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30 주께로 다시 돌아오게 하소서 (애가 5장 17-22절)

어떤 사람이 신앙생활을 건강하게 하는 사람일까요? 대부분 이런 질문을 하면 성경을 많이 읽는 사람 혹은 기도를 오래하는 사람을 떠올립니다. 물론 성경을 읽는 것이나 기도하는 것은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기 위한 필수요소 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많이 읽거나 기도를 오래 하는 것이 신앙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닙니다. 이것은 마치 운동을 하는 사람이 운동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 운동을 하듯이, 성경 읽기나 기도 역시 그 자체는 목표가 아닙니다. 이러한 것들은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기 위한 요소들 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신앙생활을 건강하게 하는 사람일까요? 바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깝고 깊을수록 그 사람은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 단순히 잘 살기 위해서 말씀 보고 기도하는 사람은 참 신앙생활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궁극적 목적은 바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막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그래서 죄는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게 하는 영적 질병입니다.

남 유다는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관계를 맺고 살아가던 언약 백성이었지만 오랜 세월 동안 죄를 회개하지 않고 살아가자, 결국 죄 때문에 멸망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레미야 선지자의 마지막 기도 입니다. 그는 기도를 시작하 먼저 하나님의 영원하심을 노래 합니다. 19절 말씀입니다.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오며 주의 보좌는 세세에 미치나이다” 예레미야는 단순히 하나님의 존재가 영원하심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했고 충성스럽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존재와 함께 주님의 은혜와 자비는 영원함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악으로 인해 벌어진 사건들과 상황만 바라본다면 후회와 탄식 뿐일 것입니다. 그러나 변하지 아니하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영원하신 하나님을 바라 볼 때 우리는 주님의 영원한 은혜와 자비 안에서 새로운 소망을 갖게 됩니다. 예레미야의 기도는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을 향한 신뢰가 가득합니다. 그는 은혜와 자비의 하나님께서 절대로 이대로 주님의 백성들을 멸망하도록 두시지 않으실 것이라는 확신이었습니다. 20절 말씀도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긍휼하심에 대한 확신 가운데 드리는 기도 입니다.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잊으시오며 우리를 이같이 오래 버리시나이까” 이 말을 조금 이해하기 쉽게 바꾸어 말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 주님은 은혜가 영원하시고 자비로우신 분이시잖아요. 어떻게 그런 주님께서 우리를 영원히 잊으시고 우리를 이같이 오래 버리십니까?” 예레미야는 남 유다가 절대로 하나님께 잊혀지거나 버림받았다고 믿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남 유다가 범죄 하였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큰 진노와 심판을 당하고 있지만, 여전히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끊이지 않고 있음을 믿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매를 맞는 아들이 화난 아버지를 향해 “아버지 제발 용서해주세요! 제가 정말 잘 못했어요” 하고 두 손으로 싹싹 빌며 용서를 구할 때, 화난 아버지의 마음에 아직도 자기를 향한 애정과 깊은 긍휼이 있음을 믿고 용서를 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비록 예루살렘이 폐허가 되어버리고 이 성에 저주가 임하고 있지만 예레미야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구했습니다.

21절과 22절은 한글 성경만 읽으면 해석하기가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22절이 마치 하나님의 진노와 이스라엘 백성의 버림받음으로 끝나는 것처럼 이해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글 성경만 읽으면 하나님의 진노로 이 책이 끝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는 한글성경에는 번역되지 않은 하나의 단어가 히브리어 성경에 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어로 ‘키’라는 단어 입니다. 이 단어는 조건절 입니다. 굳이 한글에서 비슷한 단어를 단어를 찾아야 한다면 ‘만약에’ 입니다. 영어로는 “unless” 입니다. “무엇무엇하지 않는 한” 입니다. 22절을 제가 원문에 맞게 다시 해석해 보면 이렇습니다. “하나님 만약에 주께서 우리를 아주 버리지 아니하셨다면… 우리를 향한 진노가 특심하지 않으시다면…” 20절에서 예레미야가 조건절을 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대로 버릴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노 중에도 반드시 긍휼을 베푸실 것을 확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22절이 문법적으로 볼 때 조건절이란 이유로 공적인 자리에서 예레미야 애가를 읽으면 22절을 읽고 다시 21절을 읽었습니다.

21절이 예레미야 애가의 결론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애 5:21)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 가겠사오니 우리의 날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이켜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흔히 죄를 회개하는 것은 본인 스스로 의지적인 선택으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개입이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회개가 가능하다는 자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의 회복이 인간의 회개의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개입, 주권적인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본 것입니다. “주께로 다시 돌아오게 하소서…” 이미 너무 오랜 세월 동안 죄악에 물들어 버려서, 스스로 회개하지 못하고 돌아올 마음조차 사라져 버린 이스라엘 백성들… 그러나 예레미야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주님께서 저들의 마음을 만지시고 그들의 마음을 돌이켜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죄인을 향한 눈물 어린 예레미야의 이런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사역으로 인해 완성되었습니다. 본래는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저들을 다시금 이전처럼 회복시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예레미야가 그토록 바라던 주께로 다시 돌아오게 하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죄는 하나님께 가는 길을 막았고, 하나님과 우리 관계를 끊어버렸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께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고, 하나님과의 끊어진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죄인을 용서해 달라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끝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해 우리는 이미 용서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할 것은 주께로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 여전히 우리 삶에 남아 있는 죄들을 해결하고 주님께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해 매일매일 더 가까이 나아가시고, 주님과 더 친밀한 교제를 하는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