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라사 지역으로 떠나셨던 예수님께서 배를 타고 다시 갈릴리 바다를 건너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오셨단 소문이 나자 또 다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그 중 회당장 야이로가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와서 그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사연인즉슨 그의 어린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죽어 가는 딸에게 손을 얹어 주시고 고쳐주시기를 구하고자 찾아온 것입니다. 야이로의 간청에 예수님은 그를 따라 길을 나서시게 됩니다. 그러자 큰 무리가 예수님을 따라가면서 예수님을 에워싸고 밀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신비한 능력이 나타나자 그의 몸에 손을 대고자 서로 밀쳐댄 것이죠
바로 이 장면에 지난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혈루증은 몸에서 피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흐르는 병입니다. 본래 우리 몸은 상처가 나면 딱지가 생기고 피가 멈추게 됩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피가 멈추지 않는 유출병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율법에 의하면 이 여인과 같이 몸에서 피가 멈추지 않는 자는 부정한 것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 여인은 사람들이 많은 틈 속에 있어서는 결코 안 되는 부정한 자였습니다. 그러나 지난 12년 동안 이 병을 고치기 위해서 찾아가보지 않은 의사가 없었습니다. 병을 고치기 위해서 약도 다 먹어보고, 이것저것 다 해보았지만 결국 아무런 효험도 없이 병세만 점점 더 심해졌고, 그나마 가진 재산만 모두 허비하고 말았습니다. 건강도 잃고 재산도 잃었습니다. 혈루병으로 인해 사회생활도 불가합니다. 종교활동도 할 수가 없습니다. 부정한 자이기에 성전에 들어가 제사도 드릴 수 없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 밥을 먹을 수도 없었고, 유월절에 참석할 수도 없었습니다. 부정한 여인이라 결혼도 할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가족들과도 함께 살 수 없었습니다. 숨을 쉬기는 하지만 투명인간처럼 사회에서 죽은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죠.
그러니 지난 12년 동안 이 여인은 얼마나 외로운 삶을 살았을까요? 육체적 고통 뿐만 아니라, 경제적 궁핍과 정서적 외로움이 함께 있습니다. 사회적 고립과 종교적 불결이란 아픔도 같이 있습니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지옥처럼 살아가던 어느 날 이 여인은 예수님께서 자신이 있는 근처에 오신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위험을 무릎 쓰고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나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습니다. 예수님을 둘러싼 사람들이 너무 많은 거에요. 예수님께 가서 자기의 질병을 이야기하고 고쳐달라고 부탁하려고 했는데, 예수님께 말을 붙이기는 커녕, 인사 한마디도 제대로 나눌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대로 포기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바로 이 때 그녀는 놀라운 믿음의 자세를 보여주었습니다. 27-28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비록 예수님을 둘러싼 인파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예수님께 내 사연을 말할 수 없다면, 내가 저 분의 옷자락만 만져도 내 병이 나을 것이다!” 이 여인이 가진 믿음은 실로 대단한 것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시겠어요? 지난 12년 동안 그 어떤 의사도 고치지 못한 병입니다. 안 먹어본 약이 없고, 안 해 본 치료가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처음 보는 이 예수님이 고쳐주신다는 믿음이 있는 거에요. 그것도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손을 얹고 무슨 치료의 말씀이나 기도해주시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그분의 옷자락을 만지면 낫겠다는 믿음 입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이 여인은 간절했습니다. 낫고자 하는 갈망이 큰 만큼, 치유에 대한 확신도 대단 했습니다.
이 놀라운 믿음을 가지고 드디어 무리 사이에 끼어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었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발생했습니다. 29절 보세요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지난 12년 동안 그 누구도 치유하지 못했던 질병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는 한 순간에 나았습니다. 그녀 역시 몸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병의 근원이 마르고 깨끗하게 치유 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자, 여기서 한 가지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사실이 있습니다. 이 날 예수님의 몸에 옷자락을 만진 사람은 이 여인 한 사람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어떻게 그 사실을 알 수 있습니까? 30절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물어보셨습니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예수님은 능력이 자기 몸에서 나간 줄을 아셨기 때문에 이 질문을 하신 것이죠. 그 때 제자들이 예수님께 뭐라고 대답했어요? 31절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제자들이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거에요. “예수님 지금 예수님 몸에 손을 댄 사람이 한 두 사람입니까? 지금 사방에서 사람들이 예수님 보려고 에워싸 밀고 있는데, 누가 예수님의 몸에 손을 댓냐고 물으십니까?” 우리는 제자들의 이 대답을 통해 오늘 이 날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진 사람은 이 여인 한 사람만 있었던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자, 그렇다면 왜 이 여인에게만 이러한 기적이 일어났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옷자락만 만져도 내가 나으리라는 믿음을 가진 여인은 이 한 사람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사실 이 여인은 이미 고침을 받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가시던 길을 계속 가셔도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멈춰 서시고 이 여인을 찾으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주님은 이 여인의 육체적 치유에만 관심이 있으신 것이 아니셨습니다. 그의 영혼의 문제까지 해결해주시고자 하셨습니다. 즉 사회로부터 격리 당하고, 가족들로부터도 외면 당하고, 종교적으로도 배척 당하던 그녀의 전체적인 삶을 회복시키고자 이 여인을 찾으신 것이죠.
여인은 자기에게 기적이 일어난 줄을 깨닫고 예수님 떨며 그 앞에 엎드려 자기에게 일어난 모든 사실을 나누었습니다. 부정한 자가 사람들 사이를 지나면 돌에 맞아 죽을 일입니다. 그러니 이 여인은 지금 목숨을 걸고 자신이 혈루증에 걸린 여인이었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녀의 병이 나았음을 선포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 이 선포를 하실 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3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무엇이 이 여인을 치료 했습니까? 그녀의 ‘믿음’ 입니다.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내 병이 나으리라는 ‘담대한 확신’이 그녀를 오래된 질병에서 고침 받는 역사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병이 나았으니 안심하고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랐으나, 담대한 확신을 가진 이 혈루증 걸린 여인 한 사람에게 기적과 치유가 일어났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 앞에 나왔습니까? 습관적으로 예수님을 따라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믿음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기도를 한 번 해도 하나님이 고쳐주실 것이란 믿음, 도와주실 것이란 믿음을 가지고 하는 기도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새벽 여전히 우리는 기도를 통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 자세이며, 믿음입니다. 오늘 이 여인처럼 예수님을 향한 적극적인 믿음과 간절한 사모함을 가지십시오. 확고한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감으로 주님의 기적의 은혜를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