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분들이 운영하는 음식점을 방문하다 보면, 가끔씩 식당 주인 분들이 교회 다니시는 경우 벽에 성경구절이 적힌 팻말을 접할 때가 있습니다. 아마도 교회에서 개업 심방 오실 때 선물로 주신 성경 구절들일 것입니다. 벽에 붙는 단골 성경 구절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무엘하 7장 29절 말씀 “이체 청컨대 주의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 라든지, 요한삼서 1장 2절 말씀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이 잘 됨 같이 내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빌립보서 4장 13절 말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시편 23편 1편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정도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개업 하시는 분에게 제일 인기 많은 구절이 바로 오늘 본문 욥기 8장 7절 말씀입니다. “(욥 8:7)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이 구절을 무슨 의미로 드리는 것일까요? ‘가게가 지금은 미약하여도 즉 규모가 작고, 테이블 수는 적어도 나중에는 더욱 더 크게 번창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는 인사가 되는 것이죠. 이 성경 구절은 너무 유명해서 교회 다니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다 알만한 말씀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누가 했는지, 어느 맥락에서 이 말씀이 나왔는지, 심지어 이 말씀이 욥기에서 나온 말씀이라는 것을 모르는 분들도 많습니다.
이 유명한 말은 욥의 두 번째 친구 수아 사람 빌닷이 욥에게 전해준 내용입니다. ‘빌닷’이라는 이름에는 “논쟁의 아들”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빌닷은 매우 논리적이고 논쟁에 능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욥기를 살펴보면, 욥의 세 친구들 중 빌닷이 욥과 가장 격렬하고 치열하게 논쟁을 펼칩니다. 욥의 나머지 두 친구 엘리바스의 경우 다소 욥을 동정하는 모습도 찾아볼 수 있고, 소발도 욥에게 말할 때 좀 할말을 유보하는 느낌을 갖습니다만, 빌닷은 거침이 없습니다. 빌닷이 욥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칼같이 날카로웠습니다. 첫째로, “고난은 틀림없이 죄에서 기인한다.” 둘째로, “악한 자는 항상 고난 가운데 있다.” 이 두 가지 논리에 대해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욥을 밀어붙였습니다. 오늘 그 내용을 함께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욥 8:2) 네가 어느 때까지 이런 말을 하겠으며 어느 때까지 네 입의 말이 광풍과 같겠는가” 욥기 6장에서 욥은 엘리바스의 말에 반박하며 자신은 죄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7장에 와서는 하나님을 향한 원망을 쏟아 내었습니다. 욥은 하나님이 마치 자신을 과녁으로 삼고 독화살을 쏘는 궁수가 되셨다고 말하며, 차라리 죽여달라고, 이제 하나님이 나 좀 그만 괴롭히고 나 좀 놓아달라는 울부짖음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욥의 처절한 외침은 너무 힘들고 어려운 그의 마음의 울음이었겠지요. 그러나 그의 친구 빌닷은 냉정합니다. 친구 욥의 아픔을 동정하고 공감해 주기 보다는 아주 날카로운 태도로 욥을 비판합니다. 2절 말씀에 그가 말합니다. “자네는 언제까지 이런 말을 계속할 작정인가? 자네의 말은 마치 태풍 같구려?” 왜 빌닷이 욥의 말을 ‘광풍’ 즉 태풍 같다고 했을까요? 얼마 전에 플로디아에 마이클이란 이름의 허리캐인이 찾아와서 수많은 재산피해 인명피해를 냈죠? 이 당시에도 강력한 바람은 사람들이 사는 거주지와 농경지에 큰 피해를 입혔습니다. 빌닷은 욥이 쏟아낸 말들이 이런 태풍 같이 매우 거칠고 파괴적이라고 말하는 것이죠. 욥이 자신이 죄가 없다고 말하는 점과 자신의 의를 주장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거에요.
그 이유에 대해서 빌닷은 3절에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욥 8:3) 하나님이 어찌 심판을 굽게 하시겠으며 전능하신 이가 어찌 공의를 굽게 하시겠는가” 빌닷은 논리는 이런 거죠. 하나님께서 어찌 잘못 판단하시겠어요? 전능자이신 주께서 어찌 실수가 있으시겠어요? 욥은 자신이 죄가 없다고 말하였고, 하나님이 자신을 이토록 괴롭히는 것에 자신은 그럴만한 이유를 발견할 수 없다고 친구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빌닷은 욥이 고난 받는 것은, 절대로 하나님의 실수나 착오가 아니며, 그것은 분명 욥이 지은 죄의 결과라고 못 박아 말했습니다.
