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02 바람을 잡는 것과 같다 (전도서 1장 12~18장)

솔로몬이 전도서를 통해서 반복적으로 전달하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바로 해 아래 살아가는 인생의 허무하다는 사실입니다. 솔로몬은 절대적 허무에 빠져 있는 인간의 상황을 지적하며, 이러한 허무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해 위에 계신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따라서 솔로몬이 전도서에서 해 아래 인생이 허무하다는 이 하나의 주제를 방법만 다르게 조금씩 바꿔가며 전도서 전체를 가는 이유가 허무함 자체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솔로몬은 책의 초반부와 중반부에 먼저 절대적 허무에 빠진 인생을 여러가지 예증들로 보여줌으로써 이 글을 읽는 모든 독자가 결국에는 하나님을 찾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 솔로몬은 자기 스스로를 ‘전도자’로 지칭합니다. 이 단어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길거리에 나가서 “예수 믿으세요”하고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전도자란 말은 ‘격언이나 속담을 모으는 자’, ‘회중을 소집하는 자’, ‘회중에게 설교하는 자’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본문에 사용된 전도자란 ‘사람들에게 자신의 지혜를 설파하는 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13-15절까지 이어지는 내용에는 솔로몬이 여태까지 인생을 살면서 삶의 깊은 통찰과 지혜를 추구해온 결과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솔로몬은 지혜의 왕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지혜와 총명한 마음을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너의 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너의 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즉 이 세상에서 살아간 사람 중 예수님을 제외하고 솔로몬보다 지혜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어느 뉴스에서 미국 상위 1% 학생들을 모아두고 인터뷰한 장면을 보니, 어떤 학생은 자신은 태어나서 여태까지 읽은 책 중에 아직 이해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고 대답했습니다. 얼마나 대단한 지혜 입니까? 아무리 그래도 이 시대의 뛰어난 수재들을 다 모아 놓아도 솔로몬 보다는 미련 합니다.
그 지혜의 사람 솔로몬이 13절에 말합니다. “(전 1:13)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궁구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만, 그가 기도 후에 반짝하고 한 순간에 세상의 모든 지식을 통달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솔로몬은 독서와 사색 그리고 연구를 통해서 세상의 지혜와 이치를 깨달았을 것입니다. 13절 말씀에 기록된 “마음을 다해서”를 보십시오. 그는 최선을 다해서 지혜 얻기를 추구했습니다. 어떤 일들에 대한 연구를 했습니까? 13절을 보니 하늘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들에 대해서 연구 했습니다. 인간의 모든 역사와 인간의 실존에 대해서 연구한 셈이죠. 그가 연구한 논문의 결론이 다음과 같습니다. 13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이는 괴로운 것이니…” 솔로몬이 열심을 다해 인간의 삶을 탐구해 보니, 해 아래서 인간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결국 “괴로운 것”이라는 이 두 단어로 압축 요약 되었습니다. 이 말은 다시 해석하면, ‘고통스러운 것’, ‘불행한 것’, ‘비참한 것’ 입니다.
그가 인간과 세상을 연구한 결과를 더 자세히 살펴봅시다. 14절 입니다. “(1:14)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이 세상 모든 인간 중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었던 솔로몬은 심혈을 기울여서 인생을 관찰하고 연구 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해 아래서 모든 것이 허무하다는 평가를 내렸습니다. 솔로몬이 보니까 인생을 사는 것이 고통을 수반하면서도 결국에는 인간에게 아무런 유익도 가져오지 못하고 바람처럼 지나가버리는 무의미하고 비참한 것임을 발견했습니다. 솔로몬은 인생에 대한 평가를 한 줄로 요약 했습니다.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바람이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고, 모양도 형상도 없습니다. 바람은 오늘은 이리로 불었다가 내일은 저리로 부는 것 입니다. 솔로몬은 인생의 수고를 마치 바람을 잡으려는 것으로 비유하며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고 헛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15절에 이어서 말하기를 “(전 1:15) 구부러진 것을 곧게 할 수 없고 이지러진 것을 셀 수 없도다” 했습니다. 인간이 이 세상에서 살면서 ‘고쳐지기를 바라는 모든 잘못된 상태’를 말합니다. 부정부패, 범죄행위, 사회적 불평등 이런 문제들은 불완전하고 죄인인 인간 실존으로 인해 절대로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은 우리가 사회 전체적인 것을 보기 전에 사실 우리 개인의 삶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내 자신만 알고 있는 부조리한 모습들이 있습니다. 사람들 몰래 나의 안위와 평안을 위해서 짓는 죄들이 있습니다. 솔로몬은 인간은 자기 스스로 판단하기에도 “그래 나의 이런 부분은 고쳐야지”하고 생각할지는 몰라도 결코 고칠 수 없다고 말하는 것 입니다. 그만큼 인간의 활동은 부질 없고 무의미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사람이란 얼마나 연약하고 무능한 존재인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평생 지혜를 얻기 위해서 공부를 쉬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전 1:16) 내가 마음 가운데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큰 지혜를 많이 얻었으므로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자보다 낫다 하였나니 곧 내 마음이 지혜와 지식을 많이 만나 보았음이로다” 그는 스스로 자신이 이전에 있던 지혜자들보다 더 많은 지혜와 지식을 만나보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해 아래서 모든 지혜를 알고자 하는 노력과 시도 조차도 결국에는 바람을 잡으려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책을 읽고 깨달음이 있으면 자유함을 얻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는 그의 많은 지혜와 지식이 인생에 대한 번뇌와 근심 만을 더해주었다고 고백합니다.
오늘도 사람들은 다 바쁘게 무엇인가 진지하게 탐구하고 무언가에 미쳐 살아갑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이 모든 것이 다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해 아래에 있는 것들은 다 허무한 것들 입니다. 이러한 인생의 허무함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은 오직 영원히 썩지 않을 보배를 위해 사는 것입니다. 허무한 이 세상에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 한 분 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배재한 인간은 절망 밖에 남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이 허무한 세상의 유일한 소망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그 분을 귀중하게 여기고 생명처럼 지키며 그 분과 교제함으로 허무한 삶이 아닌 영원토록 의미 있는 하루를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