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20 세월을 아끼라 (에베소서 5장 15-17절)

우리는 참 바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어른부터 어린아이에 이르기까지 바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어린 아이들도 아침 일찍부터 학교 가서 오후에 집에 들어옵니다. 그럼 또 잠시 쉬었다가 저녁 먹고 밤에는 학교 과제를 합니다. 주말에는 악기 배우고, 다른 아이들에게 뒤쳐지지 않게 한글학교도 다니고 또 운동도 배웁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 비해 더욱 바쁩니다. 직장이나 회사에 가면 해야할 일들은 끝없이 쌓여 있습니다. 아무리 부지런하게 미리 다 해 놓으려고 해도 끝이 없습니다. 업무 때문에 연락해야 하는 사람, 만나야 할 사람들도 있습니다. 게다가 집에 돌아와도 쉼이 아니라 또 다른 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들은 시간적 심리적 여유를 누리지 못한 채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쁘게 산다는 것이 반드시 제대로 살고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정말 바쁘게 살지만 동시에 이상하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까요? 누군가가 우리에게 “바쁘시죠?” 라고 물어본다면 열의 아홉은 ‘네, 바쁩니다. 왜 이리 해야되는 일들이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질문을 바꾸어서 “제대로 살고 계시죠?” 라고 물어본다면 또 다시 열의 아홉은 “글쎄요.. 혹은 아니요.”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제대로 살고 계시죠?”라는 할 때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네’ 혹은 ‘아니오’하고 대답할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저마다 삶의 옳고 그름을 정하는 기준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자신을 보며 “네 저는 제대로 살고 있습니다.”하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같은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미래를 위하여 충분한 돈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아니요. 저는 제대로 살고 있지 못합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럼 정말 어떻게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일까요? 돈을 많이 벌어놓고 풍족하면 제대로 사는 것일까요? 그러한 삶이 제대로 사는 것이란 기준은 누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일까요? 오늘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제대로 된 삶의 기준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에베소서는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에베소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처음 1-3장은 교리적인 부분입니다. 그리스도는 누구이신지,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지 하는 부분을 다룹니다. 이에 비해 4-6장은 실천적인 부분입니다. 즉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라는 식의 모습을 설명해주고 있는 것이죠. 다시 말하면 에베소서의 후반부에는 “성경이 말하고 있는 “제대로 사는 삶”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그리스도인의 ‘시간사용’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15절 말씀을 보면,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시간을 흥청망청 아무렇게나 사용하지 않고, 자세히 주의하여 시간을 사용하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하루를 24시간 주셨습니다. 우리 중 하루가 23시간인 사람도 없고 25시간인 사람도 없습니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주어진 시간은 동일합니다. 본문은 “지혜 없는 자” 같이 되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지혜 없는 자”는 “어리석은 자”를 의미합니다. 왜 어리석습니까? 자기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어리석은 것입니다. 열심히 살기는 사는데 성도로서 꼭 알고 행해야 할 지극히 중요한 일들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할 줄 모르고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반대로 지혜 있는 자는 삶은 조심스럽게 살펴서 하나님의 뜻을 잘 이해하고 따르는 삶 입니다. 즉 우리가 이 세상을 살 때, 아무렇게나 사는 것이 아니라 자세히 주의해서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더 가까울까? 아니면 저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더 가까울까? 주의해서 결정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바빠진 세상에 사는 현대인들은 어느새 24시간도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너도나도 어떻게 하면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지 알고 싶어 시간에 대하여 연구를 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지금도 서점에 가면 시간 관리 노하우에 대한 많은 책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시중에 나온 시간 관리에 대한 책들의 내용을 제가 정리해 보자면 대략 이런 내용입니다. “시간 관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로, 인생의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고, 둘째로 그 목표를 따라 시간을 정렬하는 것이며, 셋째는 중요한 것과 긴급한 것의 차이를 알아 중요한 것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입니다. 