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01 언제나 은혜의 자리를 사모하라 (민수기 9장 1-14절)

하나님은 애굽에서 400년 동안 노예로 살아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를 보내셨습니다. 애굽 왕 바로 앞에 선 모세를 통해 하나님은 10가지 재앙을 일으키셨습니다. 그 중 마지막 재앙이 바로 ‘장자의 죽음’ 입니다. 이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는 어린 양을 한 마리 잡아 피를 그릇에 담고, 마치 붓을 물감에 찍듯이 우슬초를 피에 찍어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죽음의 사자는 양의 피가 문에 발라지 있지 집은 들어가서 장자를 쳐 죽였습니다. 그러나 어린 양의 피가 문에 있는 집은 죽음의 재앙이 넘어 갔습니다. ‘유월절’이란 단어의 한문 풀이가 ‘넘어갈 유’, ‘건너갈 월’ 입니다. 영어로는 ‘Passover’ 입니다. 죽음의 재앙이 건너간 것을 기념하는 절기 입니다.
바로 이 날 노예로 살아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자유롭게 풀려나왔습니다. 출애굽 한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1년을 맞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월절 절기를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날짜도 지정해 주셨는데요 3절 말씀을 보니 곧 “이 달 열넷 째 날 해 질 때”부터 시작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이 있는 달이 일년의 첫 번째 달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하고는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으로 보면 4월달에 유월절이 있습니다. 유월절이 해가 질 때 시작하는 이유는 유대인들의 개념으로 하루의 시작은 해가 뜰 때가 아니라 해가 질 때부터 였기 때문입니다.
자 이렇게 시작한 유월절은 1주일 동안 지켜졌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본래 유대인의 절기는 율법의 기준으로 볼 때 부정한 사람은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는 시체를 만짐으로 인해 부정한 자들도 포함이 되어 있었습니다. 왜 이들은 시체를 만져야 했을까요? 아마도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의 장례식이 있었을 것 입니다. 사랑하는 이의 시신을 옮기는 마지막 자리인만큼 부정한 시체를 가까이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던 것이죠. 그러나 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고의적으로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가족의 장례 일정 때문에 1년에 한 번 오는 유월절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었습니다. 특별히 유월절은 유대인에게는 가장 큰 명절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마음껏 찬양하고, 예배하는 대축제의 기간이었습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즐거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1주일 동안 소외되어 아무런 제사에도 참석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들에게는 큰 아쉬움으로 남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사람의 시체로 인해 부정하게 된 자들은 민족의 지도자 모세를 찾아가게 됩니다. “(민 9:7)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사람의 시체로 인하여 부정케 되었거니와 우리를 금지하여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정기에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지 못하게 하심은 어찜이니이까” “Mr. 모세, 저희가 비록 가족의 장례일정으로 인해 부정하게 되었지만, 그로 인해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여호와께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 하시는 것은 어찜입니까? 비록 우리가 부정하지만, 이 정해진 때에 우리도 여호와께 예물을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도 다른 이스라엘 백성처럼 예물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 사람들은 은혜의 자리를 깊게 사모 했습니다.
직장이 군대에서 헬리콥터 파일럿인 중령 계급의 군인 성도님이 계십니다. 매주 주일날 오전 11시 예배를 드리는 분인데, 상부에서 지시가 떨어져서 앞으로 3년간 일요일마다 근무를 서야 하는 거에요. 이 분이 교회 목사님을 찾아왔어요. “목사님, 죄송합니다. 제가 매주 주일마다 근무 배치를 받게 되어 앞으로 당분간 주일 오전 예배 참석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목사님 저 정말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싶습니다. 비록 제가 주일 오전 예배는 나올 수 없지만, 주일 늦은 시간이라도 교회에 나아와서 혼자 기도하고 말씀 보고 찬양하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예배는 강압성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교회 나오기 싫다고 떼쓰는 주일학교 어린 자녀를 억지로 데려오는 부모가 있을 수 있겠죠. 혹은 교회 나가기 싫다는 남편을 억지로 끌고 온 아내가 있을 수도 있겠죠.
그러나 사실 예배는 자원하여 드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번 주 주일 예배 드리지 않는다고 벌금을 내는 것은 아닙니다. 심지어 교회를 나오지 않는다고 해도 벌을 받거나 법원에 가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예배는 강제성이 없다는 말입니다. 다만 예배는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를 사모하는 자들이 하나님께 기쁨으로 나아오는 장소 입니다. 예배의 자리가 너무 귀하고, 이 자리에 가득한 하나님의 임재와 예배 시간에만 느낄 수 있는 하늘의 은혜와 강 같은 평화를 사모하여 주님의 전으로 달려오는 것이죠.
8절 말씀을 보시면 모세는 시체로 인해 부정해진 자들이 유월절을 지키는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여쭈어 보았습니다. 8절 말씀을 한 번 보겠습니다. “(민 9:8)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기다리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어떻게 명하시는지 내가 들으리라” 우리는 여기서 민족의 지도자 모세의 강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문제가 발생할 때 그는 누구를 찾아갔습니까? 그는 여호와 하나님을 찾아갔습니다. 그 다음 그는 무엇을 했습니까? 여호와께서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들었습니다. 단순한 원리입니다만 동시에 강력한 습관 입니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하나님께 나아가고, 주님의 뜻을 구하고 고요히 주님의 음성을 듣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삶의 문제가 있을 때마다 모세처럼 해야할 것입니다.
자,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한 결과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해결책을 주셨습니다. 10-11절 입니다. “(민 9:10)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러 고하여 이르라 너희나 너희 후손 중에 시체로 인하여 부정케 되든지 먼 여행 중에 있든지 할지라도 다 여호와 앞에 마땅히 유월절을 지키되 (민 9:11) 이월 십사일 해 질 때에 그것을 지켜서 어린 양에 무교병과 쓴 나물을 아울러 먹을 것이요” 하나님은 이들도 유월절을 드릴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다만 정해진 달에 유월절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다음 달 14일에 유월절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부정한 자들과 결코 타협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이 유월절을 더럽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부정한 자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길 또한 막지 않으셨습니다. 시체로 부정해진 자들에게는 또 다른 유월절을 허락하심으로써 그들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죄인을 향한 끝없는 용서와 기회 주심,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입니다.
신약의 관점으로 보면 유월절은, 죄의 노예로 살아가던 죄인이 어린 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을 받은 사건의 예표 입니다. 따라서 유월절을 지키기를 간절히 사모했던 자들의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구원의 감격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을 기뻐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을 상징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한 주 세상의 악한 죄들을 가까이 하느라 우리 자신도 부정한 상태로 있진 않습니까? 하나님께 예배 드리지 못할 만큼 영혼의 양심이 더럽혀져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여기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주님은 부정해진 자들이 주님께 와서 예배 드리는 길을 막지 않으시고 활짝 열어 주셨습니다. 우리들의 더러워진 영혼을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으십시오. 그리고 거룩하고 구별된 영혼을 가지고 주님의 은혜의 자리로 달려가십시오. 언제나 은혜의 자리를 사모하십시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우리의 삶에 크신 은총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