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09 풍요보다는 평온함이 낫다 (전도서 4장 1~6절)

솔로몬은 전도서를 통해 자신이 이 세상에서 관찰했던 여러가지 부조리한 현실 세계를 고발합니다. 이 세상에는 자기의 이기심을 채우기 위해 지위와 힘을 가지고 사람들을 괴롭히고 못살게 구는 부당한 자들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악인들은 타인이 가진 권리는 전혀 배려하지 않고 부당한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약자의 삶을 착취합니다. 솔로몬은 지혜의 왕이었습니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똑똑하고 지식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솔로몬이 왕이 되어 통치하던 이스라엘에서도 인간이 다른 인간을 학대하고 짐승처럼 취급하는 부조리한 일들이 빈번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솔로몬은 권력을 가진 자들이 사회적 약자를 학대하는 부조리가 자신이 통치하는 시대 뿐만 아니라 인간이 사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도 동일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자가 자신의 권력과 권위를 남용해서 사람들로부터 강탈하는 일,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고 그들을 짓밟는 일, 사람들의 물질과 시간에 막대한 손해를 입히고, 딱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긴박한 상황에 있어도 몰인정하게 모른 체하고 그들의 살 길을 막는 모든 횡포가 여기 포함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 믿음의 한 가족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같은 이스라엘 동족을 착취하고 압제하고 약탈하는 것은 율법으로 엄격히 금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압제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탐욕을 부리며 부정적인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고 사람들을 짓밟는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솔로몬 왕은 이처럼 압제자들로부터 학대 받는 약자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한글 성경에는 1절에 ‘학대 받는 자’라고 단수로 되어 있습니다만, 원문에는 이 단어가 복수형으로 되어 있어서 해 아래서 압제자에게 학대 받는 자들이 많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더욱 솔로몬을 안타깝게 했던 것은 이들은 억울한 사연, 고통의 눈물, 한 맺힌 가슴을 안고 살아가지만, 아무도 이들을 위로해줄 사람이 없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으로 읽어보면 4장을 쓰는 솔로몬 왕의 마음이 “어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하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답답하고, 안타까운 황을 보는 듯이 말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옆에서 저렇게 억울한 일을 당해 학대를 받아 땅 바닥에 주저 앉아 서럽게 눈물 흘리고 있는데, 그의 곁에서는 아무도 그의 마음을 위로해 주는 사람, 불쌍히 여기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지혜자 솔로몬은 자신이 가진 지혜와 지식으로도 도무지 해결 할 수 없었던 이러한 세상의 부조리를 보며 가슴 속에 밀려드는 답답함과 슬픔의 감정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죠.
본래 히브리인들의 문화 가운데는 고난 당한 자를 찾아 위로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마치 우리나라도 상을 당한 분이 있으면 문상을 찾아가지 않습니까? 병원에 입원한 분이 계시면 병문안을 가고… 그와 마찬가지로 히브리인들은 서로를 동족 즉 형제로 인식하고 형제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여겨야 한다는 고유의 미덕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이러한 미덕이 사리져 버리고 부패한 권력층의 압제와 학대, 협박과 폭력이 난무하고 있는 세상을 바라보며 가슴 아파 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부조리한 이 세상에서 공의로우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손길을 끝까지 붙들고 의지해야 합니다.
솔로몬은 지금 세상을 얼마나 부조리하고 불합리하게 보고 있는지, 2절 말씀을 보면 그는 죽음을 동경하는 듯 자신의 심경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이토록 거짓과 죄악이 난무하고 고통 당하고 압제 당하며 사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으니 차라리 지금 살아 있는 자들보다 오래 전에 죽은 자들이 더 낫다고 까지 했습니다. 심지어 3절에는 이 세상에서 태어나서 이러한 압제와 학대를 당하며 사느니, 차라리 아예 태어나지 않고 이러한 부조리를 당하지 않은 자가 더 복되다고까지 말했습니다. 솔로몬은 세상의 불의한 사건들, 해 아래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권세자들의 학대와 압제를 보며 암울한 절망감에 사로 잡혔습니다.
세상의 부조리에 대해서 언급하던 솔로몬은 4절부터는 또 다른 이야기를 예로 듭니다. 어느 한 사람이 그는 비록 자신이 하는 일이 대단한 것은 아닐지라도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갖고 한 평생 성실하게 일을 했습니다. 남들 놀 때도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다 보니 점점 일에 익숙해지고 자기 분야 에서 점차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이처럼 열심히 살아간 사람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박수를 받고 더욱 더 격려를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솔로몬은 4절에 말합니다. 이렇게 쉬지 않고 수고하고 성공하면 이웃들은 그를 축하해 주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시기하고 질투 합니다. 겉으로는 박수치고 웃어줄지 모르지만, 속으로는 아니라는 거에요. 속으로는 시기하고 그 사람 없을 때는 뒤에서 그 사람을 욕하고 비방한다는 거에요. 솔로몬은 이에 해 아래서 이렇게 열심히 일해서 성공한 결과가 이웃들에게 미움과 시기를 당하고 뒤에서 욕 먹는 것이라면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살아야 하는가? 하고 질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입장에서는 주위 사람들에게 기쁨을 안겨줘야 할 성공이 오히려 인간 관계를 분열 시킨다는 점에서 해 아래서의 수고와 그 모든 성취 조차도 지나가는 바람처럼 허무한 것이라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더 황당한 것은 미련한 사람들은 그처럼 자기 일에 열심인 사람들, 성공한 사람들을 보며, “난 저렇게까지 열심히 살 수는 없어. 저 사람들은 머리가 좋아서 그래. 저 사람은 운이 좋아서 저 자리까지 간거야.”하면서 시기만 할 뿐 정작 자기 자신은 게으르게 빈둥거리며 일하기 싫어하고 있다는 거에요. 5절에 “(전 4:5) 우매자는 손을 거두고 자기 살을 먹느니라”는 표현에서 ‘손을 거둔다’는 말은 일을 하지 않는 휴식 상태, 즉 게으른 상태를 말합니다. 성경에서 이런 자는 결국 가난과 궁핍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또한 5절에서 ‘자기 살을 먹는다’는 표현은 자기 재산만 축내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솔로몬은 남의 성공은 시기하고 질투하며 정작 자기 일에 게으른 사람은 미련한 자라고 이야기 합니다.
6절이 오늘 본문의 결론입니다. “(전 4:6)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으려는 것보다 나으니라” 이 구절을 쉬운 성경으로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 “(전 4:6)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안한 것이 양손에 가득하고 고통과 번뇌가 있는 것보다 낫다.” 지나친 욕심을 가지고 많은 재물을 쌓기 위해 동분서주 하는 사람보다는, 성실한 삶을 통해 얻은 적은 소득이라도 만족할 줄 알고 그 안에서 기쁨과 평안을 누리는 사람이 지혜로운 자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세상의 부귀와 영화를 추구할 때 인생은 필연적으로 세상의 부조리함으로 인해 허무에 빠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성공하기 위해 애쓰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주의 백성은 하나님 앞에서 주님을 의지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성실하게 살아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많은 재물을 소유하려고 살아가기 보다는, 현재 내가 가진 것이 적어도 만족할 줄 알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뻐하며 살아갈 수 있는 참 된 지혜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