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절 말씀에 바울은 성도들이 교제를 삼가야 할 부류의 사람들이 있음을 말해줍니다. 먼저 2절에 바울은 이 부류들을 일컬어 매우 모욕적인 단어인 ‘개’라는 강한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개’란 표현은 집에서 키우는 애완용 강아지가 아니라, 무리 지어 다니는 사나운 들개들을 가리킵니다. 성도들을 통해 자기 배만 채우고 자기 잇속만 챙기는 거짓 교사들, 거짓 사도들 입니다. 이런 자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볼 때 성도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지 않고, 성도들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자기 밥그릇만 챙기는 사역자들은 가장 악질인 사람들입니다. 2절에 ‘행악자’란 표현역시 바로 이 거짓 교사들을 가리킵니다. 성경의 바른 교리를 가리키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되는 가르침을 주는 거짓 목자들을 주의해야 합니다. 양의 옷을 입은 이리와 같은 자들로 그들은 성도들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주는 행악자들 입니다. 2절에 나오는 세 번째 부류는 ‘손 할례당’입니다. 이들은 육신의 할례를 강조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버리고, 율법적인 의식적인 행위를 강조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진짜 믿음에는 관심이 없고, 겉으로 드러나는 외적인 행위만을 중요시 하는 사람들 입니다. 이들 역시 가짜 그리스도인들이며 거짓 교사들입니다.
2절에 나오는 ‘개’, ‘행악자’, ‘손할례당’… 이들의 공통점은 성경의 바른 가르침에서 떠나 잘못된 교리를 가르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충분하지 않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들은 율법을 강조하며 할례와 같은 의식과 구약의 규례들을 지키는 행위를 더해서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 했습니다. 당시 초대 교회에는 바리새인 출신들 혹은 정통 유대교에서 개종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충분하다는 것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자꾸만 구원을 받기 위해서 믿음 위에 율법을 더했습니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율법주의자’들 입니다. 바울은 이들의 거짓 가르침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의로움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거짓 가르침을 교회 안에서 퍼트리는 것을 경계토록 했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의 특징은 자신들의 의로움을 자랑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바리새파 출신이다! 나는 하나님께서 제사장으로 선택하신 레위 지파 출신이다! 나는 예수님과 같은 유대지파다!” 오늘날로 말하면 “나는 모태 신앙이다!”, “나는 40일 금식 했다!”, “나는 000 교회에서 장로다!” 자신의 것을 마치 의로움의 기준으로 내세우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볼 때 자신의 의로움을 내세우는 율법주의자들의 모습은 매우 어리석은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니 보실 때 결코 의로움을 가져다 주는 기준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진짜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모습을 보입니까? 3절 입니다. “(빌 3: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할례”라는 것은 본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와 그의 후손이 하나님께 속한 언약의 자녀가 됨을 나타내는 표시 입니다. 바울은 진짜 할례는 육신의 행위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3절 말씀처럼 “성령충만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예수 그리스도만을 자랑하고, 자신의 육체를 의지하거나 내세우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자기들은 더 의롭고 거룩하고 특별한 존재들인 것처럼 교회 안에서 거들먹거렸습니다. 실재로 이들 중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그러한 삶을 통해 자신의 공로와 의로움을 자랑하며 그렇지 않은 자들을 비난하고 무시하며, 더 나아가 자신들처럼 살지 않으면 구원이 없다고 가르치기까지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거짓 교사들, 거짓 사도들, 성경의 가르침을 벗어나는 자들에게 육체를 신뢰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지적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 자신은 웬만한 율법주의자들 조차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얼마나 탁월한 유대인이었는지 보여주었습니다. 4-6절 말씀 입니다. “(빌 3:4)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빌 3:5) 내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빌 3:6)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율법주의자들이 자랑하는 육체적인 것들의 어리석음을 지적하기 위해 사도 바울이 자신의 것을 한 번 이들 앞에서 자랑해 보는 것이죠. 5절부터 보시면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이스라엘 족속이다!” 