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20 특별새벽예배 [벧엘로 돌아가라 시리즈 (1)] 하나님께 단을 쌓으라 (창세기 35장 1절)

야곱의 인생은 벼랑 끝에 서 있습니다. 그는 인생의 막다른 골목길에 서 있습니다. 자신의 딸 디나는 세겜 사람에게 성적으로 유린 당했으며, 자기 아들들은 그런 세겜 족에게 앙심을 품고 칼로 복수 했습니다. 이 아들들의 경거망동으로 인해 야곱은 가나안 지역의 모든 민족들과 원수 관계에 놓이게 됩니다. 한 순간에 사방이 적으로 둘러 쌓인 것이죠. 야곱은 싸움에 능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에게는 훈련된 병사도 없습니다. 게다가 자신은 환도뼈가 부셔서 절름발이가 된 상황입니다. 언제라도 가나안 족속이 세겜 족의 복수를 하기 위해 순식간에 쳐들어오면 죽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한 상황 입니다.
야곱은 뜻 밖에 찾아온 불행에 망연자실 했습니다. 그런데 이 환란과 재난의 두려움이 그로 하여금 하나님을 붙잡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야곱은 환란의 큰 위험과 인생의 막다른 골목길에서 하나님을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하나님을 찾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열렬하게 하나님을 찾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미 자신을 죽이려 했던 에서 형과 화해도 했고, 재산도 먹고 살 만큼 있었습니다. 사람은 간절히 기도할 제목이 없으면 하나님을 잘 찾지 않습니다. 야곱도 그러했습니다. 야곱은 약 10년 정도 되는 시간 동안 세겜에 머물며 미지근한 태도로 신앙생활을 해 왔습니다. 그럭저럭 신앙의 명맥만 유지한 채 살아온 것이죠.
그러던 어느 날, 자기 딸 디나가 세겜 사람에게 겁탈 당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아버지에게 딸이란 얼마나 귀한 존재 입니까? 비록 야곱에게 열두 아들이 있어도 이 딸 하나가 얼마나 이뻤겠습니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공주님처럼 키운 딸이 이런 비극적인 일을 당했으니, 야곱의 마음은 슬픔과 분노로 가득 했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세겜 족을 쳐 죽이면, 분명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이 복수를 해 올 것입니다. 그래서 한참을 참고 있었는데, 그만 그의 두 아들 시므온과 레위가 참지 못하고 칼을 들고 가서 세겜 족을 몰살 시킨 것이죠. 그 결과 이제는 가나안 족속에게 밉보인 야곱과 그의 가족이 몰살 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지나온 시절 야곱은 자신의 재치와 기지를 의지하여 살아왔습니다. 수완이 좋은 사람이라 목축업 비즈니스도 잘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 자기를 의지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잠자고 있던 야곱의 영혼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이 위기 상황 속에서 비로소 눈을 뜨게 됩니다. 그는 절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붙잡았습니다. “하나님 저 좀 도와주십시오. 하나님 저희 가정을 살려 주십시오.” 지금 그가 처해 있는 상황은 자기의 지혜나 재간으로 해결 할 수 없는 벼랑 끝에 서 있습니다. 막다른 지경에 이르자 그에게 남은 일이라곤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밖에는 없었습니다. 상황은 복잡했고, 그가 맞이한 국면은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어찌 할 줄 몰라 허둥지둥 되며 당황해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주신 명령은 매우 단순한 것이었습니다. “야곱아, 너 하나님께 단을 쌓으라.” 야곱은 위기 앞에 손발이 꽁꽁 묶인 사람처럼 전전긍긍하며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는데, 하나님은 단 한마디로 그에게 이 위기상황을 타파할 명령을 주신 것이죠. “야곱아 너 하나님께 단을 쌓으라.” 단을 쌓는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일차적인 의미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 제물을 바칠 제단을 만들라는 명령 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단을 쌓으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에게, “야곱아 너 이제는 내 앞에 서라”하고 말씀하신 것 입니다. 지난 10 여년 동안 하나님 계신 둥 안 계신 둥, 하나님 믿는 둥, 안 믿는 둥 그렇게 신앙생활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태도로 살아가지 말고, 확실하게 하나님 앞에 서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 있는 모습 그대로 서라는 것입니다. 그 자신의 영적 상황이 얼마나 비참한 상황인지 제대로 인식하고 하나님의 전적인 도우심을 필요한 것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으면 망할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인식하고 주님 앞에 서라는 말씀 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서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 일차적으로 그 사람이 느끼게 되는 감정은 기쁨이나 기분 좋은 감정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친구처럼 막 부르고, 함부로 대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하나님 앞에 선 자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감정은 무엇입니까? ‘두려움’ 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 느끼게 될 첫 감정은 ‘두려움’ 입니다. 하나님 없이 살려고 했던 나의 교만함, 하나님을 없이 세상 것을 즐기며 살아왔던 나의 게으름, 음란함 이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 설 때 밝히 나타나게 됩니다. 이 때 하나님 앞에 선 그 사람은 매우 비참한 상태에 놓여 있는 자신의 영혼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 있음을 깨닫고 자신이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 심판을 당하거나 죽게 될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존재를 있는 모습 그대로 대면 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단을 쌓는 것입니다.
