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19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어떤 곳인가 (요한계시록 21장 1-8절)

모든 이야기에는 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에서 아담을 창조하시므로 시작한 인류 역사도 그 끝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이 세상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절 말씀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습니다. 여기서 없어졌다는 말은 존재자체가 사라졌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발로 밟고 서 있는 이 땅과 머리 위에 있는 하늘이 사라져 버립니다. 우리는 이 세상이 영원할 것이라 생각하고 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되면 저 푸르른 하늘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도 다 사라집니다. 그래서 성경은 없어질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살지 말라고 가르치고 계신 것이죠. 비록 지금은 우리가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지만, 우리 마음만큼은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야 합니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지고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이 나타납니다. 이단 ‘신천지’가 여기서 자기들의 이름을 따왔습니다. 신천지라는 개념자체는 너무도 성경적이어서 좋은 말인데, 이단들이 이상하게 사용하다 보니 교회 내에서 사용하기 부자연스러운 언어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새롭게 주실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새롭게 하십니다. 온 피조물들도 이 날이 오기를 사모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8장 21절 말씀을 보면, (8: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풀도 더 이상 마르지 않습니다. 꽃도 더 이상 시들지 않습니다. 나무의 과실도 썩어지지 않는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게 됩니다.
1절 말씀을 보니 한 가지 독특한 점이 바다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요한이 말하는 ‘바다’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Sea 가 아닙니다. 오늘날에는 과학이 발달해서 우리가 ‘바다’하면 멋진 요트나 쿠르즈 위에서 여유롭게 피서를 즐기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고대시대의 바다는 정복하지 못한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또한 요한계시록에는 이 바다가 악의 세력이 출몰하는 근원지로서 자주 등장합니다. 사단을 따르는 짐승이 바다에서부터 나왔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의 세력이 ‘바다’로도 표현 되었습니다. 따라서 오늘 1절에 ‘바다’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문자적인 의미에서 Sea 태평양, 대서양 같은 바다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악의 근원 ‘The origin of Evil’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석하는 것이 더 맞습니다. 하나님께서 굳이 많은 물이 있는 ‘바다’를 없애실 이유가 없는 것이죠. 새 하늘과 새 땅은 악을 눈 씻고 찾아봐도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완전한 선만이 존재하는 새로운 세상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 새 하늘과 새 땅이 펼쳐지고 나서 2절 말씀에,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 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열한 사도들과 500명의 제자들 앞에서 하늘로 승천하여 올라가신 장면이 성경에 나옵니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은 우리가 죽으면 우리가 자연스레 하늘에 올라간다고 생각합니다. 죽음을 앞둔 기독교 환자들도 “우리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요.”하고 말합니다. 물론 우리가 이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는 천국이 하늘에 계시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기도문에서도 우리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하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오히려 우리가 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이 하늘에서부터 내려 옵니다.
중요한 것은 천국이 하늘에 있느냐, 땅에 있느냐 하는 위치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2절에 보니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성이 어디서부터 나옵니까?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는 거에요. 그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하나님이 계신 그곳이 바로 천국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께서 하늘에 계시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하늘 나라에서 다시 만납시다.”하고 말하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닌 것이지요. 그러나 더 정확한 성경적인 개념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영원토록 살게 될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곧 천국은 하늘 위에 있게 되는 것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이 펼쳐졌을 때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말씀 드립니다만, 천국이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는가 안 계시는가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거하시는 그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오늘 사도 요한은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장면을 마치 무엇처럼 표현하면요, 새 신부가 결혼식장에서 입장하는 장면처럼 묘사합니다. 2절 말씀을 봅시다.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결혼식을 앞둔 신부가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화려한 귀금속으로 자기 몸을 장식 하듯이, 새 예루살렘도 빛나고 화려한 모습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이제 막 결혼식을 끝낸 신부가 신혼집을 찾아갑니다. 남편이 그 동안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신혼집… 그녀는 들뜬 마음에 어떤 집일까? 혼자 달콤한 상상을 하곤 했습니다. “크진 않더라도 남편과 새로운 가정을 시작할 수 있을만한 좋은 보금자리였으면 좋겠다…” 하고 이런저런 생각을 한참하며 차를 타고 가고 있는데, 남편이 이제 내리라고 합니다. 그녀 앞에 나타난 집은 생각보다 너무 아름다운 집이에요. 2층 집인데 겉에서 봐도 집이 너무 세련되고 예쁜 거에요. 집 앞 풀들도 깔끔하게 정리 되어 있습니다. 집에 들어가 봤더니 냄새부터 좋아요. 부엌도 딱 내가 원하는 스타일입니다. 방도 여러 개 있고 집 사이즈도 마음에 듭니다. 이 새색시의 마음이 어떠하겠어요? 사랑하는 남편과 새로 시작하는 신혼생활을 막 꿈꾸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반대로 남편이 차에서 내리라고 해서 내렸더니, 무슨 구한 말에나 있을법한 토담집으로 데리고 간다면 그 새색시 마음이 얼마나 무겁겠습니까? “이런 곳에서 애들은 어떻게 키우냐?” 당장 이 걱정부터 하지 않겠어요?
