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05 절망을 이기는 믿음 (빌립보서 1장 19-21절)

사도 바울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평생 복음을 전한 사도 바울의 삶은 모진 고난으로 점철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가는 곳곳마다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기는커녕 매질과 조롱을 당했고, 감옥에 갇히고 지금은 사형이라는 엄청난 고난을 당할 위기에 처하고 있습니다. 웬만한 사람이 바울의 상황에 놓여 있었으면, 하나님을 향해 불평과 원망을 쏟아 놓았을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하나님을 섬겼는데 4년 넘게 감옥에 갇혀 있게 된다는 것이 웬 말입니까? 사도 바울 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그를 지켜보던 그의 동료들, 그리고 온 세상의 성도들은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힌 것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 거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열심히 믿는 대가가 결국 저거 구나?” 분명 사람들은 바울이 그 차갑고 어두컴컴한 감옥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위대한 사도 바울은 자신을 바라보고 걱정하고 염려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빌립보서 1장 18절 말씀을 통해 그의 마음을 전해주었습니다. “나는 기뻐하고 기뻐하노라.” “I rejoice and Yes I will continue to rejoice.”
자,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고난 가운데서도 여전히 기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19절 말씀을 함께 봅시다. “(빌 1:19) 이것이 너희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19절에서 말한 ‘구원’이란 그가 감옥에서 풀려나는 것을 말합니다. 19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나를 위해 계속 기도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이 나를 돕고 계시기 때문에 나는 곧 내가 풀려날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그냥 이대로 감옥에서 버려두지 않으실 것이란 확실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 근거가 무엇입니까? 자신을 위한 ‘성도들의 기도’와 ‘성령의 도우심’ 입니다. 비록 지금은 넘어져 있고, 감옥에 갇혀 있지만 반드시 하나님께서 놀라운 역사를 이루실 것을 사도 바울은 확신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사도 바울과 같은 믿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절대로 나에게 나쁜 것을 행하실 분이 아니야. 주님 이렇게 나를 버리실 분이 아니야. 우리 주님 선하신 분이야. 우리 주님 반드시 나를 고쳐주실거야. 선하신 주님께서 반드시 이 상황을 이기게 해 주실거야.” 믿음의 고백으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기대와 소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울수록 이런 믿음의 고백들을 입을 열어 표현하시기 바랍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내 삶 속에서 일하고 계심을 다 믿지 못해도 먼저, 말로 믿음의 고백을 하십시오. “하나님 도와주실거야.” 우리의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우리가 말로 고백한 것이 다시 우리의 영혼을 움직입니다. 우리들도 가끔 힘든 상황에서 “할 수 있어. 그래 할 수 있어.”하고 말로 고백하는 순간, 내 내면에 없던 힘이 솟아 날 때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언어가 우리의 영혼을 움직입니다. 그래서 힘들 때 하나님을 신뢰하는 찬양을 입으로 고백하면 그 찬양이 우리의 영혼을 움직이는 능력을 나타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주님께 의지하는 자들을 외면치 않으시고 반드시 저들을 도와 주신다고 약속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믿음의 선포이기에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일수록 우리의 입술을 열어 믿음의 고백을 말로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저를 한 번 더 따라 해 보시겠습니까? “주는 나를 / 돕는 자시니 /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입술을 열어 믿음의 선포를 하십시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이런 믿음의 고백이 우리로 하여금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바라보게 만들어 줍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는 그 어떤 낙심도 절망도 이겨 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은 성도들의 기도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자신을 감옥에서 반드시 풀려나게 하실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믿음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한 발자국 더 나아갔습니다. 그것은 만에 하나 자신의 삶이 이 감옥에서 사형을 당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하더라도 여전히 그의 죽음조차 헛되지 않고 유익하다는 고백이었습니다. 20-2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빌 1: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빌 1: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많은 경우 우리들은 내가 원하는 대로 삶이 진행되어야만 하나님께서 도우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울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자신의 삶이 그가 계획하고 소망한대로 펼쳐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것이 비록 죽음일지라도, 여전히 그것은 자신에게 손해가 아니라 ‘유익’임을 고백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선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완전하기 때문입니다. 이 위대한 바울의 고백을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20절 말씀을 자세히 보겠습니다. 여기 보면 ‘부끄럽지 아니하고’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 말은 ‘낙심하지 아니하고’라고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앞으로 감옥에서 풀려나던지, 아니면 감옥에서 죽음을 맞이하던지,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낙심하지 않겠다’고 선포한 것이죠.