무슨 말입니까? 자기는 아브라함의 피를 이어 받은 정통 유대인이라는 거에요. “나는 베냐민 지파다!” 이건 자신이 왕족 출신이라는 말입니다.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어떤 사람들은 중간에 유대교로 개종 하잖아요? 바울은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 어머니 둘 다 순수 히브리인인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게다가 웬만한 유대인들조차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율법 지키는 것에 목숨을 건 바리새인 출신 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이렇게 말하는 거죠. “너희만 잘났니? 나 순수 시민권자야. 난 하버드 대학 수석 졸업 했어! 너희만 율법 잘 지킨 줄 아니? 난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핍박까지 했어. 스데반 집사 죽을 때 나는 찬성표를 던진 사람이야! 지금 너희가 내 앞에서 육체의 것을 자랑하니? 부와 명예 지식, 지혜, 학벌, 명문 가문, 나는 모든 것을 다 갖춘 사람이야! 율법주의자 너희 지금 굼벵이 앞에서 주름 잡는 거야!” 이런 식으로 바울이 자신은 사실 율법주의자들이 볼 때 부러워할 만한 모든 요소를 다 갖춘 사람이었음을 말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지금 자랑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진짜 말해주고 싶었던 것은 7절 말씀입니다. 7-9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빌 3: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빌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빌 3: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부, 명예, 학식과 권력 이러한 인간적인 요소를 신뢰하고 살아가는 것은 불신자들의 삶의 방식 입니다. 바울도 예수님 알기 전에는 이러한 것들이 최고인 줄 알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만나고 보니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를 아는 것, 또한 주님께서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어떤 삶을 사셨는지를 깨닫는 것” 그것이 가장 귀한 것임을 고백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얼마나 귀한 지 깨닫고 보니, 이전에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다 배설물 정도 밖에 안 보일 정도 였습니다. 심지어 예전에 좋게 생각했던 것들, 갖고 싶었던 것들, 꿈꾸던 것들이 예수님을 아는 일에 방해가 되자, 그것들을 다 밖으로 던져 버렸던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모든 것을 다 주고서라도 예수 그리스도만은 반드시 소유하고자 할만큼 예수님이 가장 귀한 것임을 고백한 것이죠.
사도 바울의 기준에서 볼 때 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얻고도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 입니다. 그것처럼 불행한 삶은 또 없습니다. 도서관을 가득 채울 만큼 모든 지식을 다 얻고도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면 가장 무지한 사람입니다. 내 삶에 예수만 남을 수 있다면 남은 모든 것은 상실해도 기뻐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바울의 고백입니다. 아니 그는 실로 그리스도를 아는 일과 얻는 일에 해가 되는 장애물들을 다 버렸습니다.
미국의 어느 한 여인이 백화점을 경영하는 부자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 백화점을 경영하는 부자가 자기 아내 된 여인을 데리고 자신이 운영하는 백화점에 갔습니다. “여보, 여기 있는 물건 중에 당신이 가지고 싶은 것을 다 가지시오. 무엇이라도 당신이 원하면 내가 다 주겠소!”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성숙한 아내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당신 한 사람으로 족합니다. 당신을 얻는 것이 곧 이 백화점을 얻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얻는 것이 곧 온 천하를 얻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한 사람이 바로 천국의 복락을 찾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것을 상실해도 그리스도 만큼은 반드시 소유하는 삶의 우선순위를 가진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세상의 유익도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사람이 진짜 그리스도인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무엇을 자랑하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 두 가지 질문에 늘 예수 그리스도라고 대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전부를 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이요, 예수님은 소망이며, 예수님은 우리의 전부이십니다. 이 귀한 예수만을 자랑하고, 예수만 의지하고 살아가는 삶, 예수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도 과감하게 내려놓고 포기할 수 있는 삶, 그런 오늘 이 하루, 남은 우리의 생애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