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24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 (디모데후서 2장 14-19절)

얼마 전에 한국에서 온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한 번도 들어 본적 없는 이름의 발신자였습니다. 편지를 열어보니 신천지에서 포교 활동하기 위해서 보낸 편지였습니다. 저 멀리 떨어진 한국 땅에서 얼굴도 모르는 교회 목사에게 신천지를 소개하기 위해서 보낸 편지… 편지를 쓰레기통에 버리며 마음 한 구석이 씁쓸 해졌습니다. 이런 생각 때문에 그랬습니다. “이단도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기독교의 역사를 살펴보면 아주 오래전부터 교회 안에서는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변질시키고, 교회를 무너트리려는 거짓 교사들이 끊임없이 일어났습니다. 디모데가 목회하고 있던 시절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로부터 무려 약 2천년 전 사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모데가 목회하고 있는 에베소 교회에도 거짓 교사들은 존재 했습니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거짓 교사들을 대하는 바른 태도를 전해주었습니다. 먼저 바울은 디모데가 저들과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권면 했습니다. 14절 입니다. “(딤후 2:14) 너는 저희로 이 일을 기억하게 하여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이는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함이니라” 바울은 거짓 교사들과 논쟁하는 것은 아무런 유익이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한국에서 살 때 이따금씩 가가호호 돌아다니며 전도하던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이 초인종을 누를 때가 있습니다. 이전에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제가 믿고 있는 것이 진리라는 자신감이 있었기에 나가서 그들과 대화하면 어느 정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단도 혹시 논리적으로 성경에 대해서 논쟁을 펼쳐 보신 경험이 있으십니까? 이단과의 논쟁은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의 문제로 곧장 변하기 마련 입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서로 끊임없는 말다툼 속에 곁에 서서 이 모든 논쟁을 호기심 있게 듣고 있던 애꿎은 초심자들만 다치기 마련 입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교회 안에서 거짓 교사들과 말다툼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특별히 이 당시 에베소 교회 안에 교묘히 들어온 거짓 교사들은 “끝없는 신화와 족보’에 대한 이야기들로 교회를 소란스럽게 했습니다. 지금에야 그리스-로마 신화 즉 제우스 신이나, 아테네 여신, 포세이돈 이야기들이 사람들이 만들어 낸 신화로 취급되고 있습니다만, 이 당시만 해도 로마 제국에서 그리스 신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종교였습니다. 따라서 교회 안에 들어온 이단들 가운데는 여호와 하나님을 그리스 로마 신화의 많은 신들과 같이 유대 지역을 담당하는 지역 신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하는 거짓 교사들도 있었습니다. 그리스-로마 신화와 성경의 세계관을 섞어보려고 한 것이죠.
또한 유대교 출신의 거짓 교사들은 구약성경을 강조하며 교회 안에 들어와서 할례를 받아야 구원 받는다고 주장하며, 안식일과 음식 규례를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고 성도들을 나무랐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정 반대로 예수님께서 구약의 모든 요구를 완성하셨기 때문에 구약은 폐지 되었고, 구약성경은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이단들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1세기 초대교회에 다양한 이단이 등장한 이유는 아직 완전한 신약성경을 가지고 있지 않은 시절이었기 때문으로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거짓 교사들은 자신들이 지어내거나 모아둔 책들을 하나님의 계시라 주장하며 교인들을 현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실제로 성도들 가운데는 이러한 거짓 교사들의 꾀임에 넘어간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이미 바울은 에베소 교회 안에도 거짓 교사들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16-17절을 보십시오. (딤후 2:16)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저희는 경건치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딤후 2:17) 저희 말은 독한 창질의 썩어져 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후메내오와 빌레도는 에베소 지역의 소문난 이단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헛된 변론을 좋아하는 자들이었으며, 자신들이 가진 엉터리 논리로 사람들을 현혹시켰습니다. 이들이 가진 오류가 무엇이었습니까? 18절 입니다. “(딤후 2:18) 진리에 관하여는 저희가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하므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 여기서 이 거짓 교사들이 주장하는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는 말은 부활의 역사성을 부인한 것입니다. 즉 이들은 영혼은 선하다고 생각하고 반대로 몸은 악하다고 생각하는 일명 영지주의로 불리는 이단들이었습니다. 이 당시 유행하던 플라톤의 헬라 철학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인간의 선한 영혼이 악한 육체에 갇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따라서 이들이 볼 때 기독교에서 말하는 육체의 부활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죠. 따라서 이들은 육체의 부활 교리를 거부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오시면 악한 육체는 사라져 버리고, 영혼만 부활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도신경 가운데, “몸이 다시 사는 것과”라는 구절을 통해서 이미 잘 아는 바와 같이 이들의 육체 경시 사상은 성경의 가르침과 어긋난 잘못된 가르침이어습니다. 이처럼 당시 유행하던 플라톤 철학과 섞어서 말씀을 변질시켜 버린 것이죠. 놀랍게도 이러한 모습은 2천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악마는 뿔이 달린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지 않습니다. 광명한 천사의 모습으로 자신을 속이고 우리에게 다가 옵니다. 그리고 복음의 진리를 왜곡시키고 성도들의 마음을 현혹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바울의 권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옳게 분변 하도록 늘 부지런히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어리석은 거짓 교사들을 상대하려면 끝이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들과 논쟁하며 말다툼 하는데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권면 했습니다. 진리를 왜곡시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교회를 분열시키려는 거짓 교사들과의 논쟁은 무익한 변론이라는 것이죠.
대신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다음과 같은 삶을 살기를 권면 합니다. 15절 입니다. “(딤후 2:15)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단과 같이 변질시키거나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왜곡하지 않고 본래 하나님의 의도하신 바대로 바르게 따라 갈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바울은 디모데가 하나님 앞에 부끄럼 없는 일꾼으로 인정 받는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바울 자신이 그러 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 뿐만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도 인정 받는 일꾼이었습니다. 여기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하나님 앞에 자신을 드리기로 힘쓰라는 것은, 마치 구약 시대 때 제사장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제물에 흠이 있는 것, 눈 먼 것, 상처 난 것, 다리 저는 것은 드리지 못했던 모습을 떠올립니다. 바울은 디모데가 그의 삶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기를 바랬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삶이 되기 위하여 하나님께 인정 받는 자, 부끄러울 것이 없는 자 즉 흠 없는 삶을 살아가기를 권면 했습니다.
19절 입니다. “(딤후 2:19)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 여기서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기독교의 기독 진리들을 의미합니다. 또한 말씀으로부터 나온 바른 가르침과 신앙 고백 위에 서 있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비록 이 세상에 거짓이 만연하고 이단들의 공격이 끝없이 일어나 교회를 상처 주기도 하지만, 결국 교회는 하나님의 견고한 터로 서 있으며, 성도들은 성령의 인치심을 받고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서 하나님께서 저들을 아시고 거짓으로부터 우리들을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바울은 마지막으로 말합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이것이 사도 바울의 권면 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 속에 성령을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증해 주시고, 뿐만 아니라 우리들을 아시고, 우리들과의 깊은 교제를 통해 우리의 삶을 지켜주시고 끝까지 인도해 주십니다. 날마다 하나님과 같이 깊은 교제를 나누며, 선한 목자 되신 주님을 따라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