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13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민수기 21장 1-9절)

신 광야 가데스 지역에 머물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따라 가나안으로 향하게 됩니다. 가나안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왕의 대로’를 통과 해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왕의 대로를 가기 위해서는 에돔 족속의 땅을 지나가야만 했습니다. 에돔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들의 영토를 침입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숫자상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돔과 전쟁을 일으켜 충분히 승리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에서의 자손들에게 준 세일 땅을 침략하지 말고 광야 길로 우회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에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편하고 빠른 ‘왕의 대로’로 가지 못하고, 매우 험한 광야 길로 다시 돌아가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간 길을 가리켜 오늘 본문은 ‘홍해 길’이라고 말합니다.
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민 21:4) 백성이 호르 산에서 진행하여 홍해 길로 좇아 에돔 땅을 둘러 행하려 하였다가 길로 인하여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왕의 대로’를 통과해서 갔다면 금방 갔을 길인데, 하나님의 말씀대로 에돔을 통과하지 않고 멀리 우회해서 가는 바람에 험한 광야의 여정을 보내고 있는 것이죠. 거칠고 험난한 길을 걸어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우 지쳐 버렸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이 지긋지긋한 광야생활에서 벗어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 쉬고 싶었는데, 뜨거운 태양 빛 아래서 목이 마른 채 광야 길을 걸어가야 하니, 백성들의 인내심이 바닥을 친 거죠. 백성들의 마음이 크게 상했습니다.
민수기서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힘들 때마다 원망과 불평을 반복해서 하는 패턴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도 예외는 아닙니다. 이들은 광야 여정이 힘들어지자, 또 다시 하나님과 모세를 향해 원망을 합니다. 5절 말씀 입니다. “(민 21:5)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 하매” 지금 이들이 있는 곳에는 마실 물도 없었습니다. 먹을 식물도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백성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를 원망 했습니다 “왜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와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 거요? 여기에는 빵도 없고, 물도 없소.” 5절 후반절을 보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또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 여기서 이 사람들이 말하는 ‘박한 식물’이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만나’를 의미합니다. ‘박한 식물’이란 표현은 쉽게 말하면 ‘형편 없는 음식’이란 뜻 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거죠. “하나님 우리는 이제 이 맛 더 없고 형편 없는 만나도 지긋지긋 합니다. 이거 먹기 싫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이 얼마나 거칠었는지 차라리 만나를 끊어 버리고, 우리 애굽에서 살 던 때처럼 고기 반찬, 파 무침, 절인 무 이런 음식다운 음식 먹고 살게 해 달라는 것 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만나가 질려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굶주림에 허덕이는 것을 불쌍하게 여기시고 이들에게 만나를 내려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지난 수 십년 동안 하늘에서 매일 내려 주시는 만나를 먹고 살아 왔습니다. 처음에 먹을 때는 꿀처럼 달았습니다. 기쁨과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먹었습니다. 그러나 마실 물도 없고, 먹을 음식도 없고, 험난한 광야 생활이 계속해서 이어지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나조차 싫어졌고, 질려 비린 것이죠.
불만이 머리 꼭대기까지 찬 이스라엘 백성들은 음식에 대한 불평을 했고, 더 나아가 이들을 애굽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향해 원망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염연히 따지고 보면 지금 이들이 이처럼 광야에서 고생하고 있는 이유는 이들이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에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약 40년 동안 이렇게 광야에서 험난한 생활을 보내며 하나님께 심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원망하며, 불평불만을 늘어 놓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심각한 불신앙의 죄를 짓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내가 원하는 대로 펼쳐지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은 ‘나는 선하시고 완전하신 하나님을 도무지 믿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노예로 살아가던 자신들을 구원해주시고, 지금까지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으로 보호하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여 주신 크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린 채,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해 준 것이 있느냐? 우리를 죽일 곳이 없어서 이 광야까지 끌고 와서 죽이려 하느냐?” 이런 식으로 하나님을 향한 원망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은 “하나님 이제는 우리를 이 생활에서 놓아 달라. 우리 마음대로 애굽에서 다시 살게 해달라”하는 교만한 행위였습니다.
원망과 불평을 한 결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또 다시 심판하셨습니다. 6절 입니다. “(민 21:6)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하나님께서는 심판으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불뱀을 보내셨습니다. 불뱀은 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머물고 있었던 광야 지역에서 서식하던 독사 가운데 한 종류로서 ‘불타는 듯한 붉은 반점’이 있다하여 불뱀이라고 불렀습니다. 또한 불뱀은 독성이 매우 강해서 한 번 물리게 되면 치명적인 독이 온몸에 퍼지게 되고, 높은 열이 올라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가나안에 들어가는데, 그 남은 여정을 인내하지 못하고 식물과 물이 없다는 이유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원망하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계하시기 위해 불뱀들을 보내셔서 그들을 물게 하신 것이죠. 사실 뱀에 물린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눈 앞에 뱀 한 마리만 땅에 기어 다녀도 온 몸에 소름이 돋고, 등에 땀이 나고, 두려움에 크게 소리를 지를 것입니다. 그런데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독사들이 이스라엘 진영 안쪽까지 꿈틀대며 기어와서 백성을 물었으니 끔찍하고 큰 재앙이 내린 것이죠.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을 불신하고 원망하는 죄를 얼마나 크게 심판 하시는지 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불신하는 죄의 결과는 죽음 입니다.
