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06 또 회개하지 아니하고 (요한계시록 16장 1-9절)

요한계시록에는 3가지 시리즈의 재앙이 등장합니다. 인 재앙, 나팔 재앙 그리고 대접 재앙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요한계시록 16장이 그 가운데 세 번째 재앙 시리즈인 대접 재앙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대접 심판이 바로 ‘마지막 재앙’입니다. 왜냐하면 이 재앙으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가 끝나기 때문입니다. 이제 더 이상의 심판은 없습니다. 이 대접 심판 이후 남은 것은 최후의 심판 밖에는 없습니다. 일곱 천사가 각각 손에 금으로 만든 대접, 즉 큰 그릇을 손에 들고 있습니다. 그 일곱 그릇 안에는 각각 하나님의 진노가 가득히 담겨 있습니다.
먼저 1절을 한 번 보겠습니다. 요한은 “성전”에서 나오는 큰 음성을 듣게 됩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성전’이란 단어를 사용할 때 그것은 눈에 보이는 건물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전은 우리가 앉아서 예배 드리는 예배당이 아닙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성전’이란,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는 장소 입니다. 즉 성전은 하나님께서 머무시는 곳입니다. 1절에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났다는 것은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알려줍니다. 1절에 하나님께서 일곱 천사들에게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 이에 하나님의 명령을 좇아 일곱 천사가 각각 손에 들고 있는 대접을 쏟아버립니다.
첫 번째 천사는 대접을 ‘땅’에 쏟아 버립니다. 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16:2) “첫째가 가서 그 대접을 땅에 쏟으며 악하고 독한 헌데가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나더라” 첫 번째 천사가 하나님의 진노가 담긴 금대접을 땅에 쏟아 버리자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 즉 오른손과 머리에 666 숫자를 받은 사람들, 그리고 우상을 경배하는 사람들에게 악하고 독한 헌데가 나기 시작합니다. 여태까지는 간접적으로 환경을 치셨던 하나님의 진노가 이제는 직접적으로 죄인들의 몸을 칩니다. 이것은 출애굽기에 나오는 모세의 열 가지 재앙과 동일합니다. 처음에는 물이 피가 되는 자연 환경을 치십니다. 그러나 애굽 왕 바로가 완악한 마음을 먹자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들의 몸에 독한 종기가 나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그와 동일한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죠.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고, 짐승을 따르고 자기의 욕심을 따라 우상을 섬긴 자들의 몸에 독한 종기가 생깁니다.
옛날에 한국에서도 전쟁이 끝난 이후 어린 아이들이 종기를 많이 앓았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생활환경이 너무 열악하고 불결하다 보니 그랬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고약’을 늘 붙이고 다녔습니다. 요즘에도 이명래 고약이 유명하죠? 종기에 어느 정도 고약을 붙이고 다니면 이제 종기를 짜야 할 때가 옵니다. 어머니들이 아이들을 꽉 붙잡고 무지막지하게 고름을 짜 냅니다. 아이들이 아프다 울고불고 난리를 쳐도 안 놓아줍니다. 짜는 어머니나 참는 아이나 서로 다 고통입니다. 이게 종기가 하나만 나도 이렇게 몸과 마음이 고생인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난다고 생각해 보면 얼마나 끔찍할까요?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 회개하지 않고 끝까지 짐승을 경배한 사람들에게 바로 이런 끔찍한 재앙이 임하게 됩니다. 그러나, 애굽에 재앙이 임할 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재앙이 임하지 않았던 것처럼,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하고 따르는 성도들에게는 이 재앙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천사가 쏟는 재앙은 끝까지 죄를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은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천사가 대접을 바다에 쏟습니다. 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16:3) “둘째가 그 대접을 바다에 쏟으매 바다가 곧 죽은 자의 피 같이 되니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이 죽더라” 바다는 본래 푸른 색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진노가 바다 위에 쏟아지자, 그 푸른 바다가 붉은 피로 변해버렸습니다.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이 죽어 버렸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상징으로 가득한 책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바다’라는 공간은 우리가 물리적으로 하는 태평양, 대서양과는 다른 바다입니다. 다음주에 살펴볼 말씀입니다만 우리 요한계시록 17장 1절을 한 번 보겠습니다. (17:1)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큰 음녀가 어디 앉아 있습니까? 