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바에 머물던 베드로는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과 함께 가이사랴로 출발합니다. 한편 가이사랴에서 베드로를 기다리던 고넬료는 그의 가족들을 다 모아두고, 가까운 친구들까지 초청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듣고자 했습니다. 비록 이방인이었으나, 고넬료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열정이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도착하자, 마중 나온 고넬료는 그 앞에 절하였습니다. 천사가 베드로를 부르라 했으니, 고넬료는 베드로를 대할 때 신적인 권위 앞에 있는 것처럼 행동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절 받기를 사양하며 자기 자신도 그 보다 높지 않은 동등한 사람임을 밝혔습니다.
본래 유대인이 이방인과 교제하는 것은 위법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방인과 함께 식사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몇 일 전 욥바에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환상으로 부정한 동물을 보여주시며 “내가 정하게 한 것을 부정하다고 하지 말아라.” 말씀하신 것을 고넬료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자신이 이방인들이 거주하는 가이사랴에 온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나타낸 것입니다. 로마 군인인 고넬료를 만나기 위해서 가이사랴에 온 것은 베드로에게 일종의 큰 모험이었습니다. 그가 이방인과 교제한 사실이 드러나게 된다면 유대인들이 초대교회에 큰 핍박을 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을 따라가라는 성령의 음성을 확실히 들었고, 자신을 가이사랴로 보내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신뢰하였기에 이곳까지 온 것입니다. 오늘 본문 29절에 보면 “부름을 사양하지 아니하고”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 말을 원문에 맞게 해석하면, “하나님의 부르심에 반대하는 말을 할 수 없어”라는 뜻입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얼굴도 본 적 없는 이방사람 고넬료를 만나기 위해 먼 가이사랴까지 온 것입니다. 실로 베드로는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인 자신을 만나러 와준 베드로의 용기 있는 모습에 감동한 고넬료는 이제 그가 어떠한 이유로 베드로를 불렀는지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고넬료는 4일 전 천사가 그를 찾아온 일과 천사가 욥바에 머물고 있는 베드로를 초청하라고 말해준 것을 전해 주었습니다. 고넬료는 베드로가 가이사랴에까지 온 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며, 그가 앞으로 전할 모든 말도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확실하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33절 말씀에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하고 말한 것입니다. 지금 고넬료의 집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전해주시고자 하는 말씀을 듣기 위해 모여 있습니다.
비록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였지만, 그 역시 복음은 유대인들에게만 전해지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태까지 베드로는 유대인들만 대상으로 집중적으로 사역했지,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사역한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고넬료에게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난 사건과 하나님이 자신을 고넬료에게 보내신 이 일을 보며 베드로는 하나님이 유대인 뿐만 아니라 이방인을 부르셨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34절에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행 10: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가로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행 10:35)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진실로 복음은 오늘날에도 그 사람의 피부색깔, 언어, 문화, 환경을 가리지 않습니다. 내 출신배경, 상황, 그 어느 무엇도 하나님께서 구원 못하실 기준이 되지 않습니다. 사람은 외모로 다른 이들을 평가하지만, 하나님은 다르십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이든지, 주님을 경외하며 예수님을 믿고 의를 행하는 사람은 받아 주십니다.
말씀을 전하는 베드로나 말씀을 듣는 고넬료도 이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역사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고넬료의 일가친척과 친구들 앞에서 입을 열어 예수님에 대하여 증거하였습니다. 베드로의 설교 중 36절을 보겠습니다. “(행 10:36)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신 이유는 ‘화평의 복음’을 전하시기 위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여기서 그가 말한 ‘화평의 복음’이란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인간이 용서 받고 그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거룩하신 심판자 되시는 하나님과 죄로 더러워진 사형수인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으로 말미암아 서로 평화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또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유대인과 이방인의 장벽도 무너졌습니다. 복음은 모든 장벽을 무너뜨립니다.
이어서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하신 사역을 다음과 같이 1절로 정리했습니다. 38절을 보겠습니다. “(행 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역사적 실존 인물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나사렛 예수’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모든 기적들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기에 가능한 일임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이제 예수님께서 하신 가장 중요한 사역인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39-41절을 보겠습니다. “(행 10:39)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의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저희가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행 10:40) 하나님이 사흘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행 10:41)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신 후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처음 보는 이방인들에게 예수님이 죽었다가 다시 부활한 이야기를 전하는 것은 큰 부담이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고넬료 주변의 친구들은 로마 군인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장본인들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십자가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큰 박해를 받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오히려 예수님께서 나무에 달려 돌아가신 사건이야 말로 구약성경의 성취이며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신 증거로 말했습니다. 또한 본문 42절을 보면, 베드로는 바로 예수님께서 이 세상의 마지막 날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 되실 분임을 담대하게 증거했습니다.
이처럼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담대하게 전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베드로가 설교가 끝나자, 고넬료의 집에 모여 있는 그의 가족들과 친구들 가운데 성령이 내려오신 것입니다. 이에 이 이방 사람들도 방언을 하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에 욥바에서 베드로를 따라 함께 온 유대인 제자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특별히 45절 말씀을 보면,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이 사람들을 소개하며 의도적으로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라고 기록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오직 할례 받은 유대인만이 하나님께 선택 받은 민족이라는 고정관념 속에서 평생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에게 성령이 찾아오시자, 그들의 잘못된 신념이 한 순간에 깨져버렸습니다. 구약 시대 때부터 시작된 할례를 받지 않고도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얻을 수 있음을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심지어 베드로는 이들이 성령을 받은 것은 처음 자기들이 오순절날 성령받은 사건과 동일한 것으로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오기 전까지만 해도 이방인들을 부정하게 여기며 그들과 상종도 하지 않으려 했던 베드로가 이제는 그 동일한 이방인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는 이방인들도 예수 믿고 구원 받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고백하였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지상명령을 받은 베드로였지만, 정작 유대인이었던 그는 여전히 이방인에 대한 편견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복음의 문이 이방인에게도 열리는 순간,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것과 같은 충격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리를 알기 원하는 고넬료에게 베드로를 통해 복음의 내용을 가르치시고 동시에 베드로에게도 깨달음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통해 새롭게 깨닫게 하시는 진리는 무엇입니까? 말씀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과 말씀을 믿는 것은 별개입니다. 베드로는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그 실천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우리 또한 말씀에 대한 지식과 확신이 분리돼,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실천하지 않는 가르침은 없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 지혜이며 스승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듣고, 우리의 삶을 파고드는 주님의 가르침에 순종하여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