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05 부스러기 은혜라도 구하는 믿음 (마가복음 7장 24-30절)

장사가 잘 되는 식당에 가보면 주인이 막상 자기는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바쁘다고 말합니다. 하루 종일 앉아 있지도 못하고, 쉼 없이 너무 바쁘게 일 만하다 보면 몸이 지치고 쉽게 병이 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잠시 바쁜 일을 내려놓고 고요한 곳에서 쉬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더 오랫동안 건강하게 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속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런 쉼이었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예수님은 식사할 틈도 찾기 어려웠습니다. 밤이 늦도록 찾아오는 이들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 주무셨습니다. 예수님 얼마나 피곤하시면 폭풍우로 흔들리는 배 안에서도 고이 주무시고 계셨을까요?
자, 그리하여 예수님과 제자들은 잠시 휴식을 취하고 또 다음 사역을 준비 위하여 사람들의 눈을 피해 갈릴리 지방을 떠나 이방인들이 머무는 두로 지경으로 가셨습니다. 그러나 이미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예수님께 집중되어 있었기에 거기 계심을 숨길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은 이미 이스라엘의 국경지대를 넘어가 이방인들이 사는 지역에까지 퍼졌습니다. 마침 두로 지방에 살고 있는 사람 중 한 여인이 예수님께서 자기 마을에 찾아오셨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이 여인에게는 딸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는 귀신이 들렸습니다. 그녀도 이미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어 익히 잘 알고 있습니다. 아무 병든 자라도 능히 고치고, 귀신들린 자를 고치신 예수님, 바로 그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듣자, 이 여인은 지체 없이 곧 바로 예수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보자 마자 주님의 발 아래 엎드려 절 했습니다.
26절을 보니 이 여자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이 여자는 ‘헬라인’이고, ‘수로보니게 족속’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헬라인이라는 말은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이라는 뜻 입니다. 수로보니게는 합성어 인데요, ‘수로’에 속한 ‘보니게’ 지역을 가리킵니다. ‘수로’는 ‘시리아’ 입니다. 즉 이 여인은 시리아에 속한 보니게 지역 출신의 이방인이었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이 여인을 ‘가나안 여자’라고 기록하여 유대인이 아님을 강조했습니다.
유대인도 아닌 이방인인 여인이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있는 거죠. 그녀는 예수님께 자기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 주시기를 간절히 요청했습니다. 26절을 원어 성경을 보면, 이 여인이 한 번만 구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끈질기게 예수님께 구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 제발 제 딸 아이 좀 고쳐주십시오. 예수님 제발 저 귀신 좀 나가게 해주세요! 예수님 제발 도와주세요.” 계속해서 예수님의 도움을 구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병행구절인 마태복음의 기록을 보면 이 여인은 예수님께 크게 소리지르며 자신의 딸을 고쳐 주시기를 간구 했습니다. 그러니까 아마도 엉엉 울며 예수님께 절규하듯이 “제발 살려주세요!” 하고 애걸하듯 구한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 이 이방 여인에게 예수님은 다소 쌀쌀맞아 보이는 대답을 하셨습니다. 27절 입니다. “(막 7:27)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예수님은 이 여인의 지속적인 요청에도 불구하고 그의 간청을 거부 하셨습니다. 마태복음을 보면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예수님 딱 잘라 말씀하셨어요. “난 유대인을 위에 보냄 받은 것이지 이방인을 위해 온 것이 아니다.” 실제로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유대인만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의 주된 사역의 대상이 유대인이었음을 말씀해 주신 것이죠.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단 한 차례 거절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만, 마태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한 번만이 아니라 계속해서 완강하게 거부하신 모습이 등장합니다.
27절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예수님의 지상 사역 우선순위는 잃어버린 양으로서의 유대인들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또 이어서 이 여인이 듣기 거북하고 민망하고 수치스러울 표현을 사용하셨습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이 당시 유대인들은 율법을 모르는 이방인들을 경멸 했습니다. 이방인 하고는 밥도 같이 먹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경멸하는 의미로 종종 ‘개’라고 지칭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 이 여인을 향하여 이방인을 경멸하는 호칭인 ‘개’를 사용하셨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이 여인을 무시하거나 경멸하시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은 당시 유대인들이 사용하던 표현을 빌려서 여인을 향한 경멸조의 말씀을 던짐으로써 이 여인의 믿음을 시험하셨습니다.
너무 차가워 보이기까지 이러한 예수님의 단호한 거절에 여인은 좌절 했는지도 모릅니다. 자신을 ‘개’라고 말하는 예수님의 이러한 대답을 들으면 “아, 내가 잘 못 왔구나. 내가 이런 치욕까지 당해야 하나? 내가 사람을 잘 못 봤다. 이 사람은 아니구나.”하고 이 여인이 돌아서도 뭐라 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간청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계속되는 거절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간구하는 여자의 모습이 부각되어 있습니다. 놀랍게도 이 여인은 자신을 향해 ‘개’라고 하는 예수님의 말씀하신 처지를 스스로 인정하고 더 겸손하게 주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28절 입니다. “(막 7:28)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이 말을 더 직설적으로 풀이하면 “네, 선생님 제가 바로 그 개 입니다. 그러나 그 개들도 주인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음식 부스러기를 먹고 살지 않겠습니까?” 이 여인은 유대인이 자녀이고, 이방인인 자신은 개에 불과하다면, 주인의 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 같은 은혜라도 받아야 하겠다는 지극히 겸손하고 적극적인 자세로 예수님 앞에 엎드려 있습니다.
오늘 이 여인의 놀라운 믿음과 겸손한 자세에 예수님은 끝내 이 여인의 간구를 들어 주셨습니다. 29절 입니다. “(막 7:29)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이제 너가 간절히 구한 그 요청이 응답되었으니 가도 좋다!” 예수님은 귀신이 그녀의 딸로부터 이미 떠나버리고 없다는 사실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선언과 동시에 귀신이 딸에게서 떠나간 것이죠.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습니다만, 이 여인은 그가 가진 믿음의 크기로 인해 예수님께 칭찬까지 받았습니다. 여인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집으로 달려가 보니, 정말 예수님 말씀대로 귀신이 나가고 아이는 평안한 모습으로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여인의 딸은 완전한 자유를 얻었고, 온전한 회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본문에서 예수님의 냉정한 반응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주님은 하실 수 있다는 믿음과, 겸손한 자세로 간청하는 수로보니게 여인의 모습을 다시 한 번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수로보니게 여인에게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를 확인 하시기 위해서 고의적으로 그녀를 향해 냉정하게 반응하셨습니다. 마가복음이 총 16장이나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러나 마가복음 전체에서 예수님을 향해 유일하게 ‘주님’이라고 부른 사람은 오직 이 여인 한 사람 밖에 없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녀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른 것은 예수님이 반드시 내 딸 아이를 고쳐주시고 귀신을 내어쫓으실 수 있는 권세가 있으신 분이라고 확실히 믿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 속에 믿음이 있는가 점검해야 합니다.
오늘 포기하지 않는 믿음과 부스러기 은혜라도 구했던 겸손함으로 간구했던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주님 앞에서 겸손한 자세로 끈기 있는 믿음으로 기도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