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14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마가복음 4장 1-9절)

오늘 본문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 입니다. 오늘 본문은 말씀을 들은 이들이 가지는 자세와 반응에 따라 4가지로 그들의 마음이 분류 될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첫 번째 마음의 상태는 ‘길가’ 입니다. 3-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막 4:3)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막 4:4)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농부들은 우기가 시작되는 10월 혹은 11월이 되면, 씨앗 주머니를 허리춤에 차고 밭에 나가 씨앗을 뿌립니다. 그런데 씨앗의 무게가 가볍다 보니 때로는 불어오는 바람에 날라가 씨앗이 길가에 떨어지기도 합니다. 씨가 흙 밭에 뿌려져야 발아한 후 뿌리를 내려서 자라나는데, 길은 땅이 굳어 있거나 딱딱하기 때문에 씨앗이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하늘을 나는 새들이 내려와서 얼른 그 씨앗을 먹어 버리는 것이죠.
이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은 로마의 지배 아래 있었습니다. 로마는 군사 물품을 수송하기 위해서 지배하는 도시마다 가장 먼저 길을 닦았습니다. 그러니 본문에 나오는 ‘길’이란 오늘날의 하이웨이와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농부들도 드나들고 동네 주민들도, 지나가는 여행객들도 자주 사용하는 길입니다. 그러게 사람들이 오고가다 보니 길은 아주 딱딱하게 굳어 있는 땅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씨앗이 뿌려져도 굳은 땅을 파고 들어가 뿌리를 내릴 수가 없는 것이죠.
씨앗이 뿌려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음을 의미합니다. 길가에 뿌려진 씨앗을 먹는 공중의 새는 사단을 의미합니다. 새가 길가에 뿌려진 씨를 먹는다는 것은, 받은 말씀이 단단한 마음을 뚫지 못하고 뿌리 내리지 못하니까, 사탄에게 빼앗기는 것이지요.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 있다 보니 교회에 와서 말씀을 듣기는 해도 말씀이 그들의 삶에 아무런 변화를 일으키지 못합니다. 설교를 들어도 아무런 감동도 없고, 하나님의 은혜도 느끼지 못합니다. 오히려 설교 시간이 지루하게만 느껴집니다. 교회는 오랫동안 다녔지만 아무런 열매도, 변화도, 성자도 없는 삶입니다.
오늘 이들의 마음에 말씀의 씨앗이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이 교회 밖의 사람이 아니라, 도리어 교회 안에 있는 자들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매 주일날 교회 와서 말씀을 듣기는 하는데 말씀에 대한 아무런 기대도 사모함도 없습니다. 말씀이 삶 속에서 아무런 뿌리도 내리지 못합니다. 말씀을 듣기는 하는데 자신의 삶에 적용시키지 못합니다.
말씀이 단단하게 굳어버린 마음 속 깊숙이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마음을 ‘기경’해야 합니다. 옛날에는 시골에 내려가면 농부 아저씨들이 씨앗을 뿌리기 전에, 딱딱하게 묵혀진 땅을 사용하기 위해서 소 뒤에 쟁기를 달아서 흙을 한 번 갈아 엎는 작업을 했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기경’한다고 합니다. 논밭을 한 번 갈아엎어 주는 거에요. 땅은 삽이나 쟁기로 기경하면 되지만, 우리 마음은 어떻게 기경하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딱딱하게 굳어 있는 우리의 마음을 부드러운 흙처럼 만들 수 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사건이 바로 나와 같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한 사실을 가슴 깊이 새기며 마음 속에 있는 죄를 철저하게 회개하는 것이 바로 마음 밭을 갈아엎는 것입니다. 즉, 회개하는 것이야말로 마음을 기경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 있다면, 말씀이 마음 속 깊이 잘 들어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 영혼을 딱딱하게 굳게 만들어 버린 죄 때문에 그런 것이죠.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철저한 회개함을 경험한 사람만이, 온유해진 마음 밭 위에 말씀의 씨앗을 심을 수 있습니다.
두번째는 돌밭과 같은 마음 입니다. 5-6절 말씀입니다. “(막 4:5)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막 4:6)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이스라엘 지역은 토지가 석회질인 지역이 많습니다. 땅이 겉은 흙이라 뿌리가 깊게 자라는 듯 하지만, 조금만 밑에 들어가면 라임스톤 즉 석회암이나 현무암이 있어서 뿌리가 깊게 내리지 못합니다. 뿌리가 깊게 내려가지 못하고 얕게 있다 보니까 해가 쨍쨍 내려 찌는 날씨에 새싹이 견디지 못하고 시들어 말라 버리고 맙니다.
처음에 말씀을 받았을 때는 분명 기쁨으로 받았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씀에 동의도 하고, 하나님께 은혜를 받아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엉엉 울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못 가서 그 기쁨이 사라지고, 시험을 받을 때 믿음을 저버리는 사람 입니다. 처음에는 우리들 중 한 사람 같이 말씀 듣고 ‘아멘. 아멘’하면서 가장 열심으로 말씀 듣고 함께 웃고 함께 울던 사람인데, 시험이 찾아오자,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지는 거에요. 우리 주변에서 함께 신앙 생활하다가 갑자기 사라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면 정말 별거 아닌 이유 때문에, 사소하고 치사한 이유 때문에 교회에서 사라지는 경우가 많아요. “교회 와서 누구하고 싸웠다.”, “아 난 그 인간 보기 싫어 안 믿어!” 돌밭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신바람 나게 신앙생활 하다가 시험 들면 또 다시 바람과 함께 사라집니다. 분명 같이 신앙생활 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보면 사라져 있어요. 이게 돌밭과 같은 마음을 가진 이들의 대표적인 모습입니다.