시중에 나온 책들의 시간 관리의 주제를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효율성’ 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한정된 인생의 시간을 내가 정한 목표에 맞게 사용하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효율적인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이런 시간 관리 책을 보고 무릎을 첬습니다. “그래 이렇게 효율적으로 시간을 사용하면 정말 후회가 없겠구나?” 그러나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사람들이 인생의 목표를 잘 못 잡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목표를 잘 못 찾은 사람은 바다에서 열심히 노를 젓고 한참 항해를 하다가, 어느 새 자신이 태평양 한 가운데 있음을 발견한 것과 비슷합니다. 열심히 노를 젓고 살아왔는데 알고 보니 지도를 잘 못 보고 있던 것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아무리 우리가 바쁘게 열심히 살아가도 방향이 잘못되면 그 때부터는 표류하는 배와 다름이 없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노를 젓고 살아도 결국에는 태평양 망망대해 한 가운데서 죽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바로 본문에 등장하는 지혜 없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인생이 어디로 흘러 가는지도 모르고 열심히 노만 젓고 살아왔습니다. 저는 이러한 사람의 지혜 없는 삶을 가리켜 “불성실한 성실”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겉으로는 열심히 사는 것처럼 보여서 언뜻 보면 성실해 보이는데, 사실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해결하지 않고 성실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목적지는 남쪽 플로리다인데 북쪽 위스컨신으로 열심히 운전하는 꼴입니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많은 업적을 남겨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우리가 돈을 많이 벌거나, 유명해지거나, 중요한 사람이 되거나, 남들에게 칭찬과 인정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지혜 있는 자… 바로 오늘 내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며 그 분의 뜻대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 입니다. 그 사람의 삶이 비록 남들이 볼 때 초라해 보일지 몰라도, 많은 업적을 달성하지 못해도,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하루를 성실하게 주님의 뜻을 이루며 산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하나님께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받을 사람이며 하나님이 보실 때 가장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15절 말씀은 우리가 지혜 있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특별히 이 말은 “자신의 생활을 늘 살피라”는 말입니다. “내가 현재 시간을 너무 막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내가 tv를 너무 많이 보는 것은 아닐까?”, “내가 스마트폰만 너무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러면 안되지.. 그럼 내가 본래 그 시간에 무엇을 해야하지?” 이렇게 자신의 생활을 늘 살피면서 조금씩 조금씩 성경이 가르쳐 주는 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의 모습으로 변화시켜 가며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상번제를 드렸습니다. 가장 먼저 일어나면 하나님께 아침 번제를 드리면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이 때 번제의 의미는 “하나님 제가 오늘 이 하루를 온전히 하나님을 위하여 살겠습니다. 저와 함께 해주시고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는 의미의 제사입니다. 또한 해가 지고 노을이 질 때 즈음 되면 하루를 마무리하며 저녁 번제를 드립니다. 이 번제는 “하나님 오늘 제가 하나님을 위해 온전히 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혹시 제가 하나님 보실 때 부족한 부분은 없었습니까? 내일을 맞이하며 제가 변경해야 하는 부분은 혹시 없을까요?” 이렇게 자신을 살피는 제사입니다.

한국 교회도 자세히 보면 아침 번제가 있습니다. 새벽예배가 그렇습니다. “하나님 제가 오늘 하루 주님을 위해 열심히 살겠습니다.” 그러나 저녁 번제와 같은 시간이 없어졌습니다. 자기 자신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하루를 돌아보면서 “오늘 하루 혹시 하나님 보시기에 내가 잘못 한 것은 없을까?”하고 생각하고 반성하는 영성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루를 마무리 하기 전에 하나님께 짧게는 5분이나 길게는 10분이라도 기도로 하루를 마무리하라고 권면하고 싶습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침대 곁에 잠시 무릎을 끓고 기도 합니다. 만약 가능하면 골방 같이 기도할 수 있는 조그마한 공간이라도 있으면 그곳에서 기도합니다. 필요하면 배우자에게 먼저 양해를 구합니다. “여보, 하루를 마무리 하기 전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싶습니다. 혹시 내가 침대 옆에서 무릎을 꿇고 있으면, 혹은 골방에서 문을 닫고 있으면 ‘이 사람이 지금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구나’ 생각하고 그 시간만 양해를 부탁합니다.” 하고 말하면 그 시간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인도한 모세도 항상 회막에서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는 거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자세히 주의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들에서 양을 치던 다윗도 하나님께 기도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자세히 주의하는 법을 익혔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아간 믿음의 선배들은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이 남달랐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내가 하나님의 뜻에 더 합당하게 살 수 있을까?”하는 것을 기도하며 살아간 사람들이었습니다.

