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건제는 상대방의 것을 훔치거나 손해를 끼쳤을 때, 그것을 배상하는 제사로서, 배상제라고 불립니다. 어제 새벽에는 사람이 하나님의 성물을 훔치거나 하나님께서 금하신 명령을 어긴 경우를 살펴 보았습니다. 오늘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죄를 짓는 경우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2,3절 말씀을 보면 사람을 향하여 지을 수 있는 다양한 범죄의 경우가 기록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물건을 잠시 맡아 주기로 해놓고선, 후에 주인이 찾아오면 자기 것이라고 오리발 내밉니다. 혹은 주인이 쌀 두 가마니를 맡겼는데, 한 가마니만 맡겼다고 속입니다. 이렇게 남을 속이거나 도둑질 하거나, 남의 것을 빼앗는 경우 등등 이웃에게 죄를 범하는 경우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오늘 본문에서 눈 여겨 봐야하는 것은 강도나 도둑질 하는 것도 잘못된 것이지만, 그러한 범죄 행위를 숨기고 거짓말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더더욱 나쁘게 보신다는 것입니다. 죄를 짓고도 거짓말 하며 오리발 내리는 것은 하나님 앞에 중대한 범죄를 짓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죄를 짓는 사람은 하나님을 속이려는 것과 같다고 판단했습니다.
요즘 세상에 얼마나 거짓말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까? 사기꾼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어서, 돈 떼어 먹은 사람도 한 두 사람이 아닙니다. 세상은 이미 거짓말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거짓에서 떠나 진리를 따라 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람은 속여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거짓말 하는지, 아니면 참말을 하는지 다 알고 계십니다. 따라서 강도질, 도둑질 하는 것도 나쁘지만 그것에 대하여 속이고 거짓말 하는 것도 하나님은 나쁘게 보십니다. 거짓된 행동들은 교회를 무너뜨리고 가정을 파괴하는 엄청난 결과를 가지고 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 심각한 죄를 그냥 넘어가지 않으십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손해를 보더라도 서로에게 진실을 말하고, 자신이 죄를 짓거나 실수한 사실도 속이지 말고 정직하게 자수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레 6:5) 무릇 그 거짓 맹세한 물건을 돌려 보내되 곧 그 본물에 오분 일을 더하여 돌려 보낼 것이니 그 죄가 드러나는 날에 그 임자에게 줄 것이요“ 만약 남의 것을 빼앗았거나, 다른 사람이 잃어버린 물건을 차지하고도 오리발 내미는 사람은 본래 물건의 값에 1/5을 더해서 주인에게 돌려주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 5절에 보면 아주 흥미로운 표현이 하나 있습니다. “그 죄가 드러나는 날”이라는 말입니다. 왜 이런 말이 있을까요? 사실 사람이 사는 세상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자기가 물건을 훔치지도 않았는데 억울한 누명을 쓰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심증만 가지고 1/5 갚으라고 하지 않도록, 그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는 것이 확실하게 밝혀지기 전에는 그 사람에게 형벌을 가할 수 없도록 법을 재정하신 것입니다. 공의로운 하나님께서는 억울한 누명을 쓰는 사람이 없도록 방지 해주셨습니다.
속건제는 사람이 죄를 범하면 원금에 20%를 더해서 주인에게 돌려준 후 하나님께 속건제를 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제도 말씀드렸지만, 20% 이자는 대단한 금액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벌금은 높게 측정해 놓으셨을까요? 엄중한 심판을 통해 속건제를 드리는 사람이 다시는 똑 같은 죄를 짓지 못하도록 경고하시려는 의도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보다 더 크고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피해를 입힌 사람에게 원금에 20%를 더하여 돌려줌으로서 상대방에게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도록 하여, 그에게 용서를 구하고 화해를 요청하게 하는 것이죠. 피해를 입은 사람도 20%의 보상을 받음으로 상대방을 더 이상 미워하지 않고 용서해 주시도록 하나님께서 이 속건제의 제도를 제정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1/5 혹은 20%를 더해서 갚는 속건제는 갚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진심어린 회개와 용서를 구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용서와 화해의 시작을 알리는 수단이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한 번 죄를 지은 사람에 대해서는 낙인을 찍고 그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한 번 죄인은 영원한 죄인으로 취급합니다. 심지어 성도들 가운데도 사람이 죄를 지으면 그를 용서하기 보다는 선입관을 가지고 그 사람을 죄인 취급하며 비난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심으로 그 사람을 용서하지 못했음을 나타내는 증거 입니다. 교회는 잘못한 행위에 대해서는 정의를 구해야 하지만, 만약 상대방이 진심으로 회개하고 돌아오면 반드시 용서와 화해의 손길을 내밀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마음이 없다면, 우리는 속건제를 통해 용서와 화해의 정신을 가르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사실 우리들 모두도 다 손가락질 받을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들을 비난하지 않으시고 용서하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화해를 이루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죄인이라 불리지 않고, 하나님의 가족이요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립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복음을 통해 들려주신 용서와 화해의 정신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용서하지 못할 죄는 없습니다. 7절을 읽겠습니다. “(레 6:7) 제사장은 여호와 앞에서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는 무슨 허물이든지 사함을 얻으리라” 하나님은 어떤 죄라도 속건제물을 드리는 사람이 진심으로 회개하면 무슨 허물이라도 사함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어쩌면 이 레위기 6장 7절은 너무나도 충격적인 구절입니다. 어떻게 세상에 모든 죄가 용서 받을 수 있겠습니까? 누군가 내 아들을 죽였는데, 그 후에 속건제사를 드리면 용서받는다고 하면 어느 아버지가, 어느 어머니가 이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겠습니까? 따라서 7절 말씀은 너무 관대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불러 일으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은 무한하여 비록 인간이 범죄하였다 할지라도 그가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기만 하면 무슨 죄를 범하였든지 막론하고 다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죄인이기에 사실 7절은 우리 모든 사람에게는 다 큰 감격으로 다가와야 하는 구절입니다. 우리는 모두 엄청난 형벌을 치뤄야 했습니다. 평생 죄인으로 낙인 찍혀 고통 받으며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우리들을 용서해 주시고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와 화해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회개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큰 죄를 지었든지 다 용서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이처럼 놀랍습니다. 혹시 지은 죄가 너무나 크고 무거워서 절망하고 계신 분은 없습니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가 지은 죄는 결코 용서 받을 수 없을 만큼 크다’라고 생각하고 계신 분은 없습니까? 절망하지 마십시오. 가슴 아파하지 마십시오. 밧세바와 간음죄를 지은 다윗, 우리아를 죽인 살인죄를 지은 다윗도 눈물로 회개하며 하나님께 나아오자 그의 죄를 모두 용서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용서하지 못할 죄는 없습니다. 용서와 화해 이것이 바로 속건제의 정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용서를 구해야 하는 사람은 없습니까? 용서해 주어야 하는 사람은 없습니까? 화해를 구해야 하는 사람 혹은 화해를 받아 주어야 하는 사람, 그 어떠한 상황에 있든지, 복음의 정신은 용서와 화해임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죄 많은 우리들을 용서해 주시고, 원수 되었던 우리와 화해해 주셨습니다. 남은 우리의 삶 동안 이 용서와 화해의 정신으로 살아가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