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26 세상 나라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요한계시록 11장 1-13절)

1. 하나님의 보호하심-
왜 천사는 사도 요한에게 성전을 측량하라고 했을까요? 성경에서 무언가를 척량할 때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무너진 것을 재건하고 회복하기 위해 척량합니다. 둘째는 반대로 파괴할 목적으로 척량할 때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척량한 곳을 마치 울타리로 쌓듯이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척량의 행위는 마지막 세 번째 목적인 ‘보호’를 위하여 하는 척량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그의 백성들을 보호하시기 위한 척량이 이뤄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 즉 가운데 거하는 신자들이 하나님의 보호아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의 무시무시한 재앙과 심판 속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의 보호하심을 받고 있습니다.
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11:2)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2절에 보니 성전 안과 다르게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않고 그냥 둡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본문에서 나타나는 척량의 의미는 ‘하나님의 보호하심’ 입니다. 따라서 척량하지 않은 성전 밖 마당에 위치한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모든 이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방인은 문자적으로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불신자와 신자의 삶은 지금 눈으로 보면 별 차이 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만, 영적으로 볼 때 신자들은 하나님의 보호하심 아래 있고 불신자들은 그 보호하심 밖에 있다는 이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2절을 보니 이 이방인들이 성전 밖 마당에서 오히려 거룩한 성을 짓밟습니다. 즉 불신자들이 믿는 자들을 하나님의 백성들을 공격하고 고난에 빠뜨립니다. 그 기간이 얼마나 됩니까? 마흔 두 달 입니다. “마흔 두 달”은 삼 년 반 입니다. 여기서 쓰인 마흔 두 달, 즉 삼 년 반이란 기간은 문자적인 의미로서의 정확한 삼 년 반이 아니라 고난을 상징적인 숫자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엘리야가 땅에 비를 멈춘 기간이 바로 삼 년 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마흔 두 해 동안 살았습니다. 또한 다니엘서에서는 마지막 찾아오는 환난의 때를 가리켜 한 때, 두 떼, 반 때라고 합니다. 이것을 합치면 합치면 삼 년 반이 나옵니다. 즉 본문에 기록된 마흔 두 달, 삼 년 반이란 이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부터 그분의 재림까지 교회가 세상의 악한 세력에게 환난을 받는 기간을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교회가 하나님께 인치심을 받고 척량된다는 것이 고난에서 자동적으로 면제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신자의 삶에도 여전히 고난은 찾아옵니다. 그러나 앞서 1절에서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교회는 고난을 받아도 여전히 하나님의 보살핌을 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구원 받은 백성들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고난의 때를 반드시 이겨낼 것입니다.
2. 증인의 사명-
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11:3)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여기서 나오는 두 증인이 누구일까요? 어떤 사람들은 장차 인류 역사 속에 나타날 위대한 두 명의 선지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두 증인은 장차 나타날 특정한 두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두 증인은 바로 교회를 상징합니다. 그럼 왜 교회를 ‘두 증인’이라고 표현 했을까요? 율법에 따르면 재판에서 증거의 진실성을 입증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증인이 바로 두 사람 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진실되게 증거하는 교회를 ‘두 증인’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1) 권세를 주심-
3절에 보니 두 증인에게 하나님께서 권세를 주십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권세와 능력이 있을 때만이 증인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권능을 받지 못했을 때는 귀신도 잘 내어쫓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예수님이 잡혀가자 걸음아 나 살려라 하며 도망가서 두려움에 벌벌 떨고 숨어 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이처럼 연약한 제자들과 사십일 동안 다시 한 번 함께 지내시며 그들에게 예루살렘에 머물며 하나님의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마침내 오순절 약속하신 성령이 제자들 위에 임하자 그들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과거처럼 도망 다니지 않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로 귀신도 내어쫓고 병든 자를 고치는 등 놀라운 사역들을 해냈습니다. 교회도 이처럼 하나님께서 주시는 권세가 있을 때 증인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충만을 사모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우리의 힘만으로는 사단의 권세를 이길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권세, 성령의 능력으로만 증인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4절에 보니 두 증인을 두 감람나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감람나무는 기름을 얻는 올리브나무 입니다. 즉 기름 부으심이 있는 교회, 하나님께로부터 권능을 받은 교회를 나타냅니다. 교회가 아무리 성도 수가 작고 건물이 허름해 보일지라도, 여전히 교회는 사단이 가장 두려워하는 공동체 입니다. 왜냐하면 교회에는 하나님께서 부어 주시는 특별한 기름 부으심,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두 증인은 또한 두 촛대라 불립니다. 두 촛대는 어두운 곳에서 빛을 밝히는 증인의 역할을 감당하는 교회를 말합니다. 두 감람나무, 두 촛대라 함은 성령에 기름 부으심이 충만한 교회가 어두운 세상에서 빛을 밝히는 사명을 감당할 것임을 보여줍니다.
