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 암 판정을 받은 환자가 병이 낫는다면 기적입니다. 식물인간으로 수년간 살아가던 사람이 어느 날 온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된다면 그 역시 기적입니다. 오늘 본문에 문둥병에 감염된 사람이 낫는 것 역시 기적입니다. 즉 이 당시만 해도 문둥병은 불치병으로 일반적인 치료책이 따로 없었습니다. 이와 같은 문둥병이 나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받았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문둥병이 나은 사람은 제사장에게 진찰을 받고 확인 절차를 받고 진영 안으로 복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제 새벽 예배를 통해 진영 밖에 나가 부정한 자를 접촉해야 하는 제사장의 모습을 통해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을 살펴 보았습니다. 문둥병으로 인해 부정해진 자에게 깨끗하게 되었음을 선포하기 위하여 그를 만나기 위해 자신의 처소를 떠나 진영 밖으로 나가는 제사장의 모습은, 우리는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예루살렘 성 밖으로 나가 십자가에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예표 합니다.
하나님꼐서는 문둥병에 걸렸던 환자의 병이 고침을 받았으면, 그가 진영 안으로 돌아오기 전에 제사를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제 새벽에 우리가 살펴 본 것처럼 제사장은 두 마리의 새를 가져오게 했습니다. 대부분의 제사가 소나 양으로 드려지는 것에 반해 비교적 값이 싼 새가 제물로 쓰이는 이유는, 진 밖에서 환자로서 생활하던 이가 가축을 접할 수 없기에 구하기 쉬운 새를 통해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배려하신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또한 문둥병에 걸린 환자가 그 동안 진영 밖에서 경제적 활동이 불가 했으므로 소나 양을 살만한 형편이 안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그의 형편을 고려한 것으로도 보입니다. 이처럼 레위기에 나오는 제사 제도를 살펴 볼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섬세한 은혜가 얼마나 세밀한지 보게 됩니다.
어제는 우리가 새를 중심으로 예물을 살펴 보았습니다만 오늘은 제사를 위해 쓰이는 또 다른 재료들을 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4절에 보니 백향목이 나옵니다. 백향목은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할 때 사용할만큼 강하고 튼실한 나무입니다. 향기롭고 잘 썩지도 않습니다. 백향목이 정결 예물로 사용된 것은 정결케 된 몸에 다시 부정함으로 썩어 지지 않을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4절을 보니 ‘홍색실’도 있습니다. 고대에는 진홍색은 중요한 것을 나타낼 때 쓰인 색깔입니다. 학자마다 견해 차이가 있습니다만, 홍색실은 피와 속죄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즉 홍색실은 하나님의 속죄를 나타냅니다. 4절에 보니 우슬초도 있습니다. 우슬초는 털이 무성하고 잎이 오밀조밀하게 밀집되어 있어 피를 찍어 뿌리기 위한 용도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죠.
어제 새벽에 우리가 살펴 본 것처럼, 제물로 가지고 온 두 마리의 새 중에 한 마리를 잡아 죽입니다. 5절 말씀을 보면 “(레 14:5) 제사장은 또 명하여 그 새 하나는 흐르는 물 위 질그릇 안에서 잡게 하고”라고 번역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치 졸졸 흐르는 물에다가 그릇을 넣고 그 안에서 새를 잡는 것과 같은 오해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여기서 흐르는 물이란 시냇가처럼 흐르는 물에 담그라는 것이 아니라 ‘Fresh water’ 생수를 말합니다. 즉 질그릇에 생수를 담고 그 위에서 새를 죽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피와 생수가 섞이게 됩니다. 두 마리 중 죽은 새는 죄로 인하여 죽을 수 밖에 없었던 환자 자신을 상징합니다. 또한 신약의 관점에서 보면 죄인을 대신해서 죽임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예표 합니다.
6절 말씀을 보면 맨 마지막 단어가 뭐죠? “찍어”라고 되어 있죠? 그런데 이게 사실은 ‘담그다’라는 해석이 더 이해하기 쉽습니다. 죽인 새의 피와 생수가 섞인 물이 있는 질그릇에 살아 있는 새, 백향목, 홍색실, 우슬초를 담급니다. 그리고 피가 섞인 생수로 환자에게 일본 뻔 뿌립니다. 히브리 사람들에게 7은 완전 함을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따라서 피를 7번이나 뿌렸다는 것은 환자가 부정함으로부터 완전하게 정결하게 되었음을 상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죄로부터 완전히 정결케 함과 동일합니다. 피 뿌림을 받은 문둥병에서 나은 사람은 다시금 진영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백성의 일원이 되어 하나님께 제사드릴 수 있는 특권이 회복되게 됩니다.
7절을 보면 아까 물에 잠시 담구어 두었던 새를 자유롭게 들에 놓아줍니다. 새가 들판으로 자유롭게 나아가는 것처럼, 죽음의 사슬과도 같은 문둥병이 풀어지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음을 나타냅니다. 또한 붉은 피가 온 몸에 묻은 새가 자유롭게 날아가는 것은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죄의 사슬에서 놓임 받고 진리로 말미암아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음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8-9절을 보면 제사를 드리고 난 이후에도 여전히 약간의 절차가 남아 있습니다. 일단 문둥병에 걸렸던 자는 자신이 입고 있던 옷을 전부 다 물에 빨래를 해야 했습니다. 또한 온 몸에 난 털을 다 밀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진영에 들어가서도 자기 장막에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칠일 간 장막 밖에서 생활하다가 들어가야 했습니다. 이미 제사장이 병이 다 나았다고 선포 했는데도 이렇게 까지 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참 까다로운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절차들을 통해 문둥병이 얼마나 무서운 질병인지, 그 질병에 걸리면 얼마나 고통스럽고 불편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얼마나 많은 삶의 손해를 봐야 하는지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들은 이를 통해 죄를 짓는 것이 얼마나 우리 삶에 무서운 결과를 가져다 주는지, 죄가 얼마나 큰 고통과 불편을 일으키고 그리고 손해를 보게 하는지 깨닫게 하십니다. 문둥병이 언제라도 재발할 수 있기에 신중을 다하고 몸가짐을 조심해야 하는 것처럼,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 받은 우리의 죄도 이제라도 또 다시 우리들을 넘어뜨리고 유혹에 넘어갈 수 있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죄를 경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 있는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피로 말미암아 혐오스런 문둥병과 같은 죄를 씻음 받았고, 이제는 하나님의 정결한 자요 주님의 백성으로 인정 받은 삶을 살고 있는 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완전히 죄로부터 무관한 삶을 살게 된 것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도 죄의 습성은 남아 있어서 우리의 연약함을 틈타 죄는 또 다시 일어날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는 그 날까지 죄의 생각들을 쳐 복종시키고 죄로 인해 더럽혀진 마음을 정결케 하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