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떠나려는 열왕들로 인해 이스라엘의 역사가 어두운 밤과 같던 시대, 빛나는 혜성처럼 등장한 사람이 바로 히스기야 입니다. 그의 아버지 아하스 왕은 손에 꼽을 만큼 악한 왕이었으나, 히스기야는 그의 아버지와는 다르게 하나님을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습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였고 남 유다 곳곳에 설치되어 있던 우상들을 부수고, 산당도 제거하였습니다. 히스기야 왕의 가장 눈에 띄는 업적은 앗수르를 배반하고 섬기지 않기로 한 결정 입니다. 앗수르는 그 당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나라입니다. 그 당시 대부분의 왕들은 자연스레 앗수르와 동맹, 화친을 맺고 앗수르 왕을 섬겼습니다. 심지어 히스기야의 아버지 아하스 왕은 앗수르 사람들이 섬기는 제단의 모양까지 따라 제작할 정도였습니다. 이미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의 눈 밖에 나서 나라가 망한 상태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히스기야가 앗수르를 배반하고 섬기지 않기로 결정한 것은 목숨을 건 선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스기야는 하나님이 아닌 열방을 의지하는 것은 악한 것임을 깨닫고 과감하게 앗수르와의 관계를 정리하였습니다. 히스기야의 반 앗수르 정책이 앗수르 왕의 심기를 건드렸습니다. 그리하여 앗수르의 대군이 남 유다에 쳐들어오게 됩니다. 13절에 보면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의 모든 견고한 성읍들을 쳐서 취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대 문서에 따르면 앗수르는 남 유다의 46개 성읍을 이미 항복 시켰고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전쟁은 이미 앗수르가 승리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이에 위기에 몰린 히스기야는 앗수르 왕에게 항복을 선언하며 화친의 대가를 불러주면 그 액수를 지불하겠다고 말했습니다. 14절 말씀입니다. “유다 왕 히스기야가 라기스로 보내어 앗수르 왕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나를 떠나 돌아가소서 왕이 내게 지우시는 것을 내가 당하리이다 하였더니 앗수르 왕이 곧 은 삼백 달란트와 금 삼십 달란트를 정하여 유다 왕 히스기야로 내게 한지라” (왕하 18:14) 앗수르 왕은 은 삼백 달란트와 금 삼십 달란트라는 엄청난 액수를 히스기야에게 부과합니다. 하는 수 없이 히스기야는 여호와의 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을 다 주었습니다. 그래도 은과 금이 모자라자, 여호와의 전 문과 기둥에 입힌 모든 금까지도 다 벗겨서 앗수르 왕에게 바쳤습니다.
히스기야가 위기의 순간에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했으면 좋으련만, 그는 위기가 발생하자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지 않고 그의 조상들이 행해온 방식대로 재물로서 위기를 극복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재물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는 없는 법입니다.
히스기야가 남 유다의 모든 은과 금을 바쳤음에도 불구하고 앗수르 왕은 약속을 어기고 장군들을 명하여 대군을 이끌고 가서 예루살렘을 공격하게 하였습니다. 앗수르를 배신한 히스기야 때문에 인해 심기가 불편했던 왕이라 많은 양의 재물을 받고도 이미 예루살렘을 멸망시키기로 작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남 유다는 더 큰 위기에 빠졌습니다.
앗수르 왕이 보낸 랍사게가 예루살렘 성에 도착하여 히스기야를 조롱합니다. 19-20절 말씀에 “랍사게가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고하라 대왕 앗수르 왕의 말씀이 너의 의뢰하는 이 의뢰가 무엇이냐 네가 싸울만한 계교와 용력이 있다고 한다마는 이는 입에 붙은 말뿐이라 네가 이제 누구를 의뢰하고 나를 반역하였느냐” (왕하 18:19-20) 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히스기야야, 네가 무엇을 믿고 그처럼 대담해졌느냐? 너는 군사력과 전략을 가졌다고 하지만 그것은 빈말에 불과한 것이다. 네가 누구를 믿고 나에게 반기를 들었느냐?”하고 물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앗수르가 보아도 약소국에 불과한 남 유다가 자기들을 대항하여 반기를 들었으니 어이가 없다는 뜻입니다. 랍사게는 히스기야가 무엇을 믿고 그리했냐고
지금 이 시점에서 히스기야 입장에서 보면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앗수르를 배반한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기 위해서 였습니다. 열방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섬기기 위해서 앗수르를 배반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이처럼 나라의 위기로 찾아왔으니, 히스기야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이 야속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에게 위대한 승리를 주시기 위하여 이 위기를 사용하고 계셨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려 하면 반드시 핍박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핍박이 찾아온다 할지라도 중간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포기하면 안됩니다. 그러면 더 큰 환난에 처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핍박과 환난이 찾아와도 끝까지 하나님을 붙드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시작은 참 좋았습니다. 그러나 위기가 발생하자,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잠시 잊은 채 물질로 눈 앞에 닥친 긴급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급급했습니다. 만약 히스기야가 조금 더 하나님을 일찍 붙들었다면 그가 당면한 문제도 더 빨리 더 쉽게 해결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금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해보려면 시약에 반응하는지 안하는지 보면 됩니다. 순금은 황산에 용해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묽은 황산용액을 금 위에 뿌려서 보면 진짜 금은 그 모양 그대로이지만 가짜는 모양이 변하고 녹아 내립니다. 핍박은 우리 믿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해주는 시약과도 같습니다. 금과 같은 믿음은 어떠한 핍박에도 하나님을 향한 마음에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가짜 믿음은 핍박이 찾아오고 환난이 발생하면 믿음이 녹아 내립니다. 하나님을 떠납니다.
시약을 통과한 금은 진짜 금이라는 것이 판별 되었기에 그 가치를 인정 받습니다. 마찬가지로 위기의 순간에야말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의 진실함을 증명할 기회가 되는 셈입니다. 위기의 순간에 봉착한다 할지라도 여전히 하나님만을 온전히 의지하는 정금과 같은 믿음을 가지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