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29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다리라 (시편 106편 13-27절)

성경에는 여러가지 기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홍해가 반으로 갈라진 이야기, 여리고 성이 무너진 이야기, 백세 된 할아버지가 아들을 낳는 이야기,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을 먹인 이야기 등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에는 무수한 기적 이야기로 가득 합니다. 성경을 통해 이런 놀라운 이야기들을 읽을 때면, 이와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내가 만일 저 기적이 일어나는 현장에 있었더라면, 지금보다 믿음이 더 좋았을텐데…”, “만일 내가 홍해가 반으로 갈라지는 것을 내 눈으로 보았다면 다시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의심하지 않을텐데”, “만일 내가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을 먹이는 그 현장에 있었다면 죽도록 예수님 의심하지 않고 믿었을거야… 그런데 왜 나에게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이런 기적적인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며, 성경에 나오는 기적의 주인공들을 부러워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요? 하나님이 꿈에서 한 번 나타나 주시기만 하면 평생 하나님 의심하지 않고 잘 섬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꿈에서 하나님 만난 것으로 모자라 꿈에서 그의 소원까지 응답 받은 솔로몬도 결국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오병이어의 현장에 있던 열 두 제자들도 결국 예수님 잡히시던 날,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어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 되는 것도 보았습니다. 죽은 나사로가 살아나는 것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 이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친 것이죠.
세상 사람들은 말합니다. “하나님을 보여달라. 그럼 하나님을 믿겠다. 세상에 기적이 어디 있냐?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나타내 보아라!” 이처럼 사람들은 기적을 봐야지만 하나님을 믿겠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도 자신의 삶에 초자연적인 기적이 일어나기를 학수고대 하는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하나님이 잘 믿어지지 않으니까 어떤 기적적인 사건이 일어나서 하나님의 존재를 거부할 수 없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겠죠.
기적을 본다고 하나님을 다 믿을까요? 기적의 주인공이 되면 100% 하나님 신뢰하고 무작정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될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은 바로 모세를 따라 애굽을 떠나 광야로 나온 출애굽 1세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떤 기적을 보았습니까? 애굽에서 일어난 열 가지 재앙을 다 보았습니다. 나일강이 피로 변하고, 온 땅에 개구리와 메뚜기 떼가 가득한 것을 보았습니다. 이와 파리가 애굽 사람들을 괴롭히지만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고 있는 고센 땅은 안전한 것을 보았습니다. 불덩어리 같은 우박이 하늘에서 내려 애굽 사람들을 치는 것을 보았고, 고센 땅을 제외한 애굽 전역에 흑암이 찾아오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적의 사건, 도저히 두 발로 건널 수 없었던 ‘홍해’가 반으로 갈라져 온 이스라엘 백성이 건너온 현장에도 있었습니다. 홍해를 건너서 뒤를 돌아보니 그들을 죽이기 위해 좇아오던 애굽 바로와 모든 병사들이 그들의 병거와 무기와 함께 홍해에 쓸려 죽었습니다.
성경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이야, 만일 내가 이 정도로 많은 기적을 체험하면 진짜 평생 하나님 안 잊겠다. 아니 못 잊겠다. 내 평생 하나님 안 믿을래야 안 믿을 수가 없겠다.” 그러지 않겠어요?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떠했습니까? 그들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잊어버렸습니다. “(시 106:13) 저희가 미구에 그 행사를 잊어버리며 그 가르침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13절을 보세요. 여기 ‘미구에’란 말이 나오죠? 이 말은 ‘얼마 오래 지나지 않아’라는 말입니다. 즉 이스라엘은 홍해를 건넌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일을 잊어버렸어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까마귀 고기를 먹어도 이렇게까지 까먹지는 않겠어요. 개구리가 올챙이적 기억 못한다 해도, 어떻게 홍해가 둘로 갈라지고 건너오게 하신 하나님을 잊을 수 있을까요? 그러나 그게 이스라엘이었어요. 그들은 홍해를 건넌 후 얼마 못 가, 또 다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지 못한 채, 인상을 쓰며 불만을 가득 안고 광야에서 지냈어요. 너무 신기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저들이 경험한 기적 중 하나라도 체험한다면 평생 만나는 사람들마다 내가 경험한 기적을 증거하며 간증하며 살아갈텐데, 저들은 어찌된 것인지 그 수많은 기적을 경험하고도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잊어버렸습니다.
광야에서 모세를 막 욕하는 거에요. “너가 우리를 목말라 죽게 하려고 광야로 끌고 왔냐? 물 내놔라!” 반석에서 물이 나오니까 이번에는 밥 달라고 모세를 코너로 몰아 붙입니다. “우리가 애굽에서 있을 때는 생선도 먹고, 오이도 먹고 부추와 파와 마늘도 먹었는데 이게 뭐냐? 배고파서 더 이상 못살겠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거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먹이실거라는 믿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불만이 폭주하고 원망과 탄성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14절 말씀 보세요. “(시 106:14) 광야에서 욕심을 크게 발하며 사막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였도다” 메추라기 사건 기억 나십니까? “고기 먹고 싶다.” 참 이스라엘 백성들도 양심이 없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해 가고 계신데 거기 들어가서 먹으면 되죠. 조금만 기다리면 되는데 그 새를 못 참고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떼를 쓰고 있는 거에요. 왜 부모들이 어린 자녀 차에 태우고 타주로 여행 갈 때 가장 듣기 싫은 질문이 그거 아네요? 집에서 떠난 지 채 30분도 안 지났는데 “엄마 우리 다 왔어요? 아빠 우리 얼마나 가야해요?” “Are we there yet?” 못 기다리겠다는 거에요. 나는 당장 이 좁고 불편한 차에서 내려서 편하게 쉬면서 놀고 싶은 거에요. 참지 못하는 것이 바로 미성숙한 어린 자녀들의 특징 아니겠습니까? 13절 다시 보세요. “(시 106:13) 저희가 미구에 그 행사를 잊어버리며 그 가르침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그 가르침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여기서 ‘그 가르침’이란 하나님의 ‘인도하심’, ‘지시하심’을 말합니다. 좋으신 하나님께서 조금만 지나면 알아서 다 채워주실탠데 참을성이 없는 자녀처럼 하는 거에요. “하나님 나 차에서 내릴래요. 나 도저히 못가겠어요. 물 줘요. 먹을 거 줘요. 화장실 갈래요. 하나님 Are we there yet?”
