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22 삶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는가 (마가복음 10장 23-31절)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와서 “제가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대답하시기를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네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생에 대한 질문을 던진 청년은 예수님으로부터 “재산을 다 팔아 나눠주라!” 라는 전혀 뜻 밖의 대답을 듣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초청 입니다.
역사에 ‘만약에’라는 가정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약에… 만약에… 이 청년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자신이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다면, 적어도 성경에서 그의 이름을 알 수 있지 않았을까요? 또한 후대에 오는 모든 사람들이 이 청년의 삶을 보며 “그래 참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참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저러한 삶의 결단과 선택이 있어야지!”하고 따를 수 있는 다가오는 모든 시대에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칭찬과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만약에 이 날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랐다면 말이죠…
안타깝게도 이 청년은 포기해야 하는 재산이 너무 많았기에, 쉽게 그러한 선택을 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는 슬픈 기색을 띠며 근심하며 예수님을 두고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떠나간 청년의 그림자 조차 보이지 않는, 바로 그 시점에 예수님은 그와 함께 있던 제자들을 둘러보시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곁에서 이 말을 듣고 있던 제자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말씀하셨습니다.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바느질 해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바늘 귀가 얼마나 작습니까? 시력이 나빠진 할머니들이 바느질 하시려고 바늘귀에 실 넣으려고 하다가 몇 번이나 실패하는지 모르겠어요. 바늘귀는 그 가는 실 하나 통과 할 정도로 아주 조그마한 구멍인 거죠. 하물며 낙타 같이 큰 동물이 어떻게 바늘귀를 통과하겠어요? (낙타 크기가 평균 5.9-6.6 ft 입니다. 900-1300 Ibs) 이것은 예수님께서 과장법을 통해서 “That is impossible” 결코 불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계신 것이죠. 왜 우리나라 말도 그런 것이 있잖아요. 회사에 맨날 밥 먹듯 지각하는 사람이 어느 날 가장 먼저 출근해서 사무실에 앉아 있는 거에요. 그럼 우리가 “해가 서쪽에서 떴나? 자네 어떻게 이렇게 일찍 왔나?” 해가 어떻게 서쪽에서 뜨겠어요? 늘 동쪽에서 뜨죠. 그러니까 이 말은 “불가능한 일이 일어났다!”는 과장법이죠. 예수님도 지금 과장법을 쓰고 계신 거에요. 그러나 예수님의 이 말씀은 단순히 그 사람이 부자이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는 척도 중에 그 사람의 소유의 많고 적음에 따라 달라진다고 이해하면 그것은 성경을 잘 못 읽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부자였습니다. 아브라함 집에서 고용된 일꾼만 300 명이 넘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날로 말하면 웬만한 중견기업 CEO인 거죠. 300명 넘는 직원들 월급 주고 밥 먹여줄 정도의 재산이니까 아브라함은 얼마나 부자였겠어요? 다윗도 부자였어요. 그는 한 나라를 다스리는 왕입니다. 궁전이 집이요, 국고에 쌓여 있는 금과 은이 다 그의 소유나 다름 없습니다. 만일 오늘 본문에서 나오는 청년이 부자라는 이유만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라면, 아브라함도 다윗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사유재산이 없어야 천국에 간다”, “지갑을 버려라!”, “땅문서 팔아라!” 이런 걸 요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 이 부자 청년의 마음을 꿰뚫어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재물과 같이 세상 것에 대한 집착과 애정을 버리고 온전히 하나님만 따를 것을 요구한 것이죠. 비록 부유하게 살 수 있으나,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마음의 결단이 있는 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제자들은 너무 놀란 나머지 서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재물이 있는 자는 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니 세상에 재산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럼 도대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제자들이 서로 하는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세상 그 누구도 자신의 의지 혹은 결단으로서 그 안에 있는 욕망과 죄악을 다 내려놓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10년 동안 벽만 보고 산 속에서 살아온 도인도 그 안에 정욕과 욕심이 꿈틀거립니다. 신학자 칼빈은 “인간의 마음은 우상을 만들어내는 기계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마음은 끊임 없이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을 찾아내고 또한 만들어 냅니다. 죄악에 물든 우리 모두의 마음은 우상공장인 셈이죠. 그러니 어떻게 자신만의 우상을 섬기는 자들이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겠습니까? 