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시대에 최초로 탄생한 초대교회는 가정 교회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의 사역과 성도들의 열심 있는 전도로 인해 구원 받는 자들의 숫자는 나날이 늘어갔습니다. 한 역사가에 따르면 이 당시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신자들의 숫자가 대략 2만에서 2만 5천명 즈음 되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초대교회는 불과 1.2년 만에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어 냈습니다. 교회 안에는 다양한 출신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히브리말을 일상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또 그리스어를 일상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쉽게 생각하면, 오늘 한국 이민 교회에서 한어권 회중과 영어권 회중이 따로 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러니까 초대 교회 안에도 히브리어권 회중과 그리스어권 회중이 함께 있었던 것이죠.
당시 교회는 매일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주었습니다. 교회는 성도들이 교회에 헌금한 것을 통해 고아나 과부들에게 식량과 생필품들을 매일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리스어를 일상으로 사용하는 과부들은 매일 음식을 분배 받는 구제 사역에서 소외 된 것입니다. 단지, 언어와 문화권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음식과 생필품을 나눠주는 구제 대상에서 제외된 것에 대해서, 그리스어 회중들은 심한 차별을 느끼며 교회에 불만을 갖게 되었고 사도들과 히브리어권 성도들에게 불평을 터뜨렸습니다.
사도들은 교회에서 일어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제자들을 모두 소집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공동의회를 연 것입니다. 이 모임에서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은 성도들과 현 상황에 대하여 공유하며 한 가지 커다란 결정을 내렸습니다. 만일 사도들이 매일마다 수 천명에 이르는 가난한 성도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는 일에 묶여 있다면 복음을 증거하고 가르치는 사역이 뒷전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에 사도들은 말씀 사역을 제쳐두고서까지 음식을 배분하는 일을 할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이에 교회는 새롭게 사도들을 대신하여 일꾼들을 세워 교회 안에서 필요한 구제 사역을 담당토록 했습니다. 본문 2절 말씀을 보면 사도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행 6:2)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여기서, ‘공궤’라는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단어에서 오늘날 ‘집사’라는 단어가 나온 것입니다. 이 ‘공궤’라는 단어에는 ‘열심히 일하다’, ‘봉사하다’, ‘분주히 움직이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복음 증거와 말씀 사역에 헌신한 사도들을 대신하여, 가난한 성도들에게 열심과 성실한 태도로 음식과 생필품을 나눠주고 교회의 전반적인 살림살이를 담당해 줄 일꾼들이 바로 초대교회의 집사들이었습니다.
자, 그런데 앞서서 이야기한 것처럼 하는 일이 어찌 보면 너무 단순합니다. 사람들에게 음식 나눠주고, 생필품 나눠주는 것입니다.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대학교 학위가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사회적 경력을 요구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아무나 이 일을 하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교회 사역을 아무 사람에게나 맡기면 반드시 나중에 더 큰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이 중요하게 생각한 기준은 무엇입니까? 3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행 6: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사도들을 교회 사역을 맡아 볼 사람들의 자격을 말하며 제일 먼저 ‘성령충만’을 언급했습니다. 왜 이것이 가장 중요할까요?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분별할 수 있기에 자신의 생각이나 세상적인 방법대로 교회를 운영하지 않고, 성령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은사와 재능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올바로 이루어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기준은 지혜의 충만 입니다. 지혜는 실재적인 행정과 사무 처리를 감당할 능력을 의미합니다. 피아노를 반주하는 자는 믿음만 좋아서는 안 됩니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실력도 함께 있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 사역을 맡기기 위해서는 그가 성령에도 충만하지만 또한 그 사역을 실천적으로 감당할 능력도 갖추어야 합니다.
세 번째 기준은 칭찬 받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실력이 좋고 능력이 좋아도, 교회 안에서 평판이 좋지 않고, 성도들 사이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면 그런 사람에게 사역을 맡길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칭찬듣는 사람’이란 말에 원어를 살펴보면 ‘평판이 좋은 사람’이란 의미도 있습니다만 또 ‘증명된 사람’이란 뜻도 있습니다. 즉, 그 사람은 이미 성령이 충만한 결과로 예수님을 닮아 인격이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이들은 앞으로 교회의 리더로서 사도들과 함께 동역 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교회의 성도들이 그를 보며 “그래 저 사람이라면 우리가 교회 일을 믿고 맡길 수 있지.”하고 동의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준을 통해 교회는 일곱 명의 집사를 선택했습니다. 이는 사도들이 선출한 것이 아니라, 온 교회가 투표하여 결정한 것을 보입니다. 본문 5절에 나오는 이름을 한 번 살펴봅시다. “스데반, 빌립, 브로고로, 니가노르, 디몬, 바메나, 니골라” 입니다. 한글 성경으로 보면 이 이름이 가지는 특성이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 이름들은 모두 그리스식 이름입니다. 어떤 성경 학자들은 오늘 본문이 집사를 선출하게 된 배경이 그리스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과부들이 음식 배분하는데 소외된 문제에서부터 출발하였기에, 이 투표 결과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모두 집사로 선출되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 7명이 모두 그리스어만 사용하는 사람들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 교회 어느 성도님들처럼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를 둘다 하는 이중언어자 였을 것입니다. 아마도 초대교회는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사람들을 집사로 세워 히브리파 사람들과 헬라파 사람들을 하나로 연결해줄 수 있기를 바랬던 것으로 보입니다.
자, 이렇게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고 칭찬 듣는 사람들을 교회의 사역자들로 세운 결과는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행 6: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교회는 더욱 든든히 세워져 가고, 복음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며, 구원받는 영혼들은 날마다 더욱 늘어났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모두는 하나님으로부터 귀한 직분을 받은,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초대교회에서 선택 받은 이 일곱집사들처럼, 성령에 충만하고, 지혜에 충만하고 사람들에게 칭찬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로 인해 우리 코너스톤 교회에 하나님의 말씀이 왕성하여 지고 제자의 수가 더 많아지는 귀한 교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