유대인의 결혼 풍습은 남녀가 먼저 약혼을 한 후, 신랑 될 남자가 1년 동안 신혼집을 마련하고 준비를 하고 신부를 맞이하러 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4장에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새 예루살렘이 바로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와 영원토록 살기 위해 준비해 놓으신 신혼집 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에 드디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해 놓으신 신혼집이 공개된 것입니다.
3절 말씀에 보좌에서 큰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아담의 범죄 이후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살 수 없었던 우리가 이제 다시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된 것입니다. 거룩하시고 흠이 없으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한 때 죄인이었던 피조물들과 함께 한 공간에서 살아가신다는 것… 여러분 이 자체가 말로 다할 수 없는 놀라운 영광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그 분의 백성이 되어 그토록 사모하던 주님과 함께 영원토록 살게 됩니다.
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하나님께서 그 동안 우리가 고새하며 수고한 모든 눈물을 닦아주실 것입니다. 천국에서는 더 이상 슬퍼서 눈물 흘릴 일이 없습니다. 그곳에는 오직 영원한 기쁨과 즐거움만이 가득합니다. 학생들에게 “천국에 가면 뭐가 좋을까?” 물어보았더니 더 이상 시험을 안 쳐도 되니까 천국이 좋다고 합니다. 직장 다니시는 분에게 물어보니까 더 이상 일 나가지 않아서 좋다는 거에요. 내가 당하고 있는 고통과 괴로움에서 참 자유를 얻는 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천국에는 더 이상 장례예배 치를 일이 없습니다. 다시는 사망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한 목사님께서 시골에 집회가 있어서 내려갔다가 우연히 그 교회에 나이가 지긋이 든 할머니 한 분이 성경 읽는 것을 보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성경을 읽을 때 한 가지 독특한 점이 이름만 읽습니다. “아브라함… 아브라함…이삭… 이삭…. 야곱…야곱” 그래서 목사님이 궁금해서 “집사님 왜 사람 이름만 읽으세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하시는 말씀이 “이 사람들이 다 천당에 있을텐데 이름이나 외워가야죠..”하고 말했다는 거에요. 우리 앞서 간 믿음의 선배들… 우리의 식구들… 우리의 믿음의 가족들 형제들이 다 거기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천국에는 ‘고통’도 없습니다. 질병이 없습니다. 그 흔한 감기도 걸리지 않습니다. 당뇨나 고혈압, 풍치, 관절염, 무릎통증, 암 같은 질병들도 하나도 없습니다. 천국에는 환자가 없기 때문에 병원도 필요가 없습니다. 약도, 의사도 필요가 없습니다. 이 땅에서 고치기 어려운 병에 걸려 평생을 고생한 사람도 천국에 가면, 더 이상 그 병으로 고생할 이유가 없습니다. 모든 질병이 사라집니다. 육신의 장애도 다 사라지는 것이죠. 보지 못하는 시각 장애를 가진 사람도 다시 보게 됩니다. 이것이 천국의 능력이요 소망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천국으로 인도해 가실 것입니다. 6절에 하나님은 자신을 알파와 오메가로 소개하셨습니다. 알파는 헬라어의 첫 번째 알파벳입니다. 오메가는 헬라어의 마지막 알파벳입니다. 영어로 말하면 알파는 A, 오메가는 Z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시작과 마지막 되시며, 처음과 나중이심을 말씀하셨습니다. 즉 창세기 1장 1절에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며, 마지막 때에 만물을 새롭게 재창조하실 분도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수 샘물을 주십니다. 생명을 주는 물이니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귀한 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값없이 마실 수 있도록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생명수를 ‘누구나’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나 ‘아무나’ 마실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7절 말씀에 오직 ‘이기는 자’들이 이것을 유업으로 얻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기는 자는 누구일까요? 우리는 그 대답을 성경 요한일서 5장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5장 4-5절 말씀에 보니 (5: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5: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이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을 이기게 하는 힘과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수를 값없이 마시게 됩니다. 그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주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한 자들 즉 그의 이름을 믿지 아니한 자들은 어떻게 됩니까? 8절 말씀을 봅시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그들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못하고 오히려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 즉 지옥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의 이름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은 자들에게는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게 되는 놀라운 특권이 주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그들의 죄가 씻음 받고 새로워진 하나님의 자녀만이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