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04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온전한 예물 (레위기 22장 17-22절)

이따금씩, 집에서 냉장고를 열어 보다가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들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마트에서 장 보고 빨리 먹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어느새 상태가 이상해진 과일들… 분명 야채도 싱싱할 때 샀는데, 이제는 색도 변하고 먹기 어렵게 되기도 합니다. 마침 집에 귀한 손님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손님에게 이런 한참 기한이 지나버린 식재료와 가지고 요리를 하고 상태가 좋지 않은 과일들을 내어놓는다면, 그 손님의 미간이 찌푸려져 있을 것입니다. 겉으로 표현은 안해도 속으로 “아, 주인 양반이 나를 무시하는 구나… 저 사람 겉으로는 잘해주는 것처럼 보여도 나를 존중하지 않는구나…” 하고 생각할 것입니다.
어느 날, 우리 가정에 하나님께서 손님으로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께 무슨 재료들을 가지고 음식을 차려 드리겠습니까? 냉장고에 남은 먹다 남은 반찬, 썩어버린 야채, 검게 곰팡이 핀 과일 드릴까요? 하나님은 그 식탁 보시고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요? 만일 집안 주인이 하나님을 정말 존중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장 볼 때도 평상시 비싸서 잘 사먹지 않았던 식재료를 사서라도 하나님께 최고급 식탁을 준비했을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사람처럼 식사하시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들이 곧 하나님을 향한 우리 마음의 표현이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하나님께 나아올 때 주의사항을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제사는 “서원제와 낙헌제”입니다. 이 둘다 화목제에 포함되는 제사들로써 자원해서 드리는 제사 입니다. 즉 하나님께 반드시 드려야 하는 번제 또는 속죄제와는 다르게 신앙을 결단할 때, 혹은 좋은 일이 있어 하나님께 감사 드릴 때 드리는 제사 입니다. 하나님께서 강압적으로 시켜서 드리는 제사도 아니고 자기 스스로 자원하는 제사이니까 하나님께 좋은 것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18-20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레 22:18) 아론과 그 아들들과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고하여 이르라 이스라엘 자손이나 그 중에 우거하는 자가 서원제나 낙헌제로 번제를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려거든 (레 22:19) 열납되도록 소나 양이나 염소의 흠 없는 수컷으로 드릴지니 (레 22:20) 무릇 흠 있는 것을 너희는 드리지 말 것은 그것이 열납 되지 못할 것임이니라” 19절을 중점으로 보겠습니다. 무엇을 드려야 합니까? 소나 양이나 염소를 드리되 흠 없는 수컷으로 드려야 합니다. 흠이 없다는 것, 눈이 멀거나, 몸에 상처 나거나, 다리가 하나 짧거나, 다리를 저는 것은 바칠 수 없습니다. 20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런 흠 있는 예물을 받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에 명확하게 “흠 있는 것은 바치지 말라”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2절에 그 예도 나와 있습니다. “눈먼 것이나 상한 것이나 지체에 베임을 당한 것이나 종기 있는 것이나 괴혈병 있는 것이나 비루먹은 것을 너희는 여호와께 드리지 말며 단 위에 화제로 여호와께 드리지 말라” 이 보다 더 분명하고 구체적인 명령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흠 있는 것을 바쳤습니다. 하나님께 매일 드려야 할 빵도 더러운 빵, 유통기한 한참 지나서 곰팡이가 핀 빵을 드렸습니다. 제물을 드리는데 눈이 먼 것, 다리 저는 것, 병든 것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구약 성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서를 보면, 하나님께서 흠 있는 제물을 바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책망하십니다. (말 1:8)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 흠 있는 예물을 바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은 그들이 제사를 드리지 못하도록 아예 성전의 문을 닫아 걸었으면 좋겠다고 강하게 책망하셨습니다. 흠 있는 제물에 대해서 하나님은 전혀 달가워하지 않으셨습니다. 눈이 먼 짐승, 절뚝거리거나, 병든 짐승을 바치는 것은 분명 큰 잘 못이었습니다.
오늘 신약 시대를 사는 우리들은 하나님께 소나 양이나 염소를 드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신약시대를 사는 성도에게는 우리 자신이 바로 “산 제물”이라고 말했습니다. 로마서 12장 1절 말씀입니다.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흠 없는 제물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은 것처럼 우리의 삶 역시 모든 면에서 정결해야 합니다. 눈으로 죄를 짓는 성도는, 하나님께 눈 먼 제물을 드림과 같습니다. 자기 두 발로 불의의 장소를 향해 걸어가는 자는 다리 저는 제물을 드림과 같습니다. 죄의 즐거움과 향락에 젖어 사는 사람은 오물에 묻은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이런 불량품과 같은 삶은 하나님께서 절대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온전한 제물을 원하십니다. 본래 레위기에서 ‘온전한 제물’이라고 할 때 그것은 눈 먼 것, 상한 것, 각종 병이 있는 짐승을 제외한 건전한 제물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 단어는 또한 죄의 영향을 받지 않은 순전한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됩니다.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노아는 온 세상이 타락한 시대에 살았지만,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의로운 자로 살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처럼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은 믿음을 가지고 살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하나님께 드릴 때 더러운 것들을 씻긴 다음 드린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서는 세속의 모습, 세상 죄를 향유하며 얻은 더러운 떼들을 다 벗어 버려야 합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흠 없고 온전한 제물을 바쳐야 했습니다. 신약의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하신 십자가 제사로 인해서 더 이상 짐승을 바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신약의 성도는 여전히 우리 자신이 산 제물이 되어 삶의 예배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우리 안에 남겨 있는 모든 죄악들을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함을 받을 때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흠 없고 온전한 제물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죄로 인해 눈 먼 예배, 다리 저는 예배, 병든 예배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자 되어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흠 없고, 온전하고, 거룩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