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예수님을 흠잡기 위해서 각각 정교하게 준비한 질문들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의 질문에 막힘없이 지혜롭게 대답하셨습니다. 이 모습을 곁에서 흥미롭게 지켜보던 서기관 한 사람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께 성경에 있는 계명 중에 가장 중요한 계명이 무엇인지 물어보았습니다. 유대인들은 모세오경에 기록된 계명을 해부하여 총 613개의 개명으로 나누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말씀하신 248개의 계명과 “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365개의 계명을 합하여 613개 입니다. 이 수백 개나 되는 많은 계명 중에서 어느 계명이 가장 큰지를 물어본 것이죠.
곁에 서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그리고 여러 서기관들도 예수님께서 어떻게 대답 하실지 궁금해 했을 것입니다. 29-30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막 12:2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막 12: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29을 보시면 “이스라엘아 들으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쉐마 이스라엘!” 입니다. 예수님께서 신명기 6장 4-5절에 기록된 말씀을 인용하고 계신 것이죠. 예수님께서는 율법 중 으뜸 계명은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신 사랑의 정도가 단순히 입으로 사랑 고백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목숨’, ‘뜻’, ‘힘’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에 사람에게 자기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까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 목숨을 다하도록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만, 목숨을 걸고 사랑하는 사람은 사실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애 전부를 던져 주님을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럼 어떻게 이런 사랑이 가능할까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매일 교회 나올 때마다 하나님께 장미꽃 한 다발을 사다 드리면 될까요? 하나님께 감동의 편지를 쓰면 될까요? 하나님께 다이아몬드 반지를 사다 드리면 될까요? 어떻게 목숨, 힘, 뜻을 다한 우리의 사랑을 나타낼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쉐마 이스라엘’, 신명기 6장의 내용을 이어서 읽어 내려가 보면 그 방법을 알 수 있습니다. 신명기 6장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명령한 후,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언제든지 말씀을 강론하고 말씀을 기록해 언제든지 볼 수 있도록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하여 우리의 목숨, 뜻, 힘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표현이 되는 것이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은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에는 관심이 없다면 그 사람의 사랑은 거짓 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는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에는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 역시 거짓 사랑입니다. 예수님도 요한복음 14장 15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 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21절에도 다시 한 번 말씀하십니다. “(요 14:21)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사랑은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한다고 백 번 천 번 말은 하면서도, 아내가 좋아하는 일은 하나도 안 하고 아내가 싫어하는 일들 골라서 하고 있다면… 그 남편의 사랑이 어찌 진실된 사랑이겠습니까? 정말 아내를 귀하게 여긴다면 내가 어떻게 하면 아내를 기쁘게 해 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 아내가 더 행복할까?” 고민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러한 고민들이 행동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가정일로 회사일로 바쁜 아내 대신에서 평상시에 안 개던 빨래도 개고, 쓰레기통도 비우고, 또 때로는 아내 대신에 요리도 해주고, 아니면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서 비싼 것은 아니더라도 마음과 정성이 들어간 작은 선물이라도 준비하지 않을까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도 남편과 아내의 사랑과 비슷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은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은 등한시 한 채로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들만 하며 살아간다면 그러한 사랑도 거짓 고백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 내가 오늘 내 일상의 현장에서 어떻게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더 미소 지으실까?” 하고 생각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삶 속에서 적용하고,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려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진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분들은 부흥회나 은혜로운 집회 때 참석해서 찬양을 부르거나 뜨겁게 기도를 하며, 흘리는 눈물을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Climax로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 그 어디에도 하나님께서는 “나를 위해 우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마음에서 주님을 생각할 때 흘러 넘치는 감사의 마음과 은혜에 대한 감격의 마음도 중요합니다만, 그 마음을 가지고 삶에 자리에 나가서 목숨을 다해, 힘을 다해, 뜻을 다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갈 때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진실된 사랑이 되는 것이죠.
예수님은 이어서 두 번째 중요한 계명을 말씀해주셨습니다. 31절 말씀 입니다. “(막 12:31)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첫째 되는 계명이 ‘하나님 사랑’이었다면, 둘째는 ‘이웃 사랑’입니다. 그런데 이 두 계명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갑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 결국 그는 하나님도 사랑하지 않는 것이 됩니다. 요한일서 2장 9절에 기록되길, “(요일 2:9) 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 요한일서 4장 20절에는 “(요일 4: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둘째 계명인 ‘이웃 사랑’을 지키지 아니하는 사람은 첫째 계명인 ‘하나님 사랑’도 지키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사랑해야 할 대상에는 예외도 없고 한계도 없습니다. 성경은 심지어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도무지 내 힘으로 사랑할 수 없는 저 원수도, 주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목숨을 바치셨듯이, 내 목숨, 힘, 뜻을 다해 사랑하도록 애써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답에 대한 서기관의 반응을 보십시오. 32-33절 말씀 입니다. “(막 12:32) 서기관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막 12:33)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33절 말씀을 주목 하십시오. 우리가 예배 드리는 것보다… 기도하는 것보다… 말씀 읽는 것보다… 십일조 내고, 헌금 드리는 것 보다 주님은 무엇을 가장 기뻐하십니까? 이 모든 경건의 삶의 모습을 통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주님은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알아보는 테스트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려는 열심이 있습니까? 있다면 어느 정도 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내 주변에 이웃들을 사랑하고 섬기고 있습니까? 용서하지 못하고 미움과 분노로 대하고 있는 이는 없습니까?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 가장 큰 계명입니다. 이 두 계명이 바로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목적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코너스톤 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더더욱 사랑하기 위하여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하나님을 더더욱 사랑하기 위하여, 더 많은 이들을 더 많이 사랑하십시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