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15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디모데전서 6장 6~10절)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살아가는 이유는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잘 섬기고 교회에서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만일 우리가 이렇게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이유가 단순히 건강하게 오래 살고, 부자가 되기 위한 것이라면, 그래도 괜찮을 걸까요?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과 물질의 관계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먼저 6절에 ‘지족’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권면 합니다. 어떤 분들은 이게 ‘자족’이란 단어를 잘못 쓴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족’이란 완전한 자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지족은 단순히 물질의 소유를 통해 오는 만족이 아니라, 하나님과 교제하는 가운데 ‘경건한 마음’을 통해 오는 것입니다. 지족하는 마음이 있는 자는 세상의 물질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재물에 대한 유혹을 떨쳐 버리고,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 입니다. 그는 자신이 가진 것이 적다고 불평하거나 부족함을 느끼며 살지 않고, 오히려 적은 소유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풍족한 마음으로 삶을 사는 사람 입니다.
시편 23편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고백한 다윗의 경우를 보십시오. 그는 사실 가난한 집안의 막내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부유한 집안은 자식들이 아니라 하인들을 통해 양을 돌보게 하는데, 이새의 집은 그럴 형편이 아니라 자신의 막내 아들인 다윗으로 양을 돌보게 했습니다. 형들이 전쟁에 나갔을 때도 막내 아들인 다윗에게 심부름을 시켜 도시락을 전해주게 했습니다. 그리고 시편을 보면 다윗 스스로도 자신을 가리켜 가난한 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백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 했습니다. 그가 가진 물질이 다른 사람이 부러워할만큼 상대적으로 많은 상태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가난한 목동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마음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그로 인해 그는 이 세상 그 무엇도 대신 할 수 없는 영적인 풍요함을 주 안에서 누린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만족하는 자는 생활에 필요한 것 이상으로 부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에게 진정한 행복이란 물질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서 오는 것임을 알기 때문 입니다.
기독교가 가난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결코 우리가 가난하게 살려고 노력하라는 가르침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삶 속에서 최선을 다하며 그 속에서 주어진 것들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이 참된 지혜라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이렇게 주님께서 우리 삶에 주신 것들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삶이 바로 천국에서 사는 삶과 같다는 것이죠.
7-8절 말씀을 봅시다. “(딤전 6:7)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딤전 6: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우리는 이 손에 빈손으로 태어납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동전 하나 없이 태어납니다. 또한 우리는 그와 같이 빈손으로 이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래서 죽음 사람이 입는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매일매일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한 줄로 알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죽어서 떠날 때, 이 세상에서 가지고 갈 수 있는 것들이 있다면 그러한 것들을 잘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하나님 앞에 가지고 갈 것은 무엇입니까? 결국 우리의 영혼과 마음 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무엇보다 우리의 심령이 세상 사는 동안에는 청결하고 경건하게 하나님을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도록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만족할 줄 아는 자세를 가지라고 권면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을 보면, 일주일 치, 혹은 한 달치 음식을 구한 것이 아니라,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더 많이 쌓아놓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보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우선순위를 갖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참된 모습이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9절을 봅시다. “(딤전 6: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인간의 마음 속 욕심은 밑 빠진 독과 같습니다. 아무리 채우려 해도 채워지지 않는 항아리 입니다. 우리가 이 욕구를 제어하지 못하면 부하게 살아가기 위한 삶을 사는 것에 지나친 관심을 두게 되고, 실제로 그것을 얻기 위해 모든 시간을 할애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처럼 돈과 재물을 위해 사는 삶을 사는 자는 죄악의 올무에 빠지게 됨을 경고 했습니다.
재물에 대한 끊임없는 욕구는 사람으로 하여금 욕망에 눈이 멀게 만듭니다. 물질적인 만족을 얻기 위해 사람을 속이고, 사람을 짓밟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되고, 결국 하나님과의 교제 단절로 인해 영적인 죽음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결국 9절 말씀처럼 그는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더 많은 재물을 쌓기 위해 살아가는 삶이 이처럼 영혼의 멸망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경계 합니다.
10절 말씀을 봅시다 “(딤전 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쇠로 만든 날카로운 칼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닙니다. 칼은 가치 중립적입니다. 요리사가 든 칼은 이롭고, 도둑이 든 칼은 해롭습니다. 돈도 마찬가지 입니다. 재물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돈과 재물은 가치 중립적 입니다. 그러나 돈을 사랑하는 마음은 분명 악한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해로운 것인지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했습니다. 즉 이 세상 모든 악의 뿌리가 바로 돈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돈을 사랑하며 모든 관심을 거기에 쏟아 붓는 것은 모든 악의 근원이 되며 결국 믿음 생활을 파탄시키고 자신의 양심마저 마비시켜 버립니다. 이들은 심지어 신앙의 대상이신 하나님마저 돈을 얻기 위한 도구로 전락시켜 버립니다. 즉 이들은 신앙보다 재물에 더 마음이 가 있기에 신앙을 잃어버리게 되고, 스스로 영적 가책을 느끼게 되어 근심하며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잠시 있다가 없어질 이 세상의 재물 특히 돈을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헛된 것임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영원한 것을 위해 영원하지 않은 것을 포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무엇이 진정 우리 삶의 목적인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만물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분만을 사랑하고 주님을 위해 살아가는 자가 바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 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에 만족하는 자세를 훈련하십시오. 내가 가진 것과 다른 사람의 것을 비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 주신 분량에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돈을 사랑하지 말고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그것이야말로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야 할 바른 길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