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30 교회를 위한 사랑과 기도 (빌립보서 1장 8-11절)


바울은 언제나 기도할 때 빼놓지 않고 빌립보 교회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꼭 다시 만나고 싶어했고, 꼭 다시 함께 하기를 원했습니다. 빌립보 교회가 문제가 없어서 좋아한 것이 아닙니다. 빌립보 교회는 정말 문제가 많은 교회입니다. 어려운 교회였어요. 이런 교회에서 목회 한다는 것은 바울에게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빌립보 교회를 끝까지 온 마음으로 사랑했습니다. 남들에게는 손가락질 받고 문제가 많은 문제일지 모르지만, 바울에게는 빌립보 교회는 정말 특별한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8절 말씀에 기록된 대로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교회를 사랑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사 자기 전부를 내어주신 사랑의 마음과 같이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사랑했습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은 어떻게 합니까? 교회를 위해 기도합니다. 사도 바울도 기도에 늘 빌립보 교회를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그럼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위해 어떤 기도를 드렸습니까? 먼저 9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우리는 사랑하는 대상이 있으면 그 사람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사실 그 사람에 대해서 더 잘 알면 알수록 우리는 실망할 때가 많습니다. 멀리서 보면 참 좋은 사람인 것 같았은데 가까이서 보니까 어떻습니까? 단점들이 너무 잘 보이는 거에요. 결혼하기 전에는 이 사람이 최고인줄 알았는데 결혼하고 나서 더 가까이서 보니까 연애할 때는 안 보이던 단점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우정도 마찬가지에요 처음에는 참 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사귀다 보니까 가면 갈수록 그 사람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실망을 하곤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훌륭한 인격을 가진 사람들은 알면 알수록 더 존경하게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에 대해서 모르고 사랑하는 것이나, 알고 미워하는 것 둘다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진정한 사랑은 지식과 함께 깊어지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감정적인 차원으로만 사랑하면 결코 사랑이 자라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만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더 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자라면 자랄수록 하나님을 향한 사랑도 더 풍성해 집니다.
사도 바울은 지식이란 단어 다음에 ‘총명’이란 단어를 썼습니다. 이것은 쉽게 말하면 분별력입니다. 사랑은 상대방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아는 것입니다. 내가 김치찌개하고 삼겹살 좋아한다고 모든 사람도 으레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은 내 기준이 아니라 상대방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숙한 사랑은 내 중심의 차원을 뛰어넘어 상대방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자라나면 하나님이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하나님이 무엇을 싫어 하시는지 그 변별력이 생기게 됩니다.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대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지식과 총명과 함께 자라갈 때 더 풍성해집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이러한 사랑의 성숙이 있기를 간구했습니다.
10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진실하게 살기를 원했습니다. 언뜻 보기에 진실하게 산다는 것은 쉬운 것처럼 보여도 매우 큰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때로는 내 자신이 큰 손해를 봐야할 각오도 해야 합니다. 고대에는 도자기 문화가 번성했습니다. 도자기는 두꺼운 것보다는 얇은 것이 더 값이 나갔습니다. 만들기가 어렵기 때문이죠. 그런데 도자기를 얇게 만들면 불가마니 속에 넣었을 때 그릇이 깨지거나 금이 가곤 했습니다. 그래서 얇은 도자기를 만드는데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당시에 마음이 나쁜 부정직한 도자기 장수들은 금이 간 도자기에 덧칠을 해서 금을 안보이게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검시관들은 도자기를 햇빛에 비추어 보아 그릇이 온전한 것인지 불량품인지 판단을 했습니다. 햇빛 아래서는 미세한 금도 다 보이는 법입니다. 부모가 교회에서는 존경 받는데, 가정에만 오면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을 보고 자녀들이 얼마나 큰 상처를 받는지 몰라요. 집 밖에서는 여러가지 가면을 쓰며 사람들을 속일수가 있지만, 가까이 사는 가족들은 내 실체를 압니다. 우리가 사람들의 눈은 속일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미세한 거짓도 다 보이는 법입니다. 우리는 가정이나 교회나, 사회나 어디에서도 누구와 함께 있든지 진실된 삶을 살기 위해 애쓰고 노력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성숙한 삶의 모습이 빌립보 교회에 있기를 원했습니다.
이러한 삶을 통해 궁극적으로 바울이 원한 결과는 무엇입니까? 1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빌 1: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빌립보 교회가 의의 열매를 얻는 것,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는 것이 바울이 가장 원하는 것입니다. 11절을 보면 열매가 그냥 맺어지지 않습니다. 그 앞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다고 했습니다. 모든 신앙생활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매 순간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을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이처럼 의의 열매를 얻도록 꿈꾸고 계속해서 교회를 위해 기도 해왔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빌립보 교회도 매우 연약한 교회였습니다. 문제가 많고 교회의 상황이 안팍으로 어려운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빌립보 교회를 사랑했습니다. 그는 장차 이 교회가 더욱 굳건히 세워지기를 바라며 교회를 놓고 끊임없이 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렵고 힘든 교회가 그냥 그대로 버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성도들이 사랑과 지식 안에서 자라가고, 진실한 삶의 모습으로 성숙하여 의의 열매를 가득 맺기를 원하십니다. 그러한 삶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뤄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이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위해 기도한 것처럼 우리의 사랑이 지식과 총명 안에서 날마다 풍성해지고, 진실하여 허물이 없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