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시대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통치를 받고 있었습니다. 로마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다스리기 위하여 한 해안 도시에 정착했고, 그 도시의 이름을 황제의 이름을 따서 “가이사랴”로 바꾸었습니다. 가이사랴에는 로마 총독들과 많은 로마 군인들이 거주지가 되었습니다. 바로 이 곳을 배경으로 오늘 본문의 주인공 고넬료가 등장합니다. 원어 이름의 발음은 “Cornelius” 입니다. 그는 로마 군인으로서 군대의 백부장이었습니다. 백부장은 100명의 부하를 거느린 장교를 말합니다. 오늘 한국 군대로 따지면 중대장 즈음 됩니다. 비록 고넬료는 이방인이었지만,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었습니다. 교회도 안 다니고, 예수님은 잘 모르지만, 나름대로 신실하게 살려고 최선을 다하는 옳바른 사람이었습니다. 자기만 혼자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는 것도 귀한 일인데, 그는 자신의 온 집안 식구들을 함께 권면하여 하나님을 섬기었습니다. 또한 그는 자신이 가진 것으로 백성들을 많이 구제하였고, 늘 하나님께 기도하기에 힘썼습니다.
고넬료의 이러한 모습이 매우 눈에 뛰는 이유는 그가 이방인이라는데 있습니다. 힘과 권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치한 정복자 로마 군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비싼 세금을 거두었고, 폭행을 일삼았습니다. 로마법에 따르면 로마 병사는 로마 시민이 아닌 피지배국가의 시민이면 아무에게라도 무거운 짐을 지게하고 1 mile을 가게 할 수 있었습니다. 마태복음에 누가 오리를 가자 하면 십리를 가라는 말이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1 mile 을 정확하게 지키는 군인들은 드물었고, 오히려 더 많은 노역을 감당하게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로마 군대가 지나가면 외면하고 피했습니다. 또한 뒤에서 욕하고 미워했습니다. 옛날 일제시대 때 한국 사람들이 일본순사들에게 가졌던 분노와 비슷한 감정이라고 보면 됩니다. 로마 군인들이 피지배국가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착취하고 폭행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바로 이 시기에, 로마 군대의 백부장 고넬료는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행을 베풀고 구제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가 보여준 이러한 삶의 모습을 통해 그가 하나님을 진실 되이 섬기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비록 이방인이었으나, 그는 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경건한 삶을 살았습니다.
본문 3절 말씀을 보니,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그가 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제 구 시’란 오후 3시를 말합니다. 유대인들에게 오후 3시는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기도하기 위하여 올라가다가 앉은뱅이를 만난 시간도 바로 ‘제 구 시’입니다. 늘 기도하는 것이 습관이 된 고넬료가 제 구 시가 되자 평상시처럼 경건하게 하나님께 기도한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특별히 2절 하반절에 고넬료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그가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라는 이 표현에서 ‘항상’이란 말은 바꾸어 해석하면 ‘정기적으로’ 혹은 ‘정해진 시간에’로 바꿀 수 있습니다. 즉 고넬료는 언제나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게다가 3절을 보니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라는 표현을 씁니다. 이것은 지금 그가 공개적인 장소에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 기도실에서 기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고넬료는 언제나 정해진 장소에서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고넬료는 참 독특한 사람입니다. 비록 교회도 안 다니고, 예수님도 안 믿었지만, 그 자신 나름대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선행과 구제를 베풀고 매일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장소에서 기도도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나름대로 하나님 열심히 섬기는 경건한 사람인데, 이런 사람이 예수님 못 만나서 사후에 지옥 가면 얼마나 불쌍하겠습니까? 하나님도 자신을 섬기고자 하는 고넬료의 중심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그로 하여금 예수를 알게 하시기 위하여 그가 매일 기도하는 바로 그 시간, 그 장소에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셔서 환상 가운데 그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천사가 그를 향하여 “고넬료야!”하고 부르자, 한 순간 고넬료는 두려움에 휩싸이게 됩니다. 천사는 이어서 말합니다.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여호와 하나님의 두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 하사 전심으로 자기를 향하는 자들을 찾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주님을 향한 고넬료의 진실한 마음을 보셨습니다. 비록 그가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몰랐지만,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그의 마음을 주님께서 아시고 그의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의 보좌 앞까지 올라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을 꼭 구원하고자 계획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환상 가운데 천사를 보내시는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찾아오셔서 그에게 예수를 소개하고자 하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이 직접 한 사람의 영혼이 예수를 만나게 하시고 회심하게 만드시는 장면을 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부르는 복음 성가 중에 “물이 바다 덮음 같이”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찬양의 가사가 이렇게 시작합니다. “세상 모든 민족이 구원을 얻기까지 쉬지 않으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에 고넬료와 같이 복음과 상관 없지만, 구원을 주시고자 하는 자들을 부르시고 계십니다. 선교사님들의 간증이나 선교 보고를 들어보면 복음을 전해줄 전도자가 없는 중동 지역에서는 밤에 환상이나 꿈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후 예수를 믿기 위해 무슬림 부모와 가정을 뒤로 한채 스스로 교회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지금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한 영혼 한 영혼을 구원하시고자 쉬지 않고 일하고 계십니다.
천사는 고넬료에서 이어서 말했습니다.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본래 베드로는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타 도시에서 신앙생활하고 있는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서 지금 시찰 여행을 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리고 때마침 여제자 다비다의 일로 가이사랴에 가까운 욥바에 머무는 중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전 문맥인 사도행전 9장 43절에 보면 “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있어 시몬이라 하는 피장의 집에서 유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피장이란 가죽 제품을 만드는 사람을 말합니다. 사실 유대인들은 이런 일 하는 사람들을 부정하게 여겨서 그들의 집에 잘 거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가 욥바에 머물고 있는 것, 그것도 피장이의 집에 여러 날 머물러 있는 이 모든 사실조차 유대인들에게 부정하게 여겨지던 이방인인 고넬료와 그의 가정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기가 막힌 섭리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돌아보면 우연한 기회에 예수님을 믿게 된 것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난 과거 누군가를 우연히 만나서 그가 전해 준 복음을 우연히 듣게 되어, 우연한 기회에 교회에 나왔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세계에서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구원하시고 자녀 삼아 주신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으로 말미암은 필연적 사건인 것입니다.
고넬료는 이방인이었지만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고 구제를 많이 하며 항상 기도하는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고넬료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위해 친히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셔서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청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욥바에 가서 죽은 다비다를 살리는 기적을 행할 뿐 아니라 거기 머물렀다가 고넬료를 만나게 되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넬료라는 한 영혼을 구하시기 위해 베드로의 여정을 이끄셨고, 친히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셨습니다.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을 기억하시며, 뜨겁게 사랑하십니다.
앞서 말한 복음성가 “물이 바다 덮음 같이”의 가사는 이렇게 이어 집니다. “세상 모든 민족이 구원을 얻기 까지 쉬지 않으시는 하나님, 주의 심장 가지고 우리 이제 일어나 주 따르게 하소서.” 우리 안에 하나님께서 찾고 계신 한 영혼에 대한 뜨거운 마음이 있습니까? 주님께서 찾고 계신 영혼을 위해 오늘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사랑하는 코너스톤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혼에 대한 뜨거운 마음을 품고, 복음을 전하는 주의 일꾼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