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다투고 싸우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에서 야고보는 사람들이 다투고 싸우는 원인을 마음 속에 있는 정욕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야고보는 세상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교회 안에서 왜 분쟁이 일어나고 다툼이 일어납니까? 교회 안의 싸움이 일어나고 다툼이 생기는 이유는 권력과 명예를 얻으려는 인간의 부패된 욕심이 그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 욕심이 간절히 원하는 그것들은 우리가 서로 싸운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2절을 보니 “(약 4:2)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고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음 속에서 얻고 싶은 것을 갖기 위해 사람을 죽이고, 미워하고 다투고 싸워도 그것을 얻지 못합니다. 야고보는 우리가 얻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무엇을 얻으려 하는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야고보는 우리들이 받지 못한 이유는 하나님께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기도로 구할 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도한다고 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다 얻는 것은 또한 아닙니다. 3절 말씀에 무엇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약 4: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는 모든 기도가 응답 받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 예수님께서는 “구하라 그리하면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고, 찾는 이가 찾고,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라면 우리가 다 받고, 찾고, 열려야 하는데 우리가 이미 경험하고 있는 대로 우리의 모든 기도제목이 다 응답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야고보는 그 이유를 우리가 구하기는 하는데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정욕을 쓰려고 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3절에 ‘정욕으로 쓰려고’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본문에서 ‘정욕’이란 곧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구하기는 하는데 이 세상에서 쾌락을 누리는데 쓰려고 잘 못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저 벼락부자 되게 해주세요!”, “하나님, 저 로또 당첨 되게 해주세요!” 이런 기도의 이면에는 더 많은 재물을 통해 세상을 더 즐기며 살아가려는 악한 의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의 깊은 곳까지도 다 관찰하시고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그처럼 정욕을 위해서 구하는 기도는 들어주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볼 때는 그러한 기도가 응답 받는 것이 나에게 유익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하나님꼐서는 그것이 결국 우리 영혼을 죽이고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러한 기도는 응답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교회를 개척하며 돈이 급하게 필요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지금 교회 건축을 하는데 돈이 급하게 필요합니다. 하나님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돈이 나올 궁리가 없습니다. 제가 복권을 한 장 살 태니 하나님 꼭 당첨되게 해주세요!” 목사님이 복권 판매소 가서 복권을 샀습니다. 집에 와서 이번에는 자기 가족들 다 데리고 와서 무릎을 꿇고 복권을 붙잡고 간절하게 다시 기도 합니다. “하나님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그들 가운데 있다고 하셨죠? 하나님 이렇게 온 가족이 모여서 기도 합니다. 이 복권에 교회의 운명이 달려 있습니다. 꼭 당첨되게 해주세요!” 하나님이 그 기도 들어 주셨을까요? 아니에요… 겉으로 보면 정말 믿음 좋은 거 같고, 언뜻 보면 그럴사한 기도 같지만, 그것은 하나님 방법이 아니었어요. 결국 복권은 꽝이 나왔습니다. 그럼 그 교회가 정말 그 복권 당첨이 안 되어서 망했을까요? 아니요. 그것도 아니었어요. 그 날 이후 목사님은 자기 마음을 다시 정리했습니다. “그래, 내가 내 자신을 속였구나! 복권 당첨 되서 교회 세웠다는 게 무슨 하나님의 영광이 되겠는가? 내 꾀에 내가 넘어갔구나?” 그 날 이후 목사님이 교인들과 함께 매일 밤마다 교회에 모여서 열심히 기도 했습니다. 하도 마음이 답답하고 간절하니까 목사님은 기도원에 들어가서 집중적으로 부르짖으며 하나님께 매달렸어요.
이와 같은 일이 있은 후 수십년이 지난 지금 그 교회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교회는 지금 한국을 대표하는 교회 중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돈이 필요할 때마다 이름도 얼굴도 알지도 못했던 사람들을 보내주셔서 교회가 위기를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성도들이 십시일반 모은 헌금이 겨자씨가 되어 교회를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그 추운 겨울날 자신이 기도원에 들어가서 만난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못합니다. 비록 교회의 어려운 재정 문제 때문에 기도원 갔지만, 가서 하나님의 더 크신 임재와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한 것을 그대로 주시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이러이러한 것을 주십시오” 하고 구했는데, 하나님은 ‘나중에 한 참 지나서 저것저것을 주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내 생각이 틀렸고, 하나님이 지혜로우시다는 것을 훗날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자신이 40세에 애굽의 왕자로 있을 때 하나님께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후 40년 뒤, 모세가 80세의 노인이 되었을 때 그가 머리가 새하야해지고, 무릎에 힘이 빠지고, 이가 흔들거릴 때 찾아오셔서 그를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자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강한 혈기를 낮추시고, 그가 의지하던 애굽의 권력과 보화가 다 사라진 후, 그의 마음이 겸손하고 온유하게 되는 훈련을 먼저 하시고 그를 사용하셨습니다. 모세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하나님은 모세보다 더 지혜로우셨습니다.
하나님께 기도로 구하면 받습니다. 그러나 구해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정욕대로 구하기 때문입니다. 구하면 받을 것이란 예수님의 약속도 ‘하나님의 뜻’대로 구한다는 전제 속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기도는 결코 응답 받을 수 없습니다. 다시 한 번 3절을 보겠습니다. “(약 4: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여기서 “잘못 구함이라”는 말은 “너희가 악하게 구함이라” 라고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즉, 정욕을 위한 기도는 잘못된 기도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 보실 때 악한 기도 입니다. 그러한 기도 자체로 이미 하나님 보실 때 악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욕을 위한 기도는 하나님께서 결코 응답해 주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의를 구하는 자는, 구하지 않아도 구한 것 외에 다른 모든 것을 더해 주시는 은혜를 받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은 부와 명예나 원수의 목숨이나 자신의 장수를 구하지 않고, 도리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치할 수 있는 지혜를 구했을 때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그가 구하지 않은 부와 명예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그의 삶에 허락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코너스톤 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 정욕을 위한 기도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한 기도는 하나님 보실 때 악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를 하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구한 것 외에 더 큰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