불뱀에 물려 죽게 된 백성들이 여기저기 우후죽순처럼 나타나자, 겁에 질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제서야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모세 앞에 나아왔습니다. 7절 입니다. “(민 21:7)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하므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하나님꼐서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을 믿지 못하고, 잠시의 고난을 인내하지 못한 채 여호와 하나님을 대적하여 교만히 행한 죄… 그 큰 죄악의 심판으로 인해 자신들에게 이 불뱀 재난이 일어났음을 깨닫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며 하나님 앞에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죄를 지은 자들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징계는, 그 사랑하시는 자들이 범죄의 길에서 회개하고 돌아오게 하는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이 있습니다. 가장 지혜로운 삶은 이러한 징계를 받지 않도록 죄를 짓지 않는 것이며, 죄를 지었다면 하나님 앞에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고, 최대한 빨리 본래의 믿음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모세는 자기들의 잘못을 철저히 회개하고 뉘우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범죄함으로 불뱀에게 물린 백성들이 살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꼐서는 모세에게 놋으로 불뱀 모양을 만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장대 위에 달아 놓고 뱀에 물린 자마다 그 놋뱀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리하면 뱀에 물린 자들이 죽지 아니하고 살 것이라고 말씀 해주셨습니다. 8절 입니다. “(민 21: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어느 병원에서 독사에게 물린 한 환자가 다급하게 응급실에 실려 들어왔는데, 의사가 환자에게 하는 말이 “환자 분 ‘놋뱀’을 쳐다 보시겠어요? 그럼 병이 다 낫습니다.”라고 했다고 쳐 보겠습니다. 지금 고열로 끙끙 앓아가며 죽어가는 환자 입장에서 얼마나 이 의사의 말이 얼마나 황당 하겠어요? 지금 뱀에 물렸다니까? 독을 빨아서 빼 줘야지. 아님 해독제라도 처방해서 먹이던가… 주사를 놓아주던가 해야 하지 않겠어요? 상식적으로 앞뒤가 안 맞는 치료법이잖아요?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불뱀에 물린 자마다 놋뱀을 보면 살도록 하셨을까요?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음에 이르게 된 본질적인 문제가 하나님을 향한 불신에 있었기 때문 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원망한 결과 불뱀에 물린 것이죠. 따라서 이 죽음을 피하는 방법은 불신이란 죄를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을 믿는 것 밖에는 없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꼐서는 “놋뱀을 보는 자마다 살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주심으로, 도무지 상식적으로 이성적으로 말은 안 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기에 그 말씀을 믿고 놋뱀을 보는 자가 살도록 해 두신 것이죠. 즉 불뱀에 물린 이들은 놋뱀을 쳐다 본 행위로 산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주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살아 나도록 하신 것입니다.
사실 놋뱀 자체에는 아무런 신비한 능력도 없습니다. 그 놋뱀 자체에 신통한 힘이 있어서 낫게 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절대순종하는 자가 구원의 은총을 받게 된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이죠.
오늘 본문 말씀의 결론인 9절을 보십시오. “(민 21:9)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오늘 본문에 나오는 ‘장대 위에 달린 놋뱀’은 신약성경에 기록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 없이 살아간 죄인들은 다 지옥에 가서 영원한 죽음에 이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살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누구라도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가 내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것이며, 예수의 십자가 대속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날 구원해 하신다는 믿음을 갖기만 하면 죽지 아니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아무리 치명적인 독을 가진 불뱀에게 물린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지만, 믿음을 가지고 놋뱀을 바라보기만 하면 다 살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도저히 용서 받을 수 없는 죄, 영혼을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는 치명적인 죄를 지은 사람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 분을 나의 구원자요, 주님으로 믿고 섬기면 그의 죄가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광야 같이 험하고 힘든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혹시 마실 물이 없고 먹을 것이 없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신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처처럼, 우리 마음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불평불만이 자리잡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을 향한 원망의 쓴 뿌리가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십시오. 혹 하나님을 향한 불신과 원망이 이미 우리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다면, 오늘 십자가 위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불평 불만의 죄를 회개하고 다시 주님께로 돌아가십시오. 반드시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고, 죄로 인해 죽어갔던 우리의 영혼도 다시 살려 주실 것입니다. 모든 죄악과 불신앙을 사해 주시고 구원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고 주님의 말씀을 끝까지 믿고 따라가며 살아가는 영적 순례자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