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을 하다 아버지에게 걸려 크게 혼이 난 국민학생 아들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거짓말을 한 아들을 매로 때리고 거짓말 하지 말라고 엄하게 훈육을 합니다. 아버지에게 매를 맞고 꾸중을 들은 아들은 아랫 입술이 튀어나왔습니다. 아버지에게 혼이 난 아들은 아버지가 미워집니다. 사춘기 청소년이 되었을 때는 자기를 혼내는 아버지에게 반항심을 느끼며 차라리 아버지가 세상에 없으면 좋겠다고 혼자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철부지 아들도 자라서 어느 새 결혼하여 한 가정의 40대 가장이 되었습니다. 평생 지병을 앓고 계시던 그의 아버지는 수년 전에 돌아 가셨습니다. 자기 역시 자식들을 낳고 키우다 보니, 돌아가신 아버지의 마음이 이제는 더 잘 이해가 됩니다. 테라스에서 서서 밤 하늘 별들을 보며 아들은 혼자 중얼거립니다. “매를 들고 내 종아리를 때리시던 아버지의 마음은 사랑이었구나?“
부모가 자녀에게 하는 징계는 사랑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옆집에 사는 아저씨가 나를 징계하지는 않습니다. 매를 드는 것은 피곤한 일이고, 훈육하는 것은 매우 지치는 행위입니다. 부모 역시 징계 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서점에 가보면 자녀 훈육법에 대한 책들도 많이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혼내고 때로는 잘못에 대해서 벌을 주는 것은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랑의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죠.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징계하시는 이유도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엘리바스가 욥에게 하는 권면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현재 욥이 당하는 고난이 하나님의 사랑인 징계를 깨닫고 어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내용입니다.
엘리바스가 17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 (욥 5:17)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경책을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길가에서 노는 남의 아이 꾸짖는 부모 없듯이, 하나님께서 잘못을 우리의 꾸짖어 주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됨의 또다른 증거가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엘리바스는 하나님께 징계를 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또한 지금 일어난 이 모든 재앙이 하나님께서 욥에게 주시는 사랑의 징계라는 사실을 깨달으라고 권면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엘리바스가 말하는 내용들은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18절 말씀, “(욥 5:18)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치시나니”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죄를 지은 사람의 몸에 병을 주심으로 그를 심판하시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성경의 예가 모세의 누나 미리암에게 일어난 문둥병입니다. 미리암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권위에 대적했다가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하나님은 일주일 시간이 지나자 그녀의 문둥병을 깨끗하게 고쳐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일주일이 미리암에게 일년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 시간 동안 미리암은 자신의 죄를 돌아보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때로는 주의 자녀들의 건강을 치심으로 그들의 죄를 깨닫게 하시고 또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그 일을 오래토록 하지 않으시고, 긍휼을 베푸사 그들의 병을 고쳐 주십니다. 물론 우리는 여기서 그리스도인에게 일어난 모든 병이 반드시 그가 지은 특정한 죄의 결과는 아님을 또한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19-21절을 보겠습니다. “(욥 5:19) 여섯 가지 환난에서 너를 구원하시며 일곱 가지 환난이라도 그 재앙이 네게 미치지 않게 하시며 (욥 5:20) 기근 때에 죽음에서, 전쟁 때에 칼 권세에서 너를 구속하실 터인즉 (욥 5:21) 네가 혀의 채찍을 피하여 숨을 수가 있고 멸망이 올 때에도 두려워 아니할 것이라” 옛말에 불행은 홀로 오지 않는다고, 욥처럼 사업이 망하고 곧이어 가정에도 어려움이 찾아옵니다. 설상가상으로 건강도 잃어버리고, 하나 밖에 없는 아내도 그를 떠났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아픔과 고통이 이야기의 끝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어떤 환난을 당하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의 삶에 또 다른 소망의 씨앗을 심어 주십니다. 19절의 말씀에서 나오는 “여섯 가지 환난”이란 많은 환난들을 의미합니다. “일곱 가지 환난”이란 표현에서 숫자 ‘일곱’은 완전을 표현하므로 이것은 인생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환난이 겹친 거의 재앙의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러나 그런 일곱 가지 환난이 찾아온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그 재앙이 우리에게 미치지 않게 만들어 주십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 4장에서 고백한 것처럼, 주의 자녀들인 우리는 “사방에서 압박을 받아도 눌리지 않으며, 난처한 일에 빠져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핍박을 당해도 버림을 받지 아니하고, 매를 맞아 넘어져도 망하지 않습니다.” 