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24 욥이 다시 받은 축복 (욥기 42장 7-17절)

오늘 본문은 욥기의 결말입니다. 그 동안 욥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친구들에게 위로를 구했으나, 이에 반해 욥의 친구들은 여러 차례 욥을 정죄하며 그를 죄인으로 몰아 붙였습니다. 욥은 이런 상황이 몹시도 슬펐고, 화가나기까지 했습니다. “내 주위에 이런 친구들 밖에 없었나?” 한탄하기까지 했습니다. 그 동안 욥은 억울한 마음이 가득해 친구들을 향해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자기를 위로하러 와서는 정죄하고 비난하는 친구들을 향하여 “너희는 참 쓸모 없는 의원이다.”고 말하기까지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의 세 친구들은 욥을 비난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욥이 자기 속 마음을 꺼내어 보여줄 수도 없고 얼마나 억울 했겠습니까?
그러나 천만다행으로 오늘 본문에 하나님께서 직접 욥의 친구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들의 말이 정당하지 못함을 꾸짖어 주셨습니다. 친구를 위로하기 보다는 친구를 정죄하고, 착하고 성실하게 살려고 했던 욥을 죄인 취급하며 하나님에 대해서 잘 못 이야기한 부분들에 대해서 하나님은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욥의 세 친구들에게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제물로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정도 제물은 상당히 큰 제사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고난 당하는 욥을 정죄하고 비난한 친구들의 죄를 결코 작게 판단하지 않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욥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큰 죄에 해당합니다. 고통 당하는 성도들을 향해 따뜻한 말로 위로하고, 힘내도록 격려하는 것은 곧 하나님께 해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동일하게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성도가 어려움을 당할 때 그를 업신여기고 말로 못되게 괴롭히는 것은 하나님을 괴롭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그 죄는 수송하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로 회개 제사를 드릴만큼 큰 죄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자, 특별히 8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욥의 지위를 회복시켜 주시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태까지 친구들은 자기들이 의인인냥 으스대며 욥을 정죄했는데, 하나님은 욥이 세 친구들을 위해 기도해주어야 비로서 그들의 죄가 용서됨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욥에게 영적 제사장의 지위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이는 시편 23편에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하고 고백한 다윗의 마음처럼, 하나님께서 그 동안 욥을 정죄하고 비난한 세 친구들 앞에서 욥을 높이 세워주신 것입니다. 여태까지 하나님께서 고난을 통해 욥이 억울했던 것 다 갚아 주시는 것이죠. 또한 여태까지 욥은 욥기 이곳 저곳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고 불평을 토로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 이 장면을 통해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욥의 기도를 듣고 계시며, 그의 기도에 응답하심을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고난을 통해 욥의 신앙을 연단하셨습니다. 금 원석이 가치 있게 사용되려면 그 원석을 날카로운 도구로 깨트린 후, 고온에 녹여야 합니다. 그 후 기술자가 또 가공을 해야 합니다. 금 원석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치는 것이죠. 그러나 이러한 과정을 통해 불순물들이 제거되면 비로소 반지나 목걸이와 같은 귀금속으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욥기에 나타나는 큰 연단을 통해 욥은 자기 자신도 몰랐던, 내면의 죄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 과정을 통해 그의 영혼 안에 있던 교만과 하나님을 향한 불신과 원망의 불순물들을 하나님께서 하나 둘 제거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욥은 정금처럼 순수한 믿음을 회복한 채 하나님 앞에 서 있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알지 못했으나, 하나님께서 더 큰 복을 주시기 위해 그의 삶에 고난과 고통을 허락하셨음을 이제 그는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욥에게 그가 망하기 전보다 더 많은 복을 부어 주셨습니다. 만일 욥이 연단 받지 않은 상태에서 복부터 받았으면 어느 순간 교만해져서 세상으로 떨어져 나갔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큰 연단을 받은 욥은 교만해지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죄를 짓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교만과 불신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 철저히 깨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세상에 빼앗기지 않으시기 위해 그를 연단 시키셨습니다. 이제 주님은 준비된 욥에게 복의 복을 부어 주시기 시작합니다. “주께서 내게 상을 베푸시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하고 고백할 정도로 하나님은 욥에게 넘치는 복을 부어 주셨습니다.
