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16 죽임 당하신 어린양을 경배하라 (요한계시록 5장 8~11절)

요한계시록 4장에서 하나님을 찬양했던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오늘본문에서는 어린양 앞에 엎드려 경배합니다. 예배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으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구절을 통해 어린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곧 성자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8절 말씀을 보면 향이 가득한 금대접이 등장합니다. 금대접을 가득 채운 향은 다름아닌 성도의 기도였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어디로 갈까 궁금하셨죠? 우리의 기도는 굴뚝을 타고 하늘에 올라가는 연기처럼 허공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성도들의 기도는 어지러운 책상에 쌓여있는 서류들처럼 아무대나 널브러져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기도를 귀하게 여기십니다. 요한계시록 8장 3절에 보면 성도가 기도할 때 천사들이 그 기도를 받아서 하나님께 갖다 바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천사들을 통해 하나님 앞에 놓여진 금대접에 모아집니다. 특별히 성도들의 기도가 본문에서 ‘향’으로 비유되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향은 종교적 의식을 위해 쓰이는 것으로 달콤한 냄새가 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달콤한 향기 나는 꽃 내음만 맡아도 스트레스가 풀리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같이,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하나님 아버지께 기분 좋은 향기가 됩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기쁨이 된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순간, 우리는 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향기 나는 꽃을 꺾고자 정원으로 달려가는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그러나 어린아이는 아주 무지하고 어려서 이런저런 꽃들을 꺾습니다. 그가 꺾은 것 중에는 잡초도 섞여 있습니다. 꽃과 잡초를 가진 어린이는 아버지께서 기꺼이 받으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문 앞에서 만난 그의 어머니가 잠시 아이를 부릅니다. “애야 잠시 그 꽃을 내게 다오.” 그리고 어머니는 아이가 가져온 다발을 풀어 잡초를 모두 골라내고 향기로운 꽃만 남깁니다. 아이가 꺾은 것보다 더 향기나는 꽃들로 잡초 대신 채워서 아름다운 꽃다발을 아이에게 쥐어줍니다. 그리하면 아이는 그 꽃다발을 들고 아버지에게 달려갑니다. 성도의 기도가 아름다운 향이 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어머니와 같이 우리의 연약한 기도를 도우시는 그리스도의 중보로 말미암아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님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그로 인해 우리 기도 속에 잡초는 제거 되고 꽃만이 남겨져 있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꽃과 같이 아름다운 향기가 되어 하나님 앞에 놓여진 금대접에 담아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결코 허공에서 사라지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향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믿음을 가지고 담대하게 기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9-10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5:9)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5:10)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9절에 나오는 새노래는 새로운 가사나 멜로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감격으로 부르는 찬양을 의미합니다. 왜 우리가 어렸을 때는, 세상에 나랑 상관 없는 사랑노래가 뭐 저리 많은가 하다가도, 정작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연애하고 사랑에 빠지면서 그 노래가사가 다 내 가사처럼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찬양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일학교 때부터 수도 없이 부르던 그 찬양의 가사들이 복음의 참 의미를 깨닫고 나면 전혀 다른 노래로 다가오게 됩니다. 어느 새 찬양을 부르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고 찬양의 가사들이 마치 내 영혼의 고백처럼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이전에 부르던 노래가 아니라 전혀 새 노래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그의 삶이 변한 사람들은 이처럼 ‘새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
어린양께 새 노래로 찬양하는 이유는 크게 세가지로 구분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 어린양이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심을 찬양합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의 오른손에 있는 책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인을 뗀다는 것은 역사가 진행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따라서 오직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이 두루마리의 인을 뗄 수 있었습니다. 그 어린양을 찬양합니다. 둘째로, 십자가 죽음을 통해 우리를 피로 사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죄로 인해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던 우리들을 대신하여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습니다. 