그는 자신이 들고 있는 ‘믿음의 방패’를 내려놓지 않겠노라고 다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0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봅시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이 말을 다시 해석하면 이렇게 다시 해석할 수 있어요. ”내가 간절히 기대하고 소망하는 것은, 내가 어떤 일에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어떤 일에도 낙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감옥을 나가 자유의 몸이 되거나, 아니면 감옥에서 죽게 되거나 결과와 관계 없이 끝까지 믿음의 방패를 들어 올리겠다고 고백 했습니다.
믿음의 방패를 들고 있는 사도 바울은 환난 중에도 담대합니다. 20절 말씀을 계속해서 봅시다.”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바울이 바라는 것은 단순히 감옥에서 풀려 나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살든지 죽든지 자신의 몸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위대하게 되시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인생의 초점을 그리스도께 맡길 때,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만 존귀하게 될 수만 있다면, 그 자신이 로마 감옥에서 죽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20절에 나오는 ‘살든지 죽든지’라는 표현에 주목해 보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바울의 입장에 있으면 어떻게 기도하겠습니까? “하나님, 저 반드시 살아야 하겠습니다. 제가 살아야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 저 이 감옥에서 꺼내 주십시오. 하나님 저를 구원해주십시오.” 하고 간절히 기도했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상황에 적용하자면 다음과 같은 종류의 기도 입니다. “하나님, 저를 부자로 만들어 주십시오. 제가 부자가 되야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지 않겠습니까? 제가 가난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예수님 믿겠습니까?” 그러나 많은 경우 이러한 기도들은 자신의 욕심을 합리화 하고, 내면의 탐심을 가지고 하나님과 거래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제게 이거 해주시면, 제가 저거 해 드릴께요.” 이러한 기도는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구하는 세상적인 것들 하나 없이도, 여전히 나를 통해 위대한 일들을 하실 수 있으신 분이십니다. 어느 순간부터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 이렇게 해주셔야 해요! 그래야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하고 하나님을 가르치듯이, 하나님 보다 내가 더 지혜로운 듯이 기도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기도는 겸손 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과 거래하는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오히려 이렇게 기도 했어요. “하나님 제가 사는 것, 죽는 것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겠지요. 제 모든 삶은 이미 다 주님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 제가 감옥에서 풀려나 살든지 아니면 이 어둡고 추운 감옥에서 칼에 맞아 죽든지 더욱 중요한 것은 저를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위대하게 되시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미래에 어떠한 상황이 펼쳐진다 해도 그 안에서 여전히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신뢰하겠다는 고백의 기도를 했습니다.
이러한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확실한 믿음을 때만 가능합니다. “하나님 나에게 무엇이 더 좋은 지는 주님이 더 잘 아십니다. 비록 내 삶이 가난할지라도, 비록 이 오래된 질병이 내게 계속해서 머물러 있을지라도, 비록 내 삶에 이 아픔과 고통이 머문다 하더라도, 여전히 크시고 지혜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제 삶을 통해 주님의 뜻을 이루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 저는 겸손히 주님을 바라 볼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의 기도였습니다. 21절에 그가 뭐라고 말했습니까?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바울은 “하나님 저는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주를 위해 죽는 다면, 죽는 것도 제게는 유익합니다.”고 고백했습니다. 바울은 삶의 모든 포커스가 그리스도께 맞춰져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살고 죽는 것보다 그리스도가 더 중요하다고 고백했습니다. 비록 내가 바라고 원하는 기도 제목이 이뤄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비록 지금 나의 인생이 내가 원하는 그 모습이 아닐지라도, 우리가 바울처럼 하나님께 삶의 모든 초점을 맞출 때 우리는 어떠한 형편에 처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힘들고 어려운 상황일지라도 믿음의 방패를 들고 계십시오.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는 결코 낙심하지 않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내 기도 제목이 응답되든지 더디 되든지, 내 건강을 회복하든지 못하든지 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의 영혼이 영원하신 하나님을 끝까지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처럼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신뢰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낙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주님을 신뢰하며 살아가시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