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29 천국으로 인도하는 십자가 (누가복음 23장 39-43절) – 고난주간 특별새백예배 3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자, 수많은 유대인들은 일제히 주님을 향해 야유와 조롱을 쏟아 부었습니다. “만일 네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라면 십자가 위에서 내려와 보아라!” 성난 군중은 예수님을 향해 돌이라도 던질 기세였습니다. 로마 병사들도 비꼬는 말투로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이라 부르며 그를 조롱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옆에는 두 사람이 각각 좌편과 우편에 역시 십자가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성경은 이 사람들을 가리켜 “두 강도”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중 한 강도는 예수님을 향해 조롱하고 비방하는 유대인들의 목소리에 동조하여 예수님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분명히 그리스도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리스도라면 너 자신과 우리들을 십자가에 구원해야 하는 것 아니냐? 그리스도라고 말로만 떠벌리지 말고, 우리를 구원해 봐라!” 이 강도는 십자가 위에서 죽어가는 그 순간에도 예수님을 비방하였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습니다만, 유대 고대 문헌에 따르면 이 강도의 이름은 ‘게스타스’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성경에서 가장 불쌍하고 동시에 어리석은 사람을 한 사람 뽑으라고 한다면 바로 이 강도, ‘게스타스’를 뽑고 싶습니다. 그는 온 인류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 달리신 메시아에 그 누구보다 가까이 있었습니다. 인류 역사상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와 대화를 나눈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 입니다.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게스타스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구원할 메시아를 바로 옆에 두고도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의 유일한 소망이요 구원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비방하고 조롱하였습니다. 게스타스는 육신적으로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가장 가까이 있었습니다만, 그의 영혼은 예수님과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그는 십자가에서 고통 당하고 계신 주님을 향하여 큰 소리로 욕하고 윽박질렀습니다. 그 결과 그는 영생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십자가에서 가장 가까이 위치했던 그가 이처럼 멸망의 포구에 떨어진 것은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 되어야 합니다. 누구나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다 구원 받는 것은 아닙니다.

게스타스를 보십시오. 그는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과 가장 가까이 있었으나, 자신의 구원자 되시는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여 결국 저주 받은 인생으로 비참하게 생을 마감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오늘 우리 주변에서도 얼마나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까? 평생 교회를 다녔음에도, 십자가의 은혜를 알지 못하고, 예수가 내 인생에서 어떤 의미가 있으신지 전혀 깨닫지 못하는 비참한 영혼들 너무나도 많습니다. 빵집에 와서 빵을 먹고 가야 가듯이, 교회 왔으면 생명의 떡 되신 예수를 만나야 하고, 약수터에 왔으면 생수를 떠가듯이, 교회 왔으면 생수의 강 되시는 예수를 만나야 하는데, 교회는 오래 다녀도, 여전히 예수와 상관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예수가 누구이십니까?” 이 질문에 대하여 단순히 성경지식을 가지고 머리로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주일학교 때부터 배운 습관으로 신앙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내 전 존재를 다하여 영혼의 고백으로 “주님은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하고 대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와 상관이 있는 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비방하는 사형수 ‘게스타스’에 비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예수님께 믿음을 고백한 죄수도 있었습니다. 그는 앞서 예수를 조롱한 강도와는 다르게 반응하였습니다. 이 강도의 이름 역시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습니다만, 고대 유대 문헌을 살펴보면 이 사람은 ‘디스마스’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문헌들은 아마도 디스마스와 게스타스가 원래부터 서로 공범이었고, 둘이 함께 강도짓을 하다가 잡혔을 것이라고 추측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예수에 대하여 전혀 다른 반응을 보여 주었습니다. 디스마스는 예수를 조롱하는 ‘게스타스’를 꾸짖었습니다. 40절 말씀을 봅시다. “(눅 23:40)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다시 말하면 이런 것입니다. “아니, 이 사람아, 너도 그리스도와 똑같은 십자가 처형을 받고 있으면서 하나님이 두렵지도 않느냐? 우리는 우리가 저지른 짓이 있으니 마땅히 받을 벌을 받는 것이지만 이분은 잘못한 일이 아무것도 없다!” 디스마스는 이 말을 통해 두 가지를 고백했습니다. 첫째, 그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했습니다. 자신들이 받는 형벌은 범법 행위에 상응하는 정당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은 형벌 받을 만한 아무런 잘못이 없으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디스마스는 어떻게 예수님을 알아 보았을까요? 사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두 강도가 십자가에 매달리는 사건은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세 복음서에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누가복음과 다른 두 복음서인 마태와 마가의 내용이 조금 다릅니다. 그것은 누가는 오직 게스타스 한 사람만 예수님을 비방한 것으로 설명하는데 반해, 마태와 마가는 게스타스와 디스마스 두 강도 모두 예수님을 욕했다고 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점으로 미루어 보아, 디스마스도 처음에는 예수님을 욕하고 비방한 것으로 추측해 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는 이러한 놀라운 회심을 십자가 위에서 하게 되는 것일까요? 학자들은 그가 처음에는 예수님을 욕했으나, 예수님께서 자신을 못 받는 사람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시는 장면을 보고 회심과 같은 변화가 일어났고 말하고 있습니다. 실로 디스마스는 십자가 위에서 그의 마음과 생각이 변화하였습니다. 이전에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법대로 사람들에게서 빼앗고 강도짓하고 살아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했습니다. 또한 지금 자신이 십자가에 달린 것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자기와 같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못 박은 자를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시는 장면을 보고 예수님이 자기가 생각하던 죄인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죽음 이후에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있음을 믿으며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생각하여 다음과 같이 요청했습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Jesus, remember me when you come into your Kingdom.” Jesus remember me.

평생을 강도로 살아온 디스마스… 평생 자기가 옳다고 믿는 방법대로 살았습니다. 더 가지기 위해서 남의 것을 빼앗았습니다. 이제 막 회심하여 죽음에 이르게 되어 아무런 선행도 쌓은 것 없는데 그는 과연 천국에 들어 갔을까요? 이 질문에 대하여 우리는 의심의 여지 없이 yes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43절에 우리 주님께서 그에게 이렇게 대답하셨기 때문입니다. 43절 말씀을 함께 봅시다. “(눅 23:43)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말한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이로서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순간을 앞두고도 십자가에서도 한 영혼을 구원하셨습니다. 디스마스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직접 구원 받을 것이란 확증을 받는 놀라운 은혜를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그에게는 구원의 십자가가 된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비방하고 조롱하던 강도 게스타스는 자기 죄 가운데 비참하게 죽어갔습니다. 하지만 겸손하게 자기 죄를 인정하고 예수님께 구원을 요청한 강도 디스마스는 예수님으로부터 영생을 약속 받았습니다. 비록 죄수의 신분으로 죽어가고 있었으나 그의 영혼은 영원한 생명을 약속 받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다가오는 모든 인류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의 행실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절대적인 믿음을 통해 들어가는 나라라는 사실을 몸소 나타내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십자가 입니다. 이 세상의 삶으로 우리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소망은 저 천국, 하늘나라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를 본향으로 인도하는 십자가 입니다. 이 십자가의 은혜를 단단히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마지막 찬란한 영광의 날,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본향으로 인도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한 저 천국에 거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