그가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보배로운 피 값으로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죄에서부터 우리를 사셨습니다. 마치 노예 시장에서 속전을 지불하고 사듯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자신의 피로 값을 지불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피로 사셔서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죄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이 되었습니다. 이 놀라운 그리스도의 은혜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셋째로, 우리들을 나라와 제사장 삼으심을 찬양합니다. 죄에서 구원해 주신 것도 감사한 일인데,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고 그 나라에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토록 왕 노릇 할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말미암아 이십사 장로들은 감격에 젖어 어린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새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이십사 장로들의 찬양이 끝나자, 이어서 천사로 구성된 찬양대의 찬양이 이어집니다. 11-1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5:11)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5:12)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네 생물과 장로들의 찬송을 이어받아 이번에는 그들을 둘러싼 천사들이 찬양하기 시작합니다. 찬양대가 한 100명만 되도요 몇 만 명 앞에서 공연할 정도로 그 소리가 대단합니다. 그런데 11절을 보니 찬양을 부르고 있는 천사 찬양대의 수가 나와 있습니다.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이 표현은 그 수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는 말입니다. 천사 하나가 찬양해도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평생 잊지 못할 만큼 아름다운 소리일 것입니다. 하물며 천천 만만의 천사들이 찬양하고 있으니 이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는 들을 수 없는 가장 아름다운 찬양일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로 어린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 엄청난 실력을 자랑하는 천사 찬양대 Angel’s choir 가 부르는 찬양의 가사가 무엇입니까? 12절 말씀을 보니, 그 가사의 내용인즉슨 ‘능력, 부, 지혜, 힘, 존귀, 영광, 그리고 찬송’입니다. 천사들은 총 7가지의 내용을 예수님께 돌리며 찬양합니다. 일곱 가지의 찬양이라는 것은 이들이 그리스도가 받으실 완전한 찬양을 올려드리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최고의 찬양을 받으시기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자, 마지막으로 세 번째 찬양대가 등장합니다. 1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5:13)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지면 물의 파장이 호수 전체로 퍼져가듯이, 보좌를 중심으로 시작된 찬양이 네 생물, 이십사 장로, 수많은 천사들 그리고 모든 만물로 퍼져 갑니다. 13절을 보니 하늘과 땅과 바다에 충만한 모든 만물이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지금은 우리 중 몇 분만 찬양대 하시죠? 주님이 다스리는 그날이 되면 우리 모두가 찬양대가 될 것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이사야 43:21)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우리가 지음 바 받은 목적입니다.” 어찌 보면 앞서 말한 천사들의 찬양보다 우리가 드리는 찬양은 음정도 불안하고 박자도 틀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천사는 부르지 못하는 찬양을 인간이 부를 수 있다는 사실 알고 계세요? 천사 중에는 죄를 짓고 용서함을 받은 존재가 한 명도 없습니다. 오직 인간만이 하나님의 은혜로 죄 용서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직 죄 용서함을 받은 우리만이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 다함 없는 사랑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내 죄를 사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부를 때 우리는 천사도 부르지 못하는 놀라운 찬양을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모든 것 변하고 그 피로 구속 받았네 하나님은 나의 구원 되시오니 내게 정죄함 없겠네.” “예수는 우리를 깨끗케 하시는 주시니 그의 피 우리를 눈 보다 더 희게 하시네.” 천사들은 이런 찬양을 부를 수가 없습니다. 오직 죄 용서함을 받은 우리 같은 인간만이 부를 수 있는 찬양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천사를 향하여 ‘내 아들이라’고 한 적이 없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인간을 향하여서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하고 불러 주셨습니다. 자녀가 부르는 노래가 아빠에게는 가장 큰 기쁨입니다. 세계 3대 테너가 부르는 몇 천불 짜리 공연보다 내 어린 아들 딸들이 불러주는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이 노래가 아빠의 귀에는 더 아름답게 들리는 거에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부르는 찬양은 비록 천사들의 찬양보다 음악성은 떨어질지 모르지만 하나님께 드리는 기쁨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찬양의 이유되시며 찬양의 대상 되십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베푸신 놀라운 은혜가 우리로 하여금 그분을 찬양케 합니다. 우리 주님은 모든 찬양의 주인 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아름다운 향기가 되는 기도를 올려드리고, 그분께 기쁨이 되는 아름다운 찬양을 드리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