4절에 가서 빌닷은 더 냉혹하게 말합니다. “(욥 8:4) 네 자녀들이 주께 득죄하였으므로 주께서 그들을 그 죄에 붙이셨나니” 4절 본문이야말로 빌닷이 얼마나 냉정한 사람인지,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만한 사람인지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본인의 죄로 인해 사형을 당한 범죄자인 자녀를 둔 부모라 할지라도 그에게 위로를 해주는 것이 친구로서의 도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자네가 그토록 사랑하던 자녀들이 그렇게 다 세상을 떠나 버렸으니 자네 마음이야 얼마나 무겁고 힘들겠나? 내 아무런 도움이 못 되어 미안하구려. 내가 무슨 말로 자네를 위로할 수 있겠는가?” 하고 최소한 친구의 아픔을 동정해주고 공감해주는 것이 인지상정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빌닷은 전혀 그런 모습이 없습니다. 빌닷은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거에요. “자네 자녀들이 일시에 죽은 것을 보니, 그들이 죄를 지은 것이 틀림없어. 자네 자녀들은 자신들의 죄값을 받고 죽은 걸세.” 빌닷의 이런 말이 자녀를 잃어버린 아버지 욥의 가슴에 대못을 박지 않았을까요? 아무리 자녀가 잘못을 저질러서 죄값을 받았다 해도, 그게 다 아버지인 내가 잘 못 가리킨 탓이고, 내 부족함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터인데, 이런 비참함에 빠진 욥에게 잔혹스럽게 이야기하고 있는 빌닷은 참 무서운 친구 입니다.
어쩌면, 빌닷은 자신이 이렇게 욥에게 직설적으로 이야기 해주는 것이야말로 친구를 위한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 벌을 받는다.” 뭐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옳은 말이라고 다 상황에 맞는 말은 아니죠. 때로는 옳은 말도 상황에 따라 틀린 말, 부적절한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빌닷은 참 융통성이 없는 친구 입니다. 너무 대쪽 같은 사람이라 친구를 위한 위로를 하기로 타협하지 않고 그를 도리어 직면 시키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5절부터는 빌닷이 욥에게 그가 처한 고난을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해줍니다. 5-6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욥 8:5) 네가 만일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며 전능하신 이에게 빌고(욥 8:6)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정녕 너를 돌아보시고 네 의로운 집으로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 말씀 다시 한 번 눈으로 보세요. 제가 쉬운성경 번역본으로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욥, 지금이라도 하나님을 찾고, 전능자에게 자비를 구하게나. 만일 자네가 깨끗하고 정직하다면, 그분이 자네를 도와 주실 걸세.” 한 마디로 말하면 뭐하라는 거에요? 죄를 회개하라는 거에요. 빌닷이 전해주는 내용을 욥이 몰랐을까요? 다 아는 내용입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하나하나 짚어가며 설명까지 해주는 빌닷 참 무서운 사람이죠.
자, 빌닷의 말대로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부지런히 찾은 자의 삶에 나타나는 결론이 무엇입니까? “(욥 8:7)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빌닷은 회개하는 자에게 나타나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회복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욥이 죄로 인해 다 망해버렸지만,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그의 재산을 크게 성장 시키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7절을 읽으며 대부분 무조건적으로 그 끝이 창대해진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은 5-6절에서 나온 것처럼 하나님을 부지런히 찾고, 도덕적으로도 완전한 삶을 사는 자에게 주어지는 복이 바로 7절인 것이죠. 제가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이 구절은 사업장 개업 때나 혹은 이사 심방 때 자주 사용되는 구절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무조건적인 축복의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빌닷이 욥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전제하고 그가 죄를 회개할 것을 촉구하는데 사용된 말씀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본 구절을 축복의 구절로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은 주의사항이 필요합니다. 본문에서 빌닷의 자세를 주의하십시오. 그는 논쟁에서 이기려 하다가, 사람을 잃어 버렸습니다. 논쟁에서는 승리했는지 모르지만, 인간 관계에서는 실패 했습니다. 하나님은 빌닷도 책망하십니다. 그는 ‘인과응보’라는 한 가지 틀로 욥의 삶을 해석 하고 정죄하는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고난도 분명히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빌닷이 욥에게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회개가 곧 회복의 길이라는 사실입니다. 만일 우리가 정말 하나님께 죄를 지어 지금 고난을 당하고 있는 것이라면 빌닷의 말처럼 부지런히 하나님을 다시 찾을 필요가 있고, 도덕적인 삶을 회복하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해야 합니다. 비록 죄로 인해 지금 고난을 당하고 있어도 빌닷의 말처럼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는 자는 죄로 인해 지금 당장은 미약할지 몰라도 점차 삶이 창대의 길로 나아가는 회복의 은혜를 주십니다. 오늘 빌닷의 말을 욥에게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죄를 지어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는 자들에게는 절실히 필요한 조언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회개가 곧 회복의 길입니다. 하나님 앞에 죄 없이 서있으므로 크신 은혜를 누리시는 귀한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