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119 믿음의 눈을 소유한 사람 (느헤미야 7장 2-4절)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들과 레위 사람들을 세운 느헤미야, 그는 이제 온 예루살렘을 다스릴 리더들을 임명했습니다. 본문 2절 말씀에서 주목해 봐야 할 인물이 바로 “하나냐” 입니다. 느헤미야가 자기를 대신해서 온 예루살렘을 다스리는 백성들의 통치자로 임명한 자가 바로 “하나냐” 입니다. 2절을 보니 하나냐는 “충성스러운 사람이고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리 중에서 뛰어난 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충성스럽다’는 것은 이 사람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만한 정직한 성품과 성실함을 겸비한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냐는 무슨 일을 맡겨도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은요 같이 지내다 보면 누가 믿을만한 사람인지 아닌지 다 보입니다. 우리가 말은 안 하지만 그 사람의 평상시 일거수일투족을 통해서 저 사람이 믿을 만한 사람인지 아닌지 다 분별이 됩니다. 믿을 만한 사람 한태 일을 맡기면요 마음이 편안합니다. “저 김 집사님은 정말 정직하시고 성실하셔. 저 분이라면 내가 믿고 맡길 수 있지.” 여러분 이보다 더 큰 칭찬이 어디 있겠습니까? 회사에서도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이런 칭찬을 받는다면 그 사람은 정말 성공한 사람입니다. 2절 말씀을 보니 하나냐는 충성스러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리 가운데 뛰어난 사람이라 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경외했다는 것은 하나냐는 무슨 일을 하든지 늘 그 중심에 하나님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을 다스리는 사람을 뽑을 때 그 사람이 잘생겼는지 힘이 센지 대학교는 좋은 데 나왔는지 이러한 것들을 보고 사람을 뽑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 사람이 재물이 많은지 집안 배경은 어떠한지 그 부모는 뭐 하는 사람인지 백이 든든한 사람인지 이런 것을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무엇을 보았습니까? 누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인가?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기 위해 날마다 힘쓰며 누가 보지 않아도 땀 흘려 성실하게 일하고, 홀로 있어도 하나님이 두려워 정직하게 일하는 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입니다. 특별히 하나냐는 무리 가운데서도 하나님 경외함이 뛰어난 자입니다. 사람이 봐도 “그래 저 사람은 진짜 하나님 믿는구나? 딴 사람은 몰라도 저 사람의 신앙은 살아 있다.” 이런 인정 받는 사람이 바로 하나냐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무엇이 뛰어난 사람이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까? 재물에 뛰어난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남들이 다 알아주고 부러워하는 명예로운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진짜 두려운 사람은 재물이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명예로운 자리에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진짜 무서운 사람은 바로 하나님을 그 삶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며 그를 경외하는 자입니다. 그런 사람의 인생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고 늘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도가 뛰어나기 위해 훈련해야 하는 영역이 있다면 바로 하나님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냐와 같이 그 누구보다 하나님 경외하는 것에서 뛰어난 위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처럼 느헤미야는 각각 처소에 필요한 사람들을 세웠습니다. 그는 문지기를 세웠고, 노래하는 자와 레위 사람들을 세웠습니다. 또한 충성스럽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하나냐를 예루살렘 백성들을 다스릴 지도자로 세웠습니다. 이후 느헤미야는 문지기와 백성들에게 성을 지키기 위한 구체적인 지시를 내립니다. 본문 3-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7:3) “내가 저희에게 이르기를 해가 높이 뜨기 전에는 예루살렘 성문을 열지 말고 아직 파수할 때에 곧 문을 닫고 빗장을 지르며 또 예루살렘 거민으로 각각 반차를 따라 파수하되 자기 집 맞은편을 지키게 하라 하였노니 (7:4) 그 성은 광대하고 거민은 희소하여 가옥을 오히려 건축하지 못하였음이니라” 3절 말씀에 보니 아침 일찍부터 성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기회를 엿보고 있는 적들로부터 가장 취약한 새벽 시간에는 아예 성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해가 높이 뜬 시간 즉 보초가 활동하는 시간이 되야 비로서 성문을 열었습니다. 또한 아직 파수할 때, 보초를 스는 병사가 퇴근하지 않은 시간에 일찍 문을 닫고 문을 잠가 버렸습니다. 또한 성벽 가운데 특별히 취약한 곳, 경비가 필요한 곳은 백성들이 돌아가며 순번에 따라 경계태세를 유지하게 하였습니다. 나머지 백성들도 자기 집 맞은 편 성벽은 철저하게 지키도록 지시했습니다. 아무리 성벽이 단단하게 지켜주고 있어도, 적의 단 한 번의 기습공격으로 인해 예루살렘 전체가 불타 없어질 수 있는 위기의식을 갖고 느헤미야는 성벽을 재건한 이후에도 영적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느헤미야 혼자 지킬 수 없었습니다. 문지기가 문을 지켜줘야 하고, 백성들이 각각 처소에서 맡은 곳들을 지켜줘야만 성이 적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게 거할 수 있습니다. 교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도 목회자 혼자서 세워갈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역학들을 감당할 때 교회가 든든하게 세워져 갈 것입니다.

4절 말씀을 보니까요, 느헤미야와 백성들이 지은 성이 광대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 사는 거민들은 희소합니다. 즉 도시는 큰데 주민이 없습니다. 예루살렘이 유령도시 같이 성 안이 썰렁합니다. 미국에 온 이민자 가족이요 한 세대만 지나도 미국에 살려고 하지, 한국에 돌아가서 잘 안 사려고 하죠? 잠시 잠깐 가족과 지인 만나러 고국에 돌아 갈수는 있겠죠. 그러나 그곳에 영영 살러 가지는 않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도 페르시아 왕이 고향 땅에 돌아가 살라고 자유를 줬는데, 지난 70년간 부유한 페르시아에서 살다 보니까, 어느 누구 하나 선뜻 파괴되고 황폐한 예루살렘에서 살려고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도시가 썰렁한 거에요.

그럼 왜 살고 있는 사람도 없는데 느헤미야는 이처럼 성을 크게 지었습니까? 느헤미야는 눈에 보이는 것만 바라보고 산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먼 미래까지 내다보는 비전의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아무것도 남아 있는 것이 없는 황폐하고 불타 없어진 도시였지만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꿈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깨서 다시 돌아오실 도시! 하나님께서 회복하실 도시! 다시 한 번 노인과 젊은이가 거리를 가득 메우고 여기저기서 어린 아이들이 길가 이곳 저곳에서 뛰어 놀고 장난 치는 소리가 넘쳐나는 도시!” 남들이 볼 때는 예루살렘 도시는 그저 불타 없어진 황무한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에게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부흥의 역사가 이뤄질 도시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비록 지금은 예루살렘에 거하는 백성들이 희소 했으나 그는 성을 광대하게 지었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 말씀은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하나님의 사람은 당장 눈 앞에 보이는 현실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비전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눈을 소유한 사람은 아무리 현재 상황이 힘들고 어려워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그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더 나은 미래를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에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 많은 어려움들이 곳곳에서 나타납니다. 또한 이런 어려움들이 우리를 두렵게도하고 낙심하게도 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끝까지 버텨 낸다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을 반드시 보게 될 것입니다. 인간의 눈으로 볼 때 불가능한 일을 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믿음의 눈으로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