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22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마가복음 5장 35-43절)

신약성경에서 회당장은 한국 사회에서 마을의 이장과 비슷한 역할을 했습니다. 회당장은 도덕적으로 흠이 없는 사람이며, 사회적으로도 존경받는 자요, 경제적으로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오늘 본문에 나오는 회당장 야이로 역시 자기 아래 사람들을 대신 보내서 예수님을 모시고 올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자신이 사랑하는 딸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사람을 대신 보내었다가 예수님께서 거절이라도 하시면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회당장 야이로가 직접 예수님 계신 곳을 찾아왔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회당장 야이로가 지나가면 사람들이 고개를 숙여 인사할 정도로 그는 사회의 어른이요, 존경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체면, 자존심 다 내려놓고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딸을 고쳐 주실 것을 간절히 부탁했습니다. “예수님 제 어린 딸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제발 오셔서, 그 아이게 손을 얹어 주십시오. 그러면 그 아이가 병이 낫고 살아날 것입니다.” 야이로의 간청을 들으신 예수님은 그와 함께 집을 향해 가셨습니다. 그러던 중 저 멀리서 야이로의 집 사람들이 그들을 찾아와 도무지 믿고 싶지 않은 비보를 전해 주었습니다. “회당장님, 따님이 죽었습니다. 예수님께 더 이상 폐 끼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예수님이 병든 자를 고치신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예수님이라도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릴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하지 못했던 것이죠. 따라서 야이로의 딸이 죽었으니, 예수님을 모시고 온들 아무런 소용도 없을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성경에는 나오지 않았습니다만, 오늘 이 소식을 들은 야이로의 모습을 한 번 상상해 보시겠습니까? 만일 어느 날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내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내 아들 딸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전화로 듣게 된다면 어떨까요? 지금 아이가 죽었는데 내 옆에 누가 있던, 보던 말던 무슨 상관 입니까? 야이로 땅에 털썩 앉아 딸 아이의 이름을 불러가며 엉엉 울지 않았을까요? 부모에게 있어서 자식이 자기보다 먼저 죽는 것보다 더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야이로는 자신의 가슴을 칼로 도려내는 듯한 아픔 속에 빠졌을 것입니다. 딸이 죽었다. 내가 살 이유가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성경 속으로 들어가 오늘 이 장면을 곁에서 보았다면 야이로는 사람들이 많던 말던, 아마 한 마리의 동물처럼 처절하게 목 놓아 울고 있었을 것 같아요.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비통해 하는 야이로, 삶의 가장 큰 절망을 맛보고 있는 야이로… 오늘 그의 곁에 예수님께서 함께하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야이로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3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막 5:36)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우리가 어제 새벽에 살펴 본 것처럼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고 살아온 여인이 그 질병에서 치유함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내가 나을 것’이란 대담한 확신을 가진 그녀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야이로도 이 여인이 낫는 장면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했습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에게도 굳건한 믿음을 가질 것을 권면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둘러싼 많은 무리들이 더 이상 따라오는 허락하지 않으시고 오직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야이로의 집으로 가셨습니다. 집에 도착하자 이미 아이의 죽음으로 인해 집안은 무척이나 소란스러웠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곡하는 소리, 우는 소리로 온 집안이 가득했습니다. 죽은 아이의 나이가 열두 살 입니다. 인생을 한송이 꽃이라 비유한다면 그녀는 아직 다 피어보지도 못한 꽃과 같습니다. 그러니 그녀의 가족들과 친척들 그리고 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찾아온 손님들이 얼마나 큰 비통에 빠져 있겠습니까? 모두가 슬픔에 빠져 눈이 붉어지도록 울고 있는 가운데 예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는 사람들에게 도무지 믿기 어려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째서 소란을 피우며 울고 있느냐? 이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는 것이다.” 한 번 상상해 보세요. 우리 교회의 주일학교 어린이 중 한 학생이 불의의 사고를 당해서 한참 장례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온 장례식장이 눈물바다가 되었어요. 온 교회가 슬픔에 빠져 훌쩍이고 있는데, 갑자기 시카고의 어느 노 목사님께서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코너스톤 교회 성도 여러분, 왜 이렇게 소란스럽게 울고 계십니까? 저 아이는 죽지 않았습니다. 자고 있습니다.” 하고 이야기한다면 얼마나 황당하겠습니까? 물론 저 아이의 육신은 현재 죽어 있으나, 마지막 때에 다시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을 우리가 알지요. 그러나 장례식 때 이러한 말을 하며 죽은 아이의 시신을 향해 가서 아이를 흔들어 깨우려 한다면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그것은 유가족들에게나 장례식을 찾은 손님들에게 누가 되는 말이 되겠죠.