야곱은 지난 10여년간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떠난 것은 아니었지만, 하나님 없이도 잘 사는 사람처럼 지냈습니다. 그러한 야곱의 태도는 하나님 보실 때 너무나도 큰 교만의 죄였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부르셨습니다. “야곱아, 너 내 앞에 서라.”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으로 인하여 자신의 죄를 뉘우치며 회개하며 애통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죄로 인해 비참해진 자신의 영혼을 끌어안고 애통하며 흐느끼며 기도하는 그 사람에게 은혜의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합니다.
1절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어디에다가 단을 쌓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까? ‘벧엘’ 입니다. 야곱은 지금 세겜에 머물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 야곱이 있는 세겜에도 제단은 있었습니다. 그러니 야곱은 거기서도 충분히 예배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에게 벧엘에 가서 제단을 쌓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말씀 하셨을까요? 그것은 과거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베푸신 은총을 돌아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1절 다시 보십시오.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이전에 벧엘은 그가 자신을 죽이려는 형 에서를 피해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동반자도 없이 외로운 나그네 길을 떠났던 상황에 다다른 지역이었습니다. 아무도 그를 도와줄 수 없는 그 때 하나님은 그곳에서 나타나 야곱을 도우셨습니다. 그리고 야곱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단을 쌓기 위해서 벧엘로 돌아감으로써 이전에 그를 도우셨던 하나님을 다시 상기하며, 그가 젊은 날 간절하게 하나님을 찾았던 것처럼, 또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기를 원하셨습니다. 즉 벧엘로 돌아가서 단을 쌓으라는 말씀은 다시 한 번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애통하던 그 때의 심정을 회복하라는 것 입니다.
세겜이 아닌 벧엘로 가서 단을 쌓아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하나님께서 야곱이 세겜 사람들과 헤어지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10 여년 동안 세겜에 머물며 그의 신앙심이 점차 식어 갔습니다. 이방 사람들과 다름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 이유는 야곱과 그의 가족들이 세겜 사람들과 동화된 삶을 살았기 때문 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세겜을 떠나 벧엘로 가라고 말씀하신 것은 세상의 영향을 받지 말고, 죄에서 떠나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거룩하게 살기 위한 준비를 하라는 말씀 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해서는 영적인 갱신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법을 찾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지난 죄를 전심으로 뉘우치고 하나님 한 분만 붙잡고 살아갈 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말씀을 다시 보십시오. “(창 35: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오늘 여기서 하나님께서 단을 쌓으라 말씀 하셨을 때 이 명령은 2인칭 복수가 아니라 2인칭 단수 입니다. 즉 야곱 한 사람에게 명령하신 것입니다. 우리 가정의 위기를 극복하고, 영적으로 회복 되는데 모든 사람이 다 나와서 기도하면 가장 좋겠죠.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먼저 소수의 사람을 통해 주님의 일을 시작하십니다. 야곱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홀로 서게 하시는 것으로부터 그의 가정을 회복하시는 일을 시작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늘 소수의 사람들로부터 시작 됩니다. (가정도 마찬가지, 교회도 마찬가지, 국가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다수의 움직임에 주목하지만, 하나님은 자기 앞에 서 있는 소수에 주목 하십시다. 하나님 앞에서 기도할 때 여러분이 바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바로 그 한 사람이 될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현실의 무력함이 있습니까? 위기 상황에 빠지셨습니까? 인생의 벼랑 끝에 서 계십니까? 벧엘로 올라가 하나님께 단을 쌓으십시오. 세상 것 다 뒤로 내어 버리고, 하나님 앞에 서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창세기 35장 1절에서는 “하나님께’ 단을 쌓으라 했습니다. 우리 삶의 유일한 소망 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붙잡고 사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참 소망이 되십니다. 주님 앞에 서십시오. 주님 없이 살 수 없는 존재임을 고백하십시오. 그리고 간절히 주님을 붙잡으십시오. 그리하여 인생의 위기를 신앙으로 이겨가며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참된 신자 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