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성어 중에 ‘유명무실’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름은 그럴듯한데 실속은 없는 경우를 말합니다. 껍데기는 있는데 알맹이는 없는 것입니다. 입으로 사랑한다고는 하는데 몸으로는 전혀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바로 유명무실한 사랑입니다. 회개도 마찬가지 입니다. 회개가 입으로만 끝나는 껍데기 회개가 아닌, 참 회개가 되기 위해서는 ‘삶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자신의 죄를 뉘우쳤으면 죄에서 돌이키고 똑 같은 죄를 짓지 않는 삶의 변화가 있을 때야 비로소 진짜 회개가 되는 것이죠.
이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요시야 왕은 참으로 회개한 사람입니다. 성전에서 잃어버린 율법책을 찾은 신하들이 요시야 왕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주었습니다. 그러자 요시야는 그 자신과 남 유다가 얼마나 크게 범죄한지 깨닫고 큰 슬픔과 아픈 마음으로 입고 있던 옷을 찢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회개는 옷을 찢는 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더 나아가 삶의 변화로 하나님을 향한 회개의 진정성을 증명했습니다.
가장 먼저 그는 예루살렘의 모든 장로들을 불러모았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2절에 보면 “유다 모든 사람과 예루살렘 거민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무론 노소하고 다 왕과 함께 성전으로 올라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온 백성이 한 자리에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요시야 왕은 참 지혜롭습니다. 자신이 은혜 받았다고 나라를 당장 개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온 남 유다 백성들과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지금 남 유다 전역에 우상이 가득합니다. 우상들을 섬기는 백성들도 수두룩 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만약 요시야가 자기 혼자 은혜 받아서 “나라를 개혁합시다! 우상을 버립시다!”하고 나섰다면 우상을 섬기는 신하들에 의해 반역이 일어났을 수도 있고, 백성들도 그를 따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요시야 왕은 지금 당장이라도 우상들을 부수라고 명령하고 싶었지만, 잠시 그 충동을 내려놓고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를 받고 그들 스스로 우상을 부술 마음을 심어주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저변확대”라고 합니다. 나 한 사람만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에게도 내가 받은 똑 같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요시야 왕의 개혁이 성공한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이 저변확대에 있습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교회에서 혼자 은혜 받았다고 지금 당장 집에서 가서 “오늘부터 우리 집은 매일 저녁 9시에 가정예배 드린다.” 하고 개혁부터 시작하면 아무리 가까운 가족이라도 반가워할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먼저 받은 은혜를 나눠야 합니다. 내가 받은 은혜를 가족들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동일한 말씀을 들려주던지, 아니면 큐티 때 주신 말씀을 나누든지, 먼저 개혁하기 전에 은혜의 저변확대를 해야 합니다. “내가, 아침에 하나님의 말씀을 보니까 하나님께서 산당을 제거하고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는 사람에게 은혜와 복을 주시더라. 나도 우리 가정이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는 가정이 되어서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았으면 좋겠어.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그래, 그럼 우리 가정에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길 수 있을까?” 먼저 은혜를 나눠야 합니다. 개혁을 먼저 하면 처음에는 부모의 권위에 따라서 몇 번은 하는 척 해줄 수 있지만, 오래가지 못합니다.
요시야 왕은 옷을 찢고 나서 곧바로 “개혁하자! 우상을 부수자!” 하고 플래카드 달고, 캠페인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먼저 남 유다의 리더들인 장로들을 부르고 제사장들 선지자들 다 불러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자 남 유다 백성 안에서도 영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왕이 대 위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그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이 언약의 말씀을 이루게 하리라 하매 백성이 다 그 언약을 좇기로 하니라” (왕하 23:3) 말씀을 듣고 나서 왕이 백성들을 향하여 “여러분, 우리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하나님 섬깁시다.”하고 제안하니까 백성이 다 그 언약을 좇기로 결의했습니다. 전 국민적인 회개가 이뤄진 것입니다.