제가 너무도 좋아하는 성경구절이 미가서 7장 8-9절 말씀입니다. “(미 7:8) 나의 대적이여 나로 인하여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 데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미 7:9)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니 주께서 나를 위하여 심판하사 신원하시기까지는 그의 노를 당하려니와 주께서 나를 인도하사 광명에 이르게 하시리니 내가 그의 의를 보리로다” 아무리 우리가 범죄하여 하나님께 진노하심을 당한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인들은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회개할 때 치료와 회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비와 사랑으로 우리 상처를 싸매주시고, 무너진 우리의 삶을 다시 한 번 일으켜 주십니다. 그래서 만일 이 재앙이 우리의 범죄함으로 일어난 것이라 할지라도 주님께로 돌아가면 우리에게는 또 다른 소망이 주어지게 됩니다. 엘리바스는 하나님을 의지하면 징계로부터 구원하시며 그 어떤 환난도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욥은 지금 온 몸에 재를 뿌렸습니다. 땅에 털썩 주저 앉아 악창으로 썩어가는 몸을 기와 조각으로 긁고 있습니다. 그의 몸에서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피고름과 악취가 그로 하여금 고통 중에서 신음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분명 욥은 웬만한 사람들은 견딜 수 없는 혹독한 환난 가운데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욥은 자신이 처한 상황이 죄로 인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엘리바스는 이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욥에게 지금 이 모든 재앙이 하나님의 징계임을 깨달으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계속해서 살펴보았듯이 엘리바스는 지금 욥의 상황에는 맞지 않는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선포한 하나님의 성품은 성경의 교리에 어긋나지 않기에 우리는 계속해서 그의 입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서 자세히 볼 필요가 있습니다.
20절을 보니 하나님은 ‘기근 때에, 전쟁 때에’도 주의 백성을 보호해 주십니다. 마치 애굽 땅에 재앙이 임하였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머무른 ‘고센 땅’에는 파리 떼도 없고, 우박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의 자녀들을 특별하게 보호해 주십니다. ‘기근’이 자연이 줄 수 있는 가장 혹독한 재앙이라면, ‘전쟁’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가장 큰 재앙입니다. 그러나 그 전쟁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백성은 보호하심을 받게 됩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평생 그를 죽이려는 자가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만큼 많았으나 하나님께서 그의 목숨을 생명 싸개 속에서 보호하시자 아무도 그의 머리털 하나 건드릴 수 없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욥도 마찬가지 입니다. 비록 그에게 재앙은 있었으나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욥의 “생명은 건들지 말라”고 말씀하셨기에 아무리 사단이라 할지라도 욥의 목숨은 건드릴 수 없었습니다. 21절 말씀 “혀의 채찍을 피한다.” 는 표현은 사람들의 비난과 저주 또한 조롱도 피하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24~27절까지는 징계가 끝난 후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에게 주시는 복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눈으로 한 번 보시겠어요? “(욥 5:24) 네가 네 장막의 평안함을 알고 네 우리를 살펴도 잃은 것이 없을 것이며 (욥 5:25) 네 자손이 많아지며 네 후예가 땅에 풀 같을 줄을 네가 알 것이라 (욥 5:26) 네가 장수하다가 무덤에 이르리니 곡식단이 그 기한에 운반되어 올리움 같으리라 (욥 5:27) 볼지어다 우리의 연구한 바가 이 같으니 너는 듣고 네게 유익된 줄 알지니라”
이 많은 복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완벽한 치유와 완전한 회복입니다. 분명 재앙으로 인해 망한 것 같았으나, 하나님께서 다시 일으켜 주시고 세워 주십니다. 이 얼마나 큰 복입니까? 이 세상에 돈을 의지한 사람은 돈이 없어지면 소망을 잃어버립니다. 건강만 바라보고 산 사람은 몸이 허약해지면 우울함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만 바라보고 산 사람은 사람에게 실망하고 좌절할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사람은 어떠한 재앙과 환난이 닥쳐와도 반석에 지은 집처럼 끄떡 없습니다. 비가 몰아치고 창수가 일어나도 만세 반석 되시는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니 걱정 근심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일 우리의 삶 가운데 죄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가 있습니까? 이제라도 돌아오십시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이해 할 수 없는 고난 가운데서도 여전히 선하신 하나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다 알 수 없는 계획을 가지고 지금도 우리의 삶을 인도하고 계십니다. 겨울이 아무리 추워도 반드시 때가 되면 따듯한 봄은 옵니다. 컴컴한 밤이 아무리 깊어도 밝은 태양은 밝아옵니다. 우리의 고난이 아무리 길어 보여도 반드시 이 고난의 터널도 끝이 있습니다. 징계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붙잡으십시오.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