그럼 증인의 역할을 감당하는 교회에게 주어진 권세가 어떤 것들입니까? 5-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11:5) “만일 누구든지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할지니 누구든지 해하려 하면 반드시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11:6) 저희가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세를 가지고 물을 변하여 피 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5절에 “입에서 불이 나서 원수를 소멸한 사건”과 6절에 “하늘을 닫아 비가 오지 못하게 한 사건” 이렇게 두 가지가 나옵니다. 지금 이 두 사건은 구약의 엘리야 선지자가 보여준 대표적인 권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또한 6절 하반절에 ‘물을 변하여 피가 되가 되게 한 사건’과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친 사건’ 들은 바로 모세가 행한 권세를 가리켜 하는 말입니다. 교회가 모세와 엘리야가 행한 권세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권능으로 증인의 역할을 감당할 것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금도 세계곳곳에서 놀라운 하나님의 손길들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기적이 아니고서야 설명하기 어려운 일들이 교회를 통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교회가 증인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권세를 주셨습니다. 코너스톤 교회 역시 복음의 증인되는 역학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성령의 권세를 충만하게 부어주시길 축복합니다.
2) 1,260일-
3절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권세를 받은 교회가 굵은 베옷을 입고 있습니다. 굵은 베옷은 회개의 상징물 입니다. 구약성경을 살펴보면 유대 왕들은 죄를 깨닫고 회개할 때마다 자신의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대신 입었습니다. 본문에서 두 증인이 굵은 베옷을 입고 있는 것은 교회가 세상을 향해 ‘회개하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3절 말씀에, 두 증인이 이 회개의 메시지를 예언하는 기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기간이 얼마나 됩니까? ‘일천이백육십일’ 입니다. 오늘날은 한 달이 30일, 31일, 28일 이렇게 다양합니다만, 성경에서 한 달은 정확하게 30일 입니다. 따라서 1260일을 30일로 나누면, 몇 달이 나옵니까? 마흔 두 달이 나옵니다. 앞서 2절에서 살펴본 바로 그 동일한 기간입니다. 즉 불신자들이 거룩한 성을 짓밟는 바로 그 동일한 마흔 두 달의 기간 동안, 하나님께서는 두 증인인 교회를 세우시고 그들에게 권세를 주십니다. 그리고 교회로 하여금 이 세상을 향하여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라 예언하는 증인의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3. 고난과 승리-
드디어 하나님께서 정하신 마흔 두 달, 1260일이 지나갑니다. 이 기간 동안 한편으로는 이방인들이 거룩한 성을 짓밟았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두 증인이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를 받고 회개의 메시지를 예언 해 왔습니다. 7절 말씀을 보니 이 기간이 끝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교회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승리하고 교회를 죽음으로 몰아넣습니다. 이 두 증인의 시체가 사흘 반 동안 묻히지 못합니다. 10절 말씀에 보니 불신자들이 두 선지자가 죽은 것을 보고 즐거워하고 기뻐합니다. 얼마나 좋아했는지 서로 선물교환까지 합니다. 이처럼 악한 세력과 세상은 교회를 핍박하고 교회가 무너질 때마다 기뻐합니다. 그들은 교회를 넘어뜨리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산 교회는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본문 11-1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11:11)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11:12)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저희가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앞서 삼 년 반은 구원받은 백성들이 고난 받는 기간을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여기 11절에 이들이 삼 일 반 동안 죽음에 머물게 됩니다. 이 기간 후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생기를 다시 넣어 주십니다. 그러자 죽었던 두 증인, 두 선지자가 다시 두 발로 일어서게 됩니다. 망한 줄 알았던 교회가 다시 한 번 든든하게 서게 되는 것이죠.
지금 당장은 교회가 사단의 세력에 밀려 다 죽어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증인의 역학을 감당하다 큰 핍박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오뚜기” 입니다. 수백 번 수천 번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오뚜기가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뚜기의 밑을 무겁게 하여 아무렇게나 굴려도 오뚝오뚝 일어서는 것이죠. 교회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교회의 가장 기초가 예수 그리스도 되시기에 그분의 생명과 능력으로 교회는 쓰려져도 언제든지 일어서게 되는 것 입니다. 교회의 생명력이 얼마나 놀라운지요 13절 후반절 말씀에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 원수들도 교회의 이 생명력 앞에 놀랍니다. “아, 진짜 교회에 뭔가 있구나?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구나?”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통해 보게 되는 것이죠.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는 건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교회 입니다. 요한계시록 11장을 자세히 살펴보면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가신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갑니다. 교회가 이 세상으로부터 고난을 당합니다. 교회가 하나님이 주신 권세로 증인의 역할을 감당합니다. 교회가 악인들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교회가 마지막에 다시 부활하여 하늘로 올라갑니다. 우리 예수님처럼 이 땅에서 증인으로 살아가다가 고난을 받고 죽임 당한 교회. 교회는 또한 예수님처럼 부활과 승천의 영광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들로 부름 받은 교회입니다. 우리는 쓰러져도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죽어도 다시 부활하는 오뚜기 교회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마흔 두 달, 1260일이 지나면 곧 이 고난도 끝이 올 것 입니다. 최후 승리가 우리 앞에 이미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날을 기다리며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된 교회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