그런데 지금 나사렛에서 온 30대 청년 예수가 슬픔에 잠겨 있는 유가족들과 조문 온 사람들에게 저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는 거에요. 아마 사람들이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서 “뭐 저런 미치광이가 나 있나?”하고 손가락을 귀에 가져다가 대고 빙빙 돌렸을 것입니다. 40절을 보니 저희가 예수님을 보고 비웃었다고 했습니다. “분명 아이의 숨이 멎고 죽은 것을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확인 했는데, 어찌 저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고 잔다고 하는가?”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고 황당해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집에서 사람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함께 싸늘한 주검이 되어 누어 있는 아이의 시신이 있는 방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예수님은 그 아이의 손을 붙잡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41절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막 5:41) 그 아이의 손을 잡고 가라사대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심이라” “달리다굼! “어린 소녀야 일어나라!”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42절 말씀도 같이 읽겠습니다. “(막 5:42)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죽었던 소녀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곧’ 일어나서 걸었습니다. 죽은 줄만 알았던, 아니 실제로 죽었던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다시 살아나 걷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은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죽은 자도 다시 살리시는 부활의 주님이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죽음이 인생의 끝이 아님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죽음은 끝입니다. 그래서 슬픔이고 두려움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죽음 이후에도 부활의 소망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 삶에 우리가 가진 지식과 지혜, 경험과 소유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질병의 문제, 죽음의 문제와 같은 인생의 난제들을 만나면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깨닫게 됩니다. 아무리 좋은 대학 나와도 아프면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병들면 그 돈이 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그토록 자랑하던 돈도 지혜도 결국에는 한계가 있음을 깨닫는 실존적인 순간이 찾아오는 것이죠. 하지만 예수님은 어떻습니까? 주님은 우리 인생의 모든 난제들을 해결해 주십니다. 우리 앞에 있는 큰 장벽들도 무너뜨려 주십니다. 내 힘으로 해결 할 수 없었던 문제들을 해결해주시고, 도저히 나을 수 없을 것 같던 질병들도 치료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열두 해 동안 혈루증에 걸려 죽어가던 여인도 고쳐주셨습니다. 또한 죽음에 이른 소녀도 다시 살려 주셨습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로 인해 여러가지 문제들과 육신의 질병으로 인해 고통 받는 자녀들을 주님은 도우실 수 있습니다. 딸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야이로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야이로는 예수님을 믿었고 그로 인해 죽은 딸이 다시 살아나는 놀라운 은혜를 입었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아무게야. 너가 지금 그 문제로 두려워하고 있구나? 아니다. 너 두려워 말아라. 나를 믿기만 해라! 내가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믿어라! 내가 너의 그 질병을 고쳐줄 수 있음을 믿기만 해라! 그럼 내가 고쳐주겠다! 내가 치료해주겠다!”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가진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주님만이 그러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계십니다. 우리 문제의 유일한 대안은 예수님을 향한 믿음입니다. 오직 예수님을 신뢰하십시오. 담대한 확신을 가지십시오. 반드시 주님이 일하실 것입니다. 반드시 주님께서 고쳐 주실 것입니다. 반드시 주님께서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이 귀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믿음으로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