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께 심하게 반항하던 아들이 있습니다. 사춘기 때 시작한 인생의 방황과 부모를 향한 반항심은 그칠 줄 몰랐습니다. 질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하루가 멀다 하고 밖에 나가 사고를 치고, 때로는 밤 늦게 어머니가 경찰서에 가서 허리를 90도 굽혀가며 피해자에게 죄송하다고 연거푸 인사를 헌 후에야, 얼굴이 상처투성이인 아들을 데리고 올 수 있었습니다. 아들은 집에 돌아오는 길에도 어머니를 향해 도리어 불 같이 화를 내고 고함을 지릅니다.
그렇게 누구보다 아들을 사랑하셨던, 어머니가 어느 날 암에 걸려 시한부 판정을 받고 중환자실에 누워 있습니다. 이제 얼마 후면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어머니를 보며, 그제서야 아들은 어머니를 보며 오래전부터 꼭 하고 싶었던 말을 꺼냅니다. “엄마… 내가 미안해… 엄마 내가 잘못했어…” “아들, 엄마는 아들이 엄마 아들이라는 사실이 너무나도 좋고 행복해. 아들 사랑해” 어머니의 장례식날 아들의 두 뺨에서 흐르는 눈물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들의 마음 속에는 무거운 죄책감이 밀려왔습니다. “어머니가 저렇게 아프셨던 것은 다 나 때문이야! 어머니는 나 때문에 얼마나 속이 상하셨을까? 살아 생전에 조금이라도 더 잘해 드릴걸! 어머니 불효자는 웁니다” 이런 못난 아들내미가 뭐가 좋다고, 우리 어머니는 나를 끝까지 사랑해 주셨나? 과연 내가 어머니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나 있을까?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죄송한 마음이 아들의 가슴 속에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기록한 사도 바울의 마음 속 한편에는 바로 이 아들이 느끼는 유사한 감정이 있습니다. 한 때 누구보다 앞장 서서 교회를 핍박했던 바울… 예수 믿는 사람 잡아다가 감옥에 가두었던 바울… 바울이 얼마나 그리스도인들을 못살게 괴롭혔는지 그의 이름만 들어도 사람들이 벌벌 떨었습니다. 그런 바울이 다메섹에 있는 성도들을 잡으러 가던 길 위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지울 수 없는 그의 과거가 이따금씩 다시 찾아옵니다. 바울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니까 너무 신비하고 이해가 안 되는 거에요. “아니 어떻게 나와 같은 끔찍한 일을 저지른 사람이 이렇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꾼이 되었을까?” 고린도전서 15장 9절에 그가 이렇게 말합니다. “(고전 15:9) 나는 사도들 가운데 가장 작은 사람이요, 사도라 불릴 자격도 없는 사람입니다. 이는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뒤돌아보고, 또 다시 돌아보아도 지금 이렇게 살 수 있는 이유는 한 가지로 밖에 설명이 안 됩니다. “아…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로구나?”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하고 고백했습니다.
그 후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해주시고 사도로 부르신 목적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 7절에서 그가 말합니다. “(엡 3:7) 이 복음을 위하여…” 하나님은 복음을 위해 그를 택하셨습니다. 7절을 다시 보시면 “이 복음을 위하여…” 7절 마지막 보세요.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그는 복음을 위해 하나님의 일꾼이 된 사람이에요. 8-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엡 3: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엡 3:9)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바울을 사도로 세워주시고 그에게 주신 특별한 임무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이방인에게 전하고, 감추어져 있었던 하나님의 비밀을 드러내어 가르치는 일 입니다. 사도 바울이 전한 ‘비밀의 내용’은 우리가 어제 새벽에 이미 살펴 보았습니다.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구원을 얻고 하나님 나라의 후사요 약속을 이어 받을 자가 된다”는 말씀이 바로 사도 바울이 전한 비밀이죠.
자, 그런데 사도 바울의 글을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는 이제 본래 이방인이요, 복음과는 상관없이 살아가던 외인이었던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을 하나님께서 불러 주시고 주의 백성이자 교회로 세워주신 목적이 있음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에베소 교회에만 해당하는 내용이 아니라, 오늘 이 본문을 읽는 우리 모두에게도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도 아니요, 유대인도 아닌 우리들을 택하여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을까요? 그 내용이 바로 10 말씀입니다. 10절을 보겠습니다.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해서 이방인에게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한 은혜의 구원을 전해 주셨듯이, 이제는 교회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 전 세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동일한 복음의 메시지를 알게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10절 말씀을 보니 교회가 복음의 능력을 알게 하는 대상 중에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자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천사를 의미합니다. 교회가 세상을 향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하늘의 천사들까지도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인정하게 될 놀라운 지혜라는 것이죠.
실제로 에베소 교회 사람들의 대다수는 예수의 ‘예’자도 모르고 평생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사도 바울의 전도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고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요 인생의 주인으로 영접하게 된 것이죠. 따라서 이전에는 하나님 나라, 은혜, 평강, 천국, 복음… 이런 것들과 아무 상관도 없는 외인이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난 후 이제는 어떻습니까? “(엡 3:12)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 이전에는 하나님을 몰랐으며, 죄로 인해 그 앞에 나아갈 수도 없는 존재 였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깨닫고 난 후에는 하나님 앞에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는 특권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다시금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되새겨주고 있습니다. 로마 사람들은 그가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도를 전한다고 조롱하고 놀려 댔지만, 사도 바울은 구원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그 누구보다 귀하고 자랑스러웠습니다. 그가 로마서 1장 16절에 말하지 않습니까? “(롬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구원의 능력이 있는 이 귀한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갇히고 환난을 당하는 자신으로 인해 낙심하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에게 복음은 그의 목숨과도 맞바꿀 만큼 귀한 것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복음을 위해 당한 그의 고난을 도리어 영광으로 받아들이기를 권면 했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음의 원수인 사도 바울을 복음의 일꾼으로 부르셨고, 그리스도 밖에서 살아가던 외인이었던 에베소 성도들을 교회로 불러주셨습니다. 이 은혜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졌습니다. 죄인으로 살아가던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시고 주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도 복음의 일꾼으로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복음의 일꾼으로서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참여하십시오. 영혼 구원에 힘쓰고 영혼 양육에 힘쓰십시오. 그것이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주의 일꾼으로 부르신 목적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올 한해 복음의 일꾼이자 교회의 일원으로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