신앙생활은 계속해서 질문하는 것 입니다. “하나님 제가 이렇게 할까요? 아니면 저렇게 할까요?” 계속해서 이렇게 하나님께 물어보면서 살아가는 것이 신앙생활 입니다. 하나님께 질문을 많이 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께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지혜가 없는 사람, 바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은 “어떻게 행할지 자세히 주의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늘 우리 자신을 살펴 보아야 합니다. 자신을 살피지 않는 사람은 오늘 살아왔던 방식 그대로 내일을 살아갈 것입니다. 문제는 좋지 않은 습관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삶의 패턴이 고정된 습관이 되어 고치기 힘들어지게 됩니다. 철학자 블레이즈 파스칼은 사람의 습관이 우리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말해주기 위해 그는 ‘습관은 제2의 천성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을 늘 살피며 어리석은 자처럼 살아온 모습이 있다면 그것들을 끊어내고 지혜로운 자가 되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18절 말씀을 보면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술에 취하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문자적 의미는 술에 취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술에 취한 사람은 판단력이 흐트러집니다. 영이 원하는 대로 행하기 보다는 육신이 원하는 것을 따라 살게 됩니다. 여기서 파생된 의미가 바로 두번째 의미입니다. 그래서 “술에 취하지 말라”는 말의 비유적 의미는 세상이 가는 대로 무분별하게 좇아가지 말라는 말입니다.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영혼에 가득 채워서 그 말씀이 우리를 인도하는 방향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특별 16절의 말씀을 보면 이 세상에서의 삶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 끝이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엡 5: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16절에 나오는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단순히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해라”, “1분 1초를 아껴서 사용해라”는 말이 아닙니다. 원어로 풀이해보면 “너에게 주어진 모든 기회를 살려서 잘 사용해라!”는 말입니다. 즉 우리 모두에게는 하루가 스물 네 시간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삶은 결코 영원하지 않고 그 끝이 정해져 있습니다.. 때문에 그 한정된 시간 속에서 주어진 모든 기회를 허투루 버리지 말고, 그 모든 세월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서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 말에 “시간은 돈이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실제로 시간은 금보다 귀합니다. 금은 열심히 일하면 살 수 있지만, 지나간 시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살 수 없기 때문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5불, 10불 쓰는 것은 아까워하면서도 정작 5분, 10분 시간이 허무하고 의미 없는 것들 때문에 낭비 되는 것에는 매우 둔감할 때가 많습니다. 어느 기독교 학자는 “그리스도인들은 돈보다 시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영원한 것에 투자한 사람들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쓴 시편 90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모세도 우리의 삶이 칠십이고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시간이 신속히 가는 것이 날아가는 것처럼 빨리 지나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계수하여 지혜롭게 살아야 한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모세가 누구입니까? 40년간 애굽에서 왕자로서 살면서 왕의 후보자가 받는 왕실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입니다. 그러나 나머지 40년은 광야에서 양을 치며 세월을 보내야 했던 사람입니다. 모세가 자기 삶을 돌아보니까 하나님 뜻을 모르고 살면 결국 인생은 의미 없는 방황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민수기서를 보면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열 두 명의 정탐꾼들을 보내게 됩니다. 그러나 그 중 열명의 정탐꾼들이 하나님 뜻을 구별하지 못하고 어리석은 자처럼 행동하자 하나님께서는 그 열명을 같은 날에 목숨을 거두어 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열명에 동조하여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길로 행하길 원했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심판 하셔서, 2주면 들어갈 수 있는 가나안 땅을 앞에 두고 무려 38년이나 광야에서 방황하도록 하셨습니다. 이처럼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 사람은 의미없이 이 세상을 방황하며 살다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나에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그 뜻에 맞게 사는 지혜로운 삶을 선택할 때 그 사람은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놀라운 복과 은혜를 누리며 삶이 꽃피우게 됩니다. 어린 목동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 구별하자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 되었고, 전쟁의 노예로 끌려간 다니엘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자 나라의 셋째 가는 치리자가 되었습니다. 왜 복 있는 사람이 주야로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입니까?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시간 사용은 단순히 시간을 1분 1초 아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용 하는 것입니다.

16절 말씀에 사도 바울은 때가 악하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바울이 살고 있는 세대가 악하다고 한 것입니다. 실제로 바울이 살던 로마 시대는 성적으로 매우 음란하고 폭력이 난무하던 시절입니다. 인권이란 개념조차 없어서 노예를 물건 다루듯이 했고, 살인청부업, 고리대금업 등 사회 전반에 걸친 부정부패와 죄악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때가 악하다는 이 말은 바울이 살던 시대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도 여전히 악합니다. 그것은 바울이 살던 시대나 우리가 살던 시대나 모두 동일한 죄인들이 사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악한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더 자세히 주의해야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주류는 악하게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에 주의하지 않으면 어리석은 자들처럼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 교인들을 향하여 17절 말씀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엡 5:17) 이 말씀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우리들도 이 세상을 허투루 사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영어 표현 중에 Better late than never 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나라 말로 하면 ”안하는 것보다 늦게라도 하는 것이 낫다”는 말입니다. 비록 지나온 시간 우리가 어리석은 자처럼 하나님의 뜻이 아닌 내 뜻대로 살아 왔을지라도, 여전히 우리가 살아갈 남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늦게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그렇게 안 사는 것보다 낫습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한 여정을 시작했으며, 모세는 80세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했고, 요한은 백발의 노인이 다 되어서 온 우주의 마지막을 환상으로 보고 요한계시록을 기록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은 결코 늦은 때가 없습니다. 과거를 뒤로하고 앞에 있는 날들을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지혜로운 자로 살아가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