잠간 믿다가 떠나는 거에요. 잠간 교회 다니다가 어려운 일 생기면 신앙생활 버리는 거에요. 잠간 은혜 받는 것 같다가 또 다시 옛 생활로 돌아갑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사람들입니까? 그 사람이 진짜 좋은 마음 밭을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는 역경과 환난을 통해서 드러납니다. 그 사람의 신앙의 뿌리가 깊으면 역경 속에서도 견뎌 냅니다. 오히려 주님을 향한 아름다운 믿음으로 인해 역경 속에서 빛이 납니다. 그러나 돌밭과 같이 신앙의 뿌리가 없거나 얕은 사람은 역경이 오면 다 떠나갑니다. ‘교회가 나에게 아무런 유익도 못 주는 것 같다’, ‘난 여기 있는 것이 편하지 않다’ 하면서 떠나는 거에요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신의 이기심 때문에, 교회도 버리고, 신앙도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돌밭의 마음을 가진 자들의 모습 입니다.
마음 밭에 말씀이 자라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돌덩어리들이 있어서 말씀이 뿌리가 없어 시험이 오면 말라 죽어 버립니다. 말씀이 자라는 것을 방해하는 것들에는 어떤 돌덩어리들이 있을까요? 교만의 돌덩어리, 미움의 돌덩어리, 상처의 돌덩어리, 남과 비교하는 데서 오는 열등감의 돌덩어리, 하나님과 사람들을 향한 분노와 원망의 돌덩어리들 입니다. 이런 것들이 마음 속에서 제거되지 않으면 말씀이 깊게 뿌리 내리지 못합니다.
세 번째는 가시떨기 밭과 같은 마음 입니다. 7절 말씀 입니다. “(막 4:7)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치 못하였고” 본래 논밭에는 농부가 키우는 식물이나, 곡식 외에도 엉겅퀴, 민들레 등 여러 잡초도 함께 자랍니다. 농경지에는 잡초 뿐만 아니라 가시떨기들도 참 잘 자랍니다. 문제는 곡식이 가져가야 할 영양분을 가시떨기가 빼앗아 가는데 있어요. 곡식이 땅에서부터 올라오는 양분을 먹고 자라서 번식력이 왕성해져야 하는데, 가시떨기가 곡식이 먹어야 하는 영양분을 다 가지고 가는 거에요. 그러니까 곡식이 잘 크지 못합니다. 게다가 가시떨기들은 햇빛을 막아서 곡식이 성장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은 우리 마음 속에도 말씀이 자라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이런 가시떨기가 있음을 말씀해 주셨던 것이죠. 그럼 우리 속에 있는 가시떨기는 과연 무엇일까요?
누가복음에 보면 가시떨기가 3가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상사는 염려, 물질에 대한 탐욕, 그리고 그로 인한 하나님을 향한 불신과 불순종 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그리스도인 안에서 말씀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거에요. 주님 말씀 순종하는 것보다 먹고 사는 문제가 더 시급해요. 순종하는 것보다 어떻게 부자 되는가가 더 중요해요. 하나님이 나에게 복을 주시고 부자 만들어 주지 않으셔서 불만이고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는 불신을 갖고 있어요. 이것이 바로 우리 마음 속 가시떨기들입니다.
마음에 가시떨기가 있는 사람은 언제나 마음에 세상 사는 일에 대한 염려가 가득합니다. 마음 속에 염려로 가득하다 보니까 하나님께 감사를 잘 못해요. 자기 삶에는 부족한 것 밖에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 할 제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세상 염려가 마음을 덮고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가 은혜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염려의 가시덤불이 하나님의 은혜를 못 보게 하는 거에요.
이들은 말씀에 대한 열정이 없는 사람은 아닙니다. 말씀을 좋아합니다. 예배 자리 나오는 것 좋아합니다. 말씀에 대한 사모함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세상의 염려, 재물에 대한 유혹과 욕심이 너무 커서 말씀에 대한 사모함을 잡아 먹었습니다. 그래서 진지한 구도자의 삶을 살지 못한 채, 아무런 영적 열매와 성장을 얻지 못한 채 끝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네 번째로 좋은 땅과 같은 마음 입니다. 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막 4: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와 육십 배와 백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좋은 땅에 떨어지는 씨앗은 흙이 부드럽고 돌덩어리가 없어서 뿌리가 깊이 자리 잡습니다. 새싹이 자라는데 방해가 되는 잡초나 가시떨기가 없어 줄기가 곧게 자랍니다. 그리고 열매를 맺어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받아 들인 후 그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는 옥토 같은 마음만 있다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넘치게 받게 됩니다. 말씀을 듣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들은 말씀을 지키는 자,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가 바로 좋은 마음, 즉 옥토를 가진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나에게 주신 말씀이 무엇인지 듣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기 위해 그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 주님의 그러한 주의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이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물론 우리가 지금 이렇게 교회 와서 말씀을 듣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시간과 장소는 바로 우리가 이 들은 말씀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나의 가정과 내 직장과 같은 일상 속 현장 입니다. 주님은 교회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세상 속에 나아가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을 필요로 하고 계십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그리스도인이 바로 옥토와 같은 마음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상품’은 바로바로 찍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작품’은 오랫동안 기다리고 기다려야 탄생할 수 있습니다. 장인의 손에서 떨어지는 땀과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있어야 비로서 하나의 작품이 탄생 합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 입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이 힘들지만 그래도 끝까지 기도의 눈물과 땀 흘리는 수고가 있는 인내 속에서 하나의 멋진 작품 같은 그리스도인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좋은 밭에 뿌려진 씨는 반드시 열매를 맺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