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14 권위에 반응하는 올바른 자세 (디모데전서 6장 1~5절)

초대교회는 지금과 많이 다른 배경 안에 놓여 있었습니다. 특별히 1세기 로마 제국 안에서는 노예제도가 공공연히 시행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바로 이 노예 제도하에 있는 그리스도인들 즉 종의 신분을 가진 성도들에 대해 교훈해 주었습니다.
1절에 나오는 ‘멍에 있는 종들’이란 바로 자유를 박탈 당하고 주인의 권위 아래 놓인 노예들을 의미합니다. ‘멍에’란 짐을 끌기 위해 동물의 목에 메는 기구를 가리킵니다. 즉 ‘멍에 있는 종들’이란 표현은 이 당시의 노예들이 짐승과 같은 취급을 받았음을 잘 보여줍니다. 로마 제국은 타국과 전쟁을 많이 하였으므로 식민지로부터 전쟁의 노예로 끌려 오는 사람들도 있었고, 또한 주변 약속 국가로부터 팔려온 노예들도 있었습니다. 또한 로마 제국 안에 거주하던 가난한 자유민들 가운데서도 자신의 빚을 청산하지 못하여 결국 노예로 전락해 버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 당시 로마 제국에 노예가 얼마나 많았는지 자유 시민의 숫자보다 무려 4배나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당시 교회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 가운데서도 노예 계층의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을지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로마 제국 안에 기독교가 들어오게 되었을 때, 교회 안에는 자유자와 노예들이 함께 머물러 있게 되었습니다. 복음 안에서는 자유자나 종이나 아무런 차이가 없기 때문 입니다. 그 결과 자유자와 종은 한 아버지를 둔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이러한 기독교의 특성을 악용하여 자신이 처해 있는 위치를 망각하고 주인에 대한 의무를 게을리 하는 자들이 생겨났습니다. 예를 들면 자기 집주인과 같은 교회를 출석하는 노예가 자신의 주인의 시중을 들지 않거나, 집안 청소 등 본래 자신의 주된 업무를 소홀히 하여 주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들이 벌어지게 된 것이죠. 이에 로마 제국 내에서는 노예가 기독교인이 되면 버릇이 없어지고 교만해진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주인들 사이에서는 노예들이 교회를 다니지 못하게 하고 예수를 믿지 못하게 방해하는 일들도 일어났습니다.
바울은 기독교가 말하는 자유란,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여 주어진 임무를 게을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충고해 주었습니다. 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딤전 6:1) 무릇 멍에 아래 있는 종들은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지니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아무리 그리스도인 가운데서 주인과 노예가 한 형제가 되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자신에게 주어진 직무는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합니다. 바울이 말한 것과 같이 이로 인하여 하나님의 이름과 주님의 말씀이 사람들 사이에서 훼방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회 다니면 교만해지고, 직무를 태만하게 한다는 소문이 난다면 그 누가 교회를 칭찬하겠습니까? 바울은 도리어 노예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인을 마땅히 공경하라고 했습니다. 이는 이들이 잘못된 행실로 인해 세상에서 욕을 먹음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성경의 가르침에 손상을 입거나 손가락질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 입니다.
복음이 주는 진정한 자유가 있다하더라도 자신의 직무에 태만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자신의 주인에게 불손하게 행하거나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여 주인에게 손해를 끼치는 일은 복음의 가르침이 아님을 바울은 말해 주었습니다. 바울은 도리어 성도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여 불신자들의 본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이 게으르거나 불성실한 것은 하나님 교회를 비난할 거리를 세상에 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주인이든지 노예이든지 그 신분의 상관 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성실할 것을 권면 했습니다.
2절 말씀을 봅시다. “(딤전 6:2) 믿는 상전이 있는 자들은 그 상전을 형제라고 경히 여기지 말고 더 잘 섬기게 하라 이는 유익을 받는 자들이 믿는 자요 사랑을 받는 자임이니라 너는 이것들을 가르치고 권하라” 바울은 노예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의 주인이 같은 그리스도인이라고 경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더욱 잘 섬기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자신의 주인이 주 안에서 한 형제라 하여 자신의 직무에 게으르거나 주인에 대하여 거만하게 행동해서는 안되고 도리어 그가 자신과 같은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임에 감사하며 더욱 열심으로 섬길 것을 권면 했습니다. 또한 자신의 봉사로 유익을 얻을 자가 결국에는 자신의 형제이기에 자신에게 맡은 일을 더욱 성실하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3절을 봅시다. “(딤전 6:3)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아니하면” 사도 바울은 여기서 ‘다른 교훈’을 이란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이는 이단들의 가르침을 의미합니다. 에베소 도시 안에도 복음을 변질 시키는 이단들이 이미 존재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바른 말’ 즉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이단의 가르침에 빠진 사람을 향하여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4절에 먼저 저는 교만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신앙생활하지 아니하고, 자기 변론에 따라 자기 눈에 좋아 보이는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 입니다.
바울은 “저가 교만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즉 그는 바른 진리를 떠났기 때문에 아무 것도 모르는 셈이 됩니다. 진정한 경건을 버렸으니 겸손이 있을리 없습니다. 그럼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의 교훈을 떠난 자에게 남는 것은 무엇입니까? 4절을 이어서 보면 저들에게는 “변론과 언쟁”,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만 남게 됩니다.
하나의 절대적인 분명한 진리가 사라지면 여러가지 거짓 선생들이 서로 자기 스스로 진리라 주장하게 됩니다. 그러니 서로 분쟁하고 다툼과 분열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사도 바울은 이러한 이단들의 다툼에 교회가 빠지지 않도록 진리를 붙들 것을 권면한 것입니다.
또한 이 시대에는 성경을 가지고 다른 이들을 비판하고, 여러 교리들을 자기 나름대로 주장하며 교회를 분열 시키려 하는 거짓 교사들이 존재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자들을 주의 시켰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이 바로 5절에 있습니다. “(딤전 6: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교회를 분열 시키는 거짓 교사들은 마음이 부패한 자들이며 이미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잃어버린 자들입니다.
이러한 거짓 교사들, 이단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즉 종교를 통해 자신의 배를 채울 더러운 이익의 도구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거짓 교사들과 이단의 공통점 입니다.
참된 경건을 갖춘 성도는 오직 그리스도만을 위해 살아갑니다. 바울처럼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어떤 고난도 기꺼이 감수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아름답게 성도들을 섬기는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그러나 거짓 교사들과 이단들은 자신을 높이고 우상화시켜 스스로를 하나님처럼 신의 자리에 앉고 무리를 자신의 수족처럼 부리며 노예처럼 취급합니다. 그리고 결국 종교를 자신의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으려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교회 안에 진리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말씀으로 우리 생활을 다시금 다잡아야 합니다. 우리가 받는 은혜와 믿음을 결코 더러운 세상 이익을 취하는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을 나타내고, 이웃을 섬기는 자세로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하나님과 양떼를 위해 자신을 온전히 드릴 수 있는 삶이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된 경건의 삶의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