이 세상 그 누구도 자력으로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이러한 상황을 잘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사람은 스스로 자신 안에 있는 욕심을 버리거나, 우상을 제거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통하여 불가능해 보이는 변화가 가능하다고 말씀해 주신 것이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변화 받은 사람은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바라는 자는 비록 낙타 같이 큰 죄를 가지고 있어도, 예수께서 그 죄를 다 씻어 주시고 용서해주시기 때문에 바늘귀 같이 조그마한 천국 구멍도 능히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재물이 있으면 못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재물로 들어 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합당한 자는 삶의 우선순위를 분명하게 세워야 함을 가르치셨습니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 그것이 재물이든, 건강이든, 자식이든, 사업이든, 학벌이든, 사람이든… 무엇이든지 하나님 보다 앞선 가치를 전부 내려놓고 하나님을 최우선순위에 놓고 살아가는 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합당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가만히 듣고 있던 베드로가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베드로는 어부라는 생업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성경을 보면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르기 전 이미 결혼하여 가정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생업을 포기하고, 직장에 사직서 쓰고 월급도 안 주는 제자의 길을 택했습니다. 베드로가 자신의 입장에서 보면 그는 아내도, 자식들도 다 뒤로 한 채 예수님을 최우선적으로 따른 것이지요. 베드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아버지와 함께 하던 비즈니스 내려놓았습니다. 고기 잡는 사업이 잘 되서 일꾼까지 고용해서 사업을 넓혔는데, 그거 다 내려놓고 예수님 따랐습니다. 마태는 잘 나가던 세리란 직업 내려놓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제자들은 하나 같이 자신이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그 동안의 희생과 수고를 예수님께서 인정해 주실 것인지, 자기들처럼 포기한 것이 많은 사람이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지 매우 궁금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베드로를 필두로 제자들은 예수님의 입을 통해 자신의 구원에 대한 확증을 듣고 싶어했던 것이죠. 그런데 예수님은 인정하는 말씀을 직접적으로 하시지 않았습니다. 다만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세상의 것을 포기하고 버린 자들에게 주어지는 더 큰 축복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29-30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막 10: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막 10:30)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29절을 보면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란 표현이 등장합니다. 이 말씀은 가족과의 관계를 완전히 차단, 단절 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요즘 신천지 보세요. 가족도, 부모도 다 버립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가족과의 연을 끊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죠. 예수님은 제자들이 맡기신 사역을 제일 우선시하는 자세를 강조하고 계신 것이죠. 삶의 최우선순위를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에 두고 살아가라는 것 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살아가는 자에게 현세에서는 잃어버린 것의 100배의 축복을 받게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여기서 부모, 형제, 자매가 100배가 된다는 것은 신앙의 가족을 의미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확답을 듣고 싶었습니다. “예수님, 우리 정도 많이 포기한 자들이면 능히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겠죠?”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간절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습니다. 31절 말씀 입니다. “(막 10:31)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이 세상에서는 재산과 권력을 가진 자가 첫째가는 사람들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하나님 없이 세상 것만을 누리는 자들은 결국 하나님 나라에서 꼴찌가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예수님을 위해서 이 세상에서 재산과 심지어 가족까지도 내려놓은 자들.. 그래서 세상에서 볼 때 아무것도 없는 자들… 이 세상에서는 꼴찌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하늘나라에서는 그들이 바로 첫째가 됩니다. 사실 지금 다 버리고 주님을 따른다고 고백하는 제자들 가운데서도 여전히 다 버리지 못하고 있는 자들이 수두룩 했습니다. 우리가 내일 새벽예배 때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만 야고보와 요한은 권력욕을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다들 저마다의 욕심과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그 무언가를 여전히 가슴에 품고 주님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비록 지금 많은 것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잘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가룟 유다처럼 결국에는 처음 된 자로서 나 중된 자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은 어떤 우선순위가 세워져 있습니까? “보소서 주님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하고 말은 하지만 여전히 하나님 앞에 내려놓지 못한 세상의 욕심, 죄악된 삶이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을 온전히 따르는데 방해가 되는 물질의 유혹이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을 내 삶의 최우선순위로 두고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아직도 포기하지 못한 세상의 욕심을 어떻게 내려 놓으시겠습니까? 지금은 처음 된 자이나 먼 훗날 나중 된 자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오늘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예수님과 복음을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삶의 우선순위에 두고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