많은 물 곧 바다 위에 앉아 있습니다. 여기서 바다라 하는 것은 사탄이 다스리고 통치하는 세상을 의미합니다. 어떻게 이것을 알 수 있습니까? 요한계시록 17장 15절을 보면 더 그 의미가 정확하게 나와 있습니다. (17:15) “또 천사가 내게 말하되 네가 본 바 음녀의 앉은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 음녀가 않은 많은 물 곧 바다가 바로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 입니다. 바다는 사탄의 세력으로 다스리는 이 세상 나라입니다. 다시 요한계시록 16장 3절로 돌아옵시다. 자 하나님의 진노가 담긴 대접을 들고 있는 두 번째 천사가 왜 바다에 붓는지 이제 좀 더 명확해 졌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사탄의 세력과 영향력 아래 있는 이 세상에 쏟아 지는 것이죠. 이로 인해 바다가 죽은 자의 피같이 됩니다.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이 죽게 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고 사탄을 따르던 자들의 최후가 바로 죽음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 앞에 영원한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4절을 보니, 세 번째 천사가 하나님의 진노가 담긴 대접을 강과 물 근원에 쏟습니다. 그러자 피로 변해 버립니다. 강과 물 근원은 사람이 마시는 물입니다. 우리가 가게에 생수를 사러 갔는데 물이 피로 변했다고 한 번 상상해 봅시다. 얼마나 끔찍합니까? 음식을 하기 위해 냄비에 물을 담았는데 이 역시 붉은 피 입니다. 이 사건에 대하여 7절 말씀을 보니까 제단이 뭐라고 말합니까? (16:7) “또 내가 들으니 제단이 말하기를 그러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심판하시는 것이 참되시고 의로우시도다 하더라” 제단에서 하나님이 하신 이 일이 의로우시다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제단은 제사를 드리는 어떤 기구 입니다. 그런데 지금 마치 사람이 말하듯이 제단을 의인화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갑자기 제단에서 이런 목소리가 나왔을까요? 이 비밀을 풀기 위해서는 요한계시록 6장으로 돌아가봐야 합니다. 우리 6장 9-10절 말씀을 한 번 찾아 보겠습니다. (6:9)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6:10)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9절 말씀 하번절을 보니 하나님의 말씀을 위하여 죽임 당한 순교자들의 영혼들이 어디에 있습니까? 제단 아래 있습니다. 10절을 보니 저희가 자신들의 피를 신원하여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오늘 본문인 요한계시록 16장으로 돌아옵시다. 왜 하나님은 사람들이 마실 물을 피로 바꾸셨을까요? 악인들이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하나님의 진노가 악인들로 하여금 그 피를 마시게 하신 것입니다. 그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 16장 5-6절 말씀입니다. 함께 5-6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16:5) “내가 들으니 물을 차지한 천사가 가로되 전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거룩하신 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16:6) 저희가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저희로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니이다 하더라”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피를 흘린 것에 대하여 ‘피’로 갚고 계십니다. 우리가 억울해 하는 것, 하나님이 다 갚아 주십니다.
8절 말씀을 보니 네 번째 천사가 하나님의 진노가 담긴 대접을 해를 향해 쏟습니다. 그러자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웁니다. 우리가 여름에 온도가 100도만 넘어가도 고열에 위험신호가 뜹니다. 사람들이 고열로 쓰러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뜨거운 사우나 혹은 찜질방에 들어가도 사람이 그 열로 고생은 할지언정 타 죽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니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워 죽일 정도니 그 열이 얼마나 뜨거운 열이겠습니까? 생각만 해도 끔찍한 재앙입니다.
이 재앙이 왜 일어났습니까? 짐승을 따르고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죄를 회개하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세상 속에서 살아갔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무시무시한 재앙을 당하면서도 그들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에게 고통을 가한다는 이유로 하나님을 욕하고 원망했습니다. 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16:9)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며 또 회개하여 영광을 주께 돌리지 아니하더라” 재앙 가운데서도 세상 사람들은 마음을 돌이키기는 커녕 하나님을 훼방하고 모독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고통 가운데서도 도리어 하나님을 모독하고 회개할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음으로써 이들은 자신들의 악함을 드러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