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24 견고한 진을 파괴하는 비밀병기 (고린도후서 10장 1~11절)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신앙의 인물 다섯 명을 뽑아야 한다면 단연코 바울은 그 안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가 쓴 서신들은 기독교의 핵심 교리들을 잘 요약하였고, 그의 사역은 기독교의 역사를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확장 짓는 결과를 가지고 왔습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 Paul 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것만 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바울을 존경하고 있고, 그가 한 사람의 신자로서 이 세상을 살아간 모습을 동경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앙의 인물들이 그러하듯이, 바울도 자신의 시대에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바울을 조롱하고 비하했습니다. 아마도 바울은 얼굴이 잘 생긴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외모를 놀렸고, 또한 웅변술과 수사학이 발달할 곳에서는 바울의 언변이 좋지 않아는 이유로 그를 무시하기도 했습니다. 바울은 글을 잘 쓰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문체에서 강력한 힘을 느끼곤 했는데, 막상 실제로 그를 만나보니 그는 언변이 시원하지 않았습니다. 글에는 힘이 있으나, 대면하였을 때는 자신들이 기대했던 모습과 달라 실망했던 것이죠. 바울은 사람들의 이런 편견과 무시 속에서 비판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사람들의 이런 평가에 연연해 하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향해 부드러움과 관용으로 대했습니다. 1절 말씀을 보십시오. “(고후 10:1) 너희를 대하여 대면하면 겸비하고 떠나 있으면 담대한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 오늘 한글 성경은 원문에 비해 부드럽게 해석된 것입니다. 본래 원문을 보면 “너희를 대하여 대면하면 ‘비천하고’ 떠나 있으면 ‘겁쟁이 개와 같이 짖는’ 나 바울은” 이란 뜻 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그의 대적들이 자신을 비난하고 조롱할 때 사용하던 표현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바울이 함께 있을 때랑 떨어져 있을 때랑 너무 다른 이중적인 사람이라고 비난 했습니다. “바울 당신은 해야 말을 면전에서는 하지 못하고,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만 겨우 편지로 말하는 비겁한 겁쟁이 입니다.”하고 비난한 것이죠.
바울은 비록 자신을 미워하고 대적하던 원수들이 이처럼 자신에 대해 이야기 했을지라도 이제 자신은 그들에 대하여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온유함과 관용함으로 교인들을 대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정말 당신들은 내가 그대들과 대면할 때 “담대”하기를 원하는 것이냐고 되묻습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과 함께 지낼 때 그들을 향해 부드럽게 대한 이유는 대적들이 비난하는 것처럼 겁이 나서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동네 건달들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협박하기 위해 칼을 꺼내놓고 손에 쥐고 다닙니다. 칼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사람들을 겁줍니다. 그러나 진짜 고수는 검을 늘 검 집에 넣고 다닙니다. 그리고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함부로 검을 꺼내지 않습니다. 고수가 검을 꺼내는 순간 적은 반드시 목숨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칼이 그 사람이 가진 실력이라면, 칼집은 그의 인품과도 같습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과 함께 있을 때 불 같이 화를 낼 줄 몰라서 안 낸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방식으로 교회를 다스리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성도들을 대한 것입니다.
바울은 원수들의 부당한 비난에 맞서서 3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이 말은 그가 이 땅에 육신의 몸을 입고 살아가는 것은 맞지만, 육신에 따라 즉 세상의 가치 기준에 따라 행하지는 않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대적들의 오해한 것처럼 자신이 고린도 교회와 세상적인 차원의 싸움을 하려고 시비를 걸고 있는 것이 아님을 밝히 말하며, 그는 성도들을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한 영적인 차원의 싸움을 하고 있음을 말해주었습니다.
그래서 4절부터 바울은 자신이 싸우는 대상은 무엇이며, 싸울 때 사용하는 무기가 무엇인지 설명 합니다. “(고후 10:4)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바울은 육신에 속한 무기들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육신에 속한 무기란 무엇일까요? 혈통을 자랑하는 것, 언변을 내세우는 것 입니다. 당시에 사람들은 이러한 요소들로 사람들을 감동 시키거나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은 이런 인본적인 요소들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무기를 삼아 싸우고 있음을 말해주었습니다.
바울의 무기는 육신적인 무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이것은 세상에 자랑하는 모든 요소들, 즉 견고한 진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을 대적하여 세워진 세상의 모든 이론들과 가치들, 인간이 하나님을 대항하여 쌓아 올린 모든 교만함의 바벨탑들을 다 무너뜨릴 수 있음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대적한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그것들을 마치 전쟁의 포로처럼 사로잡아 하나님 앞에 무릎 꿇게 만들 수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6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 하나님의 능력은 곧 하나님께 대한 모든 불순종의 행위를 깨트리는데 사용 됩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이런 능력을 주신 이유가 교회의 성도들을 무너뜨리려고 주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그들을 굳건하게 세우려고 하신 것임을 언급합니다.
바울의 대적들은 그의 편지 글을 무겁고 힘이 있지만, 대면하였을 때는 말이 약하고 시원치 않다고 평가 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바울을 무시하고 비난 했지만, 바울은 대적들의 공격과 달리 자신은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 사람들 안에 있는 모든 불복종을 깨트리고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해 왔음을 자랑합니다. 오늘날도 세상이 좋아하는 기준은 외모가 곱고 보기에 좋고, 말도 잘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말대로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주의 일을 하며 사람들을 세우며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은 인간적인 야망을 가진 자들을 높이 평가하지만, 하나님은 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의지하고 살아가는 자들을 기쁘게 여기십니다. 지금도 세속화의 현상이 교회 안에 들어와 세상의 방식대로 사람들을 평가하고, 사역의 방법을 바꾸어 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변화고 시대가 흘러도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기준으로는 부족할지 몰라도, 하나님 앞에 인정 받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배워가며, 올바르게 하나님을 섬기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