이후의 개혁은 물밀듯이 일어났습니다. 4절 말씀을 보면, 가장 먼저 요시야 왕은 여호와의 성전에 놓여 있는 바알과 아세라와 하늘의 일월성신을 위하여 만든 모든 기명, 기구, 그릇, 우상들과 관련된 모든 것을 다 전 밖으로 꺼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도시 바깥에 있는 기드론 밭에서 우상들과 함께 다 불살라 버렸습니다. 요시야는 가장 먼저 우상들을 제거했습니다. 우리들의 영적 개혁도 동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다른 이들과 은혜의 저변확대 이뤘으면, 이제는 뭐 합니까? 우상 제거 하는 것입니다. 우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보시기에 불쾌한 것, 하나님이 싫어 할만 하신 것, 내 신앙의 양심을 콕콕 찌르는 것, 하나님 섬기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다 우상입니다. 제가 아는 한 분은 술을 너무 좋아하셔서 집에 값비싼 양주를 모셔 두고 살았습니다. 여행 가면 그 지역의 특산 양주 사서 집에 가서 진열해 놓는 것이 이 분의 가장 큰 취미요 행복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교회를 가서 은혜를 많이 받고 집에 들어왔는데, 자기가 그토록 아끼던 양주 진열장이 우상이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분은 어중간한 것을 싫어하는 성격입니다. 그래서 큰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래, 내가 이 술을 버리지 못하면 내 신앙은 여기까지겠구나. 둘 중 하나다. 술을 버리던지, 하나님을 버리던지 하자.” 그래서 결국 자기가 그토록 아끼던 그 양주병들을 버리긴 아까우니까 다 친구들, 지인들 선물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 섬기려고 하니까 자기 마음이 달라졌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예배의 태도가 달라지고, 그러다 보니 예배의 감격과 은혜가 막 넘쳐났습니다. 일단 술이 살아지니까 아내 집사님이 좋아합니다. 남편이 한다면 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모습을 보고 남편을 이전보다 더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이 분의 자녀들도 아버지가 그토록 좋아하던 양주 진열장 다 정리한 것 보고는 “아니, 술 좋아하는 우리 아빠가 저렇게 변하다니. 진짜 하나님이 살아 계신가 보다!”하고 자녀들의 믿음도 더 자라났습니다. 우리 삶 속에 있는 우상들을 버리면 가장 먼저 내가 알고, 그 다음은 내 가족들이 압니다. 우상을 버리면 삶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5절 말씀을 보면 요시야는 또 유다 모든 고을과 예루살렘 산당에서 우상들을 모시는 제사장들,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에게 분향하는 자들을 폐했습니다. 이들은 아마도 오늘날의 공무원과 비슷하게 나라의 녹을 받으며 종교활동을 했던 사람들로 추정됩니다. 요시야 왕의 할아버지인 므낫세 왕 때 세움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요시야 왕은 할아버지의 정책을 뒤집었습니다. 요시야는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들은 과감하게 폐하여 버렸습니다. 우상들을 불사르고 가루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7절에 보면 여호와의 전 가운데 ‘미동의 집’을 헐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미동은 우상을 성적인 행위로 섬기는 남창을 말합니다. 그 사람이 여호와의 전 가운데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요시야의 종교개혁을 통해서 남 유다가 얼마나 많은 우상들을 섬기고 있었으며 얼마나 심각한 죄에 타락해 버렸는지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자연은 그대로 나두면 부패합니다. 사람의 마음도 그렇습니다. 그냥 나두면 또 어느새 죄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집 앞의 풀을 몇 주만 관리 안해도 얼마나 빨리 자라나는지 모릅니다. 죄도 그러합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 내면을 살펴야 합니다. 요시야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우상들을 끌어냈 듯이, 우리들도 우리 영혼 안에 자리 잡은 우상들을 끌어내야 합니다. 우상을 태워야 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더러운 것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요시야처럼 삶의 변화가 있을 때 비로소 참 회개요, 참 믿음이 될 수 있습니다. 껍데기만 있고 알맹이는 없는 신앙 생활은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신앙의 결단을 통해 진정한 삶의 변화를 이룰 때 참된 회개의 열매가 맺어집니다. 오늘 이 하루, 요시야처럼 남김없이, 후퇴없이, 후회없이 하나님을 위해 더러운 것들을 끊어내고 삶의 변화를 이루어 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