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23 자기 몸을 구별하여 드리라 (민수기 6장 1-12절)


오늘 본문에는 나실인의 서원을 드린 사람들이 지켜야할 규례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실인’이란 말은 ‘서원한 사람’, ‘구별된 사람’이란 뜻입니다. 즉 이들은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린 특별한 사람들 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사사기에 나오는 삼손이나, 선지자 사무엘처럼 평생을 나실인으로 드린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일정한 헌신의 시간을 정해 두고 그 기간 동안 한시적으로 나실인으로 산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한시적으로 나실인으로 살고자 했던 사람들을 향한 말씀 입니다.
나실인 제도는 제사장이나 레위인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일반 이스라엘 백성들도 자신의 의지만 있다면 참여 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헌신하는데, 어찌 구별이 있겠습니까? 일반인들도 나실인이라는 제도를 통해 하나님과 더 깊고 가까이 교제할 수 있었던 것이죠. 물론 이러한 서원을 하지 않아도 이스라엘 백성은 이미 하나님의 소유 입니다. 그러나 자원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서원을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이들은 더욱 구별되어 있기를 원했습니다.
우리들도 평생 신앙생활을 하지만,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더욱 더 드리고자 하는 소망하는 마음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마음이 계신 분은 오늘 나실인의 서약을 통해서 한 번 마음의 결단을 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삶을 구별하여 하나님 앞에서 나실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3가지의 규정을 지켜야 했습니다. 첫째로 그는 포도주와 독주를 마셔서는 안 됩니다. 3-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민 6:3)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며 포도주의 초나 독주의 초를 마시지 말며 포도즙도 마시지 말며 생포도나 건포도도 먹지 말지니 (민 6:4) 자기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포도나무 소산은 씨나 껍질이라도 먹지 말지며” 단순히 포도주만 안 마시는 것이 아니라, 아예 포도나무에서 난 것은 씨나 껍질이나 포도를 말린 것이나 아무 것도 먹어서는 안 됩니다. 왜 하나님은 나실인의 서원을 하는 사람에게 포도나무에서 나오는 것을 먹지 못하게 하셨을까요? 포도와 포도주는 세상의 향락과 방탕한 삶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경건하게 살아야 하는 나실인에게 포도와 포도주를 먹지 못하게 하신 것이죠. 우리가 잘 알듯이 포도주에 취하면 사람이 이성이 마비 됩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무슨 행동을 하는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술에 취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에 따라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나실인의 서원을 한 사람은 오직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 자가 되어야 함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더욱 더 헌신하고 구별하기를 원한다면 우리 삶의 포도주를 제거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 외에 지배를 받고 있는 모든 세상의 쾌락과 향락의 죄를 죽여야 합니다. 어떤 분들이 이렇게 물어봅니다. “목사님 술 마시는 것이 죄인가요? 목사님 드라마 보는 것이 죄인가요? 목사님 세상 노래 듣는 것이 죄인가요?” 우리의 여러분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며 우리의 삶의 우선순위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면 그것은 분명 죄가 됩니다. 나실인으로 살악가기 위해서는 세상의 포도주를 끊어야 합니다. 사람을 취하게 하는 포도주로 비유되는 내 안을 지배하는 모든 죄악들을 끊어내야 합니다.
나실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머리카락에 삭도를 대서는 안 됩니다. 즉 머리를 잘라서는 안 됩니다. 5절 말씀 입니다. “(민 6:5) 그 서원을 하고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은 삭도를 도무지 그 머리에 대지 말 것이라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날이 차기까지 그는 거룩한즉 그 머리털을 길게 자라게 할 것이며” 예로부터 인간의 몸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머리’로 여겨집니다. 고대의 왕들도 왕의 상징인 왕관을 머리에 썼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신체 중 머리가 가장 귀하기 때문입니다. 이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음으로 내 인생의 존귀와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나실인은 자신의 머리 위에 하나님이 함께 하고 계심을 나타내기 위해서 머리카락을 밀지 않았던 것이죠.
사실 일상생활에서 머리를 자르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불편한 일입니까? 머리가 길면 머리 감을 때도 힘들지만, 일상생활 하는데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닙니다. 무게도 제법 나가고 관리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이렇게 불편한 상태를 유지하라고 하셨을까요?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과도 연결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것이 우리 마음에 맞지 않아 불편할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려면 많은 관심과 에너지를 귀 기울여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불편과 수고를 감내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마치 나실인이 불편한 머리카락을 계속해서 관리하며 하나님의 함께하시는 임재를 경험하고 살듯이, 그리스도인들은 말씀을 헌신과 수고를 통해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며 사는 것입니다.
또한 지금 이 말씀은 남자들에게 적용해 본다면, 머리를 자르지 않으면 유독 돋보입니다. 전쟁 하기에도 불편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긴 머리카락 때문에 놀림과 조롱거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실인은 자신의 이익을 계산하거나 사람들의 반응에 두려워서 머리를 잘라서는 안 됩니다. 어떤 손해를 입는다 하더라도, 어떤 조롱과 유혹 속에서도 머리를 기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만 두려워하며 자신의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이 나실인 입니다.
나실인의 서원을 지키기 위해서 셋째로 시체를 가까이 해서는 안 됩니다. 6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민 6:6)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날 동안은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 것이요” 율법 따르면 사람 과동물의 시체는 부정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따라서 시체와 접촉하게 되면 그 역시 부정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실인의 서약을 하는 사람들은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죽음은 죄악의 결과 입니다. 따라서 시체를 멀리하고 부정한 것을 멀리하는 것은 죄악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구별된 자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세상의 부정한 것과 죄악을 멀리해야 합니다.
나실인에 대한 규정을 살펴보면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악된 인간 사이에 얼마나 큰 간격이 있는지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그 큰 간격을 뛰어넘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실인처럼 하나님과 더욱 더 깊고 친밀한 교제를 원하십니까? 우리 삶을 지배하려는 포도주와 같은 세상의 향락을 끊으십시오. 긴 머리를 유지하는 것과 같이 불편할지라도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십시오. 시체를 멀리하는 것 같이 부정한 것들을 멀리하십시오. 그러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구별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깊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