가끔 십대 청소년 중 운전면허를 땄는데도, 자기의 부모가 자동차 키를 주지 않는다고 입이 삐쭉 나와 있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자녀의 입장에서 보면 분명 면허증이 있습니다. 국가에서 이 사람은 운전할 수 있다고 인정해 준 셈입니다. 자기 심적으로도 자신이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의 눈은 더 정확합니다. 자녀자신이 보지 못하는 부분까지 부모는 다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자녀를 위해 함부로 자동차 키를 주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녀가 정말 준비가 되면, 부모가 자녀를 위해 키만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타던 차를 주기도 합니다. 집안 형편이 여유가 있으면 부모가 자녀에게 차를 사기도 합니다.
같은 원리로 만일 우리가 아직 복을 받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하나님을 원망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돌아봐야 합니다. 나는 복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아직 믿음이 덜 준비되어 그런지도 모릅니다. 아직 더 깎여야 하는 교만한 부분이 남아 있거나, 더 꺾여야 하는 헛된 욕심과 허영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중국에서 전해지는 사자성어 중에 “의인불용 용인불의”라는 말이 있습니다. “의심 나는 사람은 쓰지 말고 쓴 사람은 의심하지 말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고 보면 됩니다. 아직 그 안에 불순물이 남아 있는 사람에게는 복을 주시지 않습니다. 그것이 그에게 복이 아니라 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준비된 사람에게는 마음껏 복을 부어 주십니다. 모든 불신의 이물질들을 제거하고 정금 같이 나온 욥은 하나님께 어떤 복을 받았습니까? 10절 말씀 입니다. “(욥 42:10) 욥이 그 벗들을 위하여 빌매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하나님께서 그에게 물질의 복을 갑절이나 부어 주셨습니다. 또한 자식의 복을 주시고 건강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12절에 나오는 가축의 숫자는 그가 망하기 전의 딱 2배의 숫자입니다. 망하기 전에 양이 7천 마리였는데, 이제는 만 4천 마리입니다. 낙타가 3천이었는데 이제는 6천 마리입니다. 소가 오백 겨리였는데 이제는 천 겨리 입즉 이천 마리나 됩니다. 이전에 아들 일곱, 딸 셋이었는데 하나님께서 또 다시 아들 일곱과 딸 셋을 주셨습니다. 게다가 15절 말씀을 보니까 이 세 명의 딸은 그 당시 “미스 이스라엘” 대회 나가면 진,선,미를 휩쓸 만큼 최고의 미인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의 가문을 아예 전국에서 소문난 믿음의 명문 가문으로 만들어 주신 거죠.
하나님께 연단 받을 때는 정수리에서 발끝까지 종기가 나서 죽을 것만 같았는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건강의 복을 주셔서 백사십 년을 더 살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볼 때 욥은 더 이상 연단을 받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죽을 때까지 복만 받은 것이죠. 그래서 연단 받을 때 잘 받아야합니다. 재시험 치르면 큰 일 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메시지를 잘 깨닫고, 회개할 것을 빨리 회개하고 고쳐야할 것을 빨리 고치고 주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그러한 과정들을 통해 우리의 영혼의 더러운 불순물들이 제거되고 정금과 같은 믿음을 소유한 자가 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놀라운 복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은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역사하고 계십니다. 이 고난의 끝에 하나님께서 예배하신 놀라운 은혜와 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갖고 욥처럼 하나님 앞에 성실하게 또한 정직하게 살아감으로 말미암아 욥처럼 평생에 복에 복을 받으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