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103 하나님의 손이 나를 도우므로 (느헤미야 2장 1-10절)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제국을 다스리는 왕이 마실 모든 음료를 다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신하들이 왕에게 바치는 모든 술이나 음료는 반드시 느헤미야가 통과시켜 주어야 왕에게 갈 수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왕이 정적의 음모로 인해 독이 탄 음료에 죽지 않도록 하기 위해 늘 경계하고 주의하며 살았습니다. 페르시아의 왕 아닥사스다는 느헤미야를 믿고 그가 준 음료를 마셨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의 마음에 지금 큰 아픔이 있습니다. 그것은 고향 이스라엘 땅에서 돌아온 그의 형제 하나니가 전해준 소식 때문이었습니다. 고국에 남아 있는 백성들은 큰 환란을 당하고 있고 적들에게 능욕을 받고 있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벽과 성문들은 불타버렸습니다. 이 일로 인해 느헤미야는 수일 동안 음식을 페하고 금식하며 하나님께 이스라엘 땅의 회복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중 기어코 큰 일이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왕의 술 맡은 자로서 절대로 왕 앞에서 근심이나 수심이 있는 안색을 비추어서는 안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그의 마음 속 깊이 자리잡은 고국에 대한 슬픔으로 말미암아 그의 얼굴에서 수심이 비취고 말았습니다. 느헤미야는 아주 신중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아마 그의 얼굴 빛이 변한 시간은 매우 짧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닥사스다 왕은 그 몇 초를 놓치지 않고 수색이 변한 느헤미야를 감지했습니다. 1절 말씀을 봅시다. “(느 2:1) 아닥사스다 왕 이십년 니산월에 왕의 앞에 술이 있기로 내가 들어 왕에게 드렸는데 이 전에는 내가 왕의 앞에서 수색이 없었더니” 느헤미야가 언제 수색이 변했습니까? 하필이면 그가 왕에게 술을 드리는 가운데 얼굴색이 변했습니다. 그러니 왕의 입장에서는 무언가 심상치 않다고 느낄만합니다. 2절에 왕이 느헤미야에게 묻습니다. “(느 2:2)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색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그 때에 내가 크게 두려워하여” 페르시아에서 왕은 곧 법입니다. 왕이 고개 한 번 까딱하면 사람도 죽일 수 있습니다. 그런 왕 앞에서 술을 따르는 자가 수심이 있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은, 지금 왕이 마시는 술에 독이 타 있을 수도 있다는 의심을 사기 충분했습니다. 왕이 느헤미야에게 “어찌하여 네 얼굴에 수색이 있느냐”하고 물어보았을 때 느헤미야가 느낀 두려움은 자칫 왕이 오늘 나를 죽일 수도 있겠다는 위기에서 온 감정이었습니다. 성격이 차분하고 신중한 느헤미야는 이 위기를 지혜롭게 대처해 나갔습니다. 3절 말씀을 봅시다. “(느 2:3) 왕께 대답하되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색이 없사오리이까” 3절에 보면 느헤미야는 자신이 지금 슬픈 기색을 보이는 이유가 ‘조국 이스라엘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나의 열조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 페르시아 왕 앞에서 멸망해 버린 이스라엘의 재건이란 주제를 꺼내는 것은 정치적으로 위기감을 조성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페르시아인들은 조상들의 무덤을 매우 소중히 여겼습니다. 이런 이유로 느헤미야는 자신이 슬퍼하는 이유가 예루살렘이라 말하지 않고 열조의 묘실, 즉 조상들의 무덤이 있는 성읍 때문이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참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느헤미야의 대답을 들은 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는 느헤미야가 깜짝 놀랄만한 질문을 물어보게 됩니다. 4절 말씀입니다. “(느 2:4)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조금 전끼자만 해도 술 관원 느헤미야는 왕 앞에서 술을 따르다 수색이 변하여 왕의 의심을 샀습니다. 이는 페르시아 국법에 따르면 사형감이었습니다. 또한 법이 아니어도 왕의 마음에 안 들면 그 역시 바로 죽음입니다. 한 순간 방심하여 보인 얼굴 빛의 변화 때문에 왔던 위기… 그러나 이 몯느 것이 바로 하나님의 치밀하신 계획 안에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느헤미야의 위기를 기회로 사용하셨습니다. 느헤미야가 당한 위기는 사실 하늘이 주신 기회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우리의 삶에 찾아오는 위기들 조차도 하나님의 크신 뜻을 이루실 기회로 사용하십니다.

아닥사스다 왕이 느헤미야에게 물었습니다. “그럼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느헤미야는 이미 지난 수 일 동안 금식하며 하나님께 예루살렘 성을 위한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의 머리에는 예루살렘 성을 위한 필요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왕이 물어봤을 때 “네 왕이시여 저 이거이거 필요합니다.”하고 바로 대답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바로 왕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습니다. 4절 후반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묻도하고” 느헤미야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이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상황 속에서도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이 순간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혜를 달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우리는 느헤미야의 이 ‘묵도’를 통해 느헤미야가 매 순간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갔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는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늘 기도로 하나님을 자신의 삶에 초청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도움을 구한 느헤미야에게 지혜를 주셨고, 느헤미야는 조리 있게 예루살렘 재건을 위해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왕에게 구체적으로 구했습니다. 5-7절 그가 왕에게 구한 보면, 느헤미야의 대답이 바로 나온 것이 아니라, 오랜 묵상과 고민 끝에서 나온 것임을 볼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싦 감독 책임자의 이름도 알고 있었고 필요한 물자와 행정문서까지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기도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재건을 위해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간구하며 준비해 온 사람이었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은 느헤미야의 말을 듣고 이것이 충동적으로 급조된 계획이나 요청이 아님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싸실 그 동안 왕이 그 누구보다도 느헤미야를 가끼에에서 유심히 지켜보았기 때문에 그가 맘에 안 들었으면 이 참에 참수형 시켜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왕은 평상시 성실하게 일하여 자신을 섬긴 느헤미야를 신뢰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세상 사람들에게도 인정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아닥사스다 왕은 느헤미야의 모든 요청을 들어주었습니다. 이것은 기적 중의 기적이었습니다.

느헤미야서는 느헤미야 자신에 대한 글 입니다. 따라서 느헤미야가 왕과의 대화를 마친 후 이 장면을 기록하면서 “역시 저처럼 지혜로와야 됩니다.” 혹은 “역시 사람은 저처럼 평소에 성실해야 합니다.”라는 리앙스를 풍기며 이 모든 것을 자신의 공로로 돌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8절 후반절에 느헤미야는 무엇이라 고백하고 있습니까?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심으로 왕이 허락하고…” 느헤미야의 고백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내 지혜로 된 것도 아니요, 내 능력으로 된 것도 절대로 아닙니다. 나는 미련하고 약하지만, 오직 선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아닥사스다 왕 앞에서 은총을 입었습니다.” 참 겸손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처한 상황이나 환경이 어렵거나 두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한 손길이 우리를 도우시면 이 두려운 위기를 놀라운 기회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내 지혜로 일하고 있습니까? 나의 경험과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 목도하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인정한 느헤미야처럼,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끝가지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음으로 고백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