고 있습니다. 자기 동생은 평상시에도 종교적 열심이 남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요즘 한참 뜨는 세례 요한을 돕기 위해 요단강 부근에서 생활하며 그의 제자가 된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안드레가 자신을 속이거나 거짓말 할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진짜 안드레 말대로 그가 메시아를 발견한 것일까? 베드로 역시 의심 반 기대 반 섞인 마음을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에 형 베드로의 마음 상태를 눈치 챈 안드레는 곧장 그의 형을 데리고 예수님께로 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베드로를 소개시켜 주었습니다. 그 날 예수님은 본래 시몬이었던 안드레 형의 이름을 반석 혹은 돌이란 의미를 가진 ‘게바’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게바란 이름은 아람어식의 이름이고, 베드로란 이름은 히브리어식의 이름 입니다. 이 당시 갈릴리에서는 아람어가 주로 사용되었기에 아람어로 된 ‘게바’라고 부르신 것 입니다.
성경에서 한 사람의 이름이 바뀐다는 것은 그의 삶이 변화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람은 이름이 아브라함으로 바뀌었습니다. 그의 아내 사래는 사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던 ‘사울’은 ‘바울’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이처럼 성경에서 이름이 바뀐 사람들은 하나 같이 그들의 삶이 변화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시몬의 이름을 게바 곧 베드로로 바꾸어 주셨다는 것은 그의 삶이 변화하였음을 의미합니다.
안드레는 자신이 만난 메시아를 그의 형 베드로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그 결과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났고, 그로 인해 그의 인생은 이전과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우리 모두가 바로 이 베드로와 같은 경우 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도 안드레와 같이 누군가의 소개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기 때문 입니다. 이제 우리는 또 다른 사람들에게 안드레와 같이 예수님을 소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변화 받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이 시대의 또 다른 베드로가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안드레와 같이 예수님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