14절로 다시 가서 보세요. “오히려 광야에서 심하게 욕심을 부렸습니다.” 멀리 여행 가려고 차에 탔으면 불편한 것도 참을 줄 알아야죠. 운전하시느라 피곤하신 아버지 생각도 하고, 자식들 위해 밤새 짐 싸고 도시락 싸신 어머니를 생각할 줄 아는게 진짜 성숙한 자녀 아니겠어요? 이스라엘 백성이 진짜 성숙했으면, 그들을 인도 하느라 수고하고 있는 그들의 지도자 모세와 장로들 천부장과 백부장에게 가서 “수고 하십니다. 힘드시죠? 저희가 뭐 도와드릴 것은 없을까요? 네 지금 불편합니다만 괜찮습니다. 조금만 더 참아보죠. 참다보면 약속의 땅에 도착하겠죠.”하고 말이라도 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마트에서 장보는 어머니에게 떼쓰는 미숙한 어린아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에게 어리광 부렸어요. “물 내놔라! 먹을 것 내놔라! 고기 내놔라! 춥다! 덥다! 나 안간다! 애굽으로 돌아갈련다! 너가 싫다!” 모세는 여러 차례 경고 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제게 이렇게 불평하고 원망을 토로하는 것 이것은 제게 하는 것이 아니고, 제 뒤에 계신 하나님께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입니다.” 14절에 “심하게 욕심을 부렸다”는 말을 더 가슴에 오게 해석하려면 이렇게도 할 수 있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들 밖에 몰랐다” Message 성경 보니까 이렇게 해석 했더라고요 “They only cared about pleasing themselves” 자기들만 생각했어요. 하나님이고 뭐고, 모세고 뭐고 지금 내가 배 고프고, 내가 목마르고, 내가 고기 못 먹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어요.
한글 성경을 보면 “하나님을 시험했다”고 나오죠? NIV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인내심을 Test”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린아이들 중에는 영악한 애들이 있어요. 내가 이 정도 장난쳐도 저 사람이 봐주나? 괜찮나? 어른을 Test 해보는 애들이 있어요. 간 보는 거죠. 이것은 애가 머리가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어른에 대한 예의가 없어서 그런 거에요. 심지어 부모에게도 그런 애가 있어요. 그럴 때는 부모가 자녀를 따끔하게 혼내 줘야 합니다.
15절 보세요. “(시 106:15) 여호와께서 저희의 요구한 것을 주셨을지라도 그 영혼을 파리하게 하셨도다” 하나님은 저들이 요구하는 마실 것 주셨어요. 먹을 것 주셨어요. 그리고 한달 간 아주 풍족하게 질리게 먹을 수 있을만큼 많은 양의 고기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15절 보세요. “그 영혼을 파리하게 하셨도다”로 되어 해석 있습니다만 사실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무서운 전염병을 주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인내심을 테스트 하는 자녀들을 향해 매를 드시고 훈육하신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집 센 백성이요 목이 굳은 백성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께 불평합니다. 지도자 모세와 아론을 배신하죠, 호렙산에서 송아지 우상 만들어 숭배하죠. 하나님의 노가 이스라엘을 향하여 격렬하게 임합니다. 이스라엘이 보여준 진상의 클라이막스는 24절 입니다.
24절 보세요 “(시 106:24) 저희가 낙토를 멸시하며 그 말씀을 믿지 아니하고” ‘낙토’는 아름다운 땅, 즉 젖과 꿀이 흐르는 땅,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주시기로 약속의 땅 가나안 땅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땅을 멸시 했어요. “하나님 저 땅에는 거인 살잖아요! 우리가 아낙 자손 어떻게 이겨요? 우리는 애굽으로 돌아가렵니다!” 24절 다시 보세요. 저희가 낙토, 하나님께서 주시기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멸시하며 그 땅을 주시기로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아니 않았어요.
25절 보세요. “(시 106:25) 저희 장막에서 원망하며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치 아니하였도다” 심지어 이들을 애굽에서 끌어내주신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이제 듣지도 않습니다. 결국 출애굽 1세대는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을 제외하고 광야에서 다 죽게 됩니다. 26절에 나오죠. “저가 맹세하시기를 광야에 엎더지게 하고” 하나님이 저들은 결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다 죽도록 결정하셨어요. 결국 1세대 가데스바네아 바란 광야에서 37년간 방황하다가 죽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자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지 못한 자들의 최후가 바로 이러합니다. 제가 서두에 우리는 성경에서 나오는 기적의 스토리들을 보며 부러워한다고 언급 했습니다. 그러나 실상 여기 있는 우리 모두가 기적의 주인공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나와 같은 죄인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야 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기적 입니다. 또한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면 분명히 하나님께서 살려주시고, 도와주시고, 인도해주신 은혜가 있음을 우리는 부인 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경험하고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해 내 뜻과 욕심대로 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변하지 않는 현실 앞에서 조급해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뜻과 욕심대로 행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며 주님을 끝까지 의지하고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