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2 추수감사주일예배 – “감사: 일. 이. 삶.”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

서론.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지난 3월 11일 세계보건기구 ‘WHO’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하여 ‘Pandemic’(범 유행병) 선언을 했습니다. 그 다음날인 3월 12일 기준으로 보면 미국 내 코로나 확진자는 1,323명이었고, 사망자는 40명이었습니다. 약 8개월이 지난 지금, 미국 내 코로나 확진자는 무려 1천 2백만명이 넘었고, 사망자는 25만명을 넘어섰습니다. 이제는 미국에서 하룻밤 사이 새롭게 코로나 확진 판단을 받는 사람의 숫자가 20만명이 넘습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일리노이주의 경우에도 총 1만 명 이상 죽었습니다. 지난 3월부터 10월까지 사망자 통계를 내보니, 일리노이주에서 심장질환, 암 다음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로 인해 죽었습니다.
코로나는 우리의 일상을 바꾸어 버렸습니다. 한참 친구들과 뛰어놀아야 하는 어린 자녀들의 경우 학교에 가지 못하고 집 안에서만 지내야 했습니다. 교회의 경우, 서로 함께 모여 얼굴을 마주보고 예배 드리는 것이 언제나 당연한 줄로만 알았는데, 이제는 교회에서 만나 모임을 하는 것조차 위험한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었고, 비즈니스가 크게 위축되었고, 또 평생 일궈온 가게 문을 닫아야 했던 안타까운 상황에 놓인 분들도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2020년은 우리 삶 속에서 가장 힘든 한 해로 기억될 것이라 벌써부터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고난의 때에 우리는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보니 ‘모든 일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과연 이처럼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우리들은 감사할 수 있을까요? 코로나로 인해 직장을 잃어버렸는데 어떻게 감사할 수 있을까요? 코로나로 인해 비즈니스가 크게 위축되었는데 어떻게 감사할 수 있을까요? 마치 자연재해로 인해 지난 한 해 동안 땀 흘려 농사 지은 농작물이 완전히 쓸려가 망연자실하여 크게 한 숨 짓고 있는 농부 아저씨에게 “감사하십시오”하고 말하는 것 다소 비인간적이고 잔인하게 들리는 것처럼, 코로나로 인해 고난을 통과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감사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이나 삶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뜬 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뜬 구름 잡는 허황된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고난 가운데서도 풍성한 삶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생명의 원리를 우리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한 번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사람이 몸이 아프면 입맛이 뚝 떨어집니다. 몸이 아프다고, 입맛이 없다고 해서 밥을 굶으면 몸이 더 허약해집니다. 그러나 입맛이 없어도 밥을 먹으면, 그 밥 힘으로 몸이 힘을 얻고 건강해집니다. 오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삶에 고난이 찾아왔고, 고통이 있다고 해서 감사를 버리면 우리 삶에 영적인 생명령이 죽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라도 ‘감사’를 선택하면 풍성한 생명을 누리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감사는 우리 삶에 생명을 불어넣습니다. 한 번 우리 스스로를 돌아봅시다. 최근에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한 적이 있습니까? 오늘은 저와 함께 ‘일’, ‘이’, ‘삶’이란 앞 글자를 따서 감사의 세 가지 자세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 일상에 감사하라. 이. 이제까지 도우신 은혜를 감사하라. 삶. 삶의 모든 순간에 감사하라.

1. 일상에 감사하라.
첫째로, 일. “일상에 감사하라” 입니다. 사람들은 주로 큰 일에 대해서는 감사할 줄 알지만, 작은 일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어갈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작은 감사가 큰 감사를 낳는 법입니다. 한 번 따라해 봅시다. “작은 감사가 큰 감사를 낳는다.” 부모님이 $5불 용돈을 줄 때 감사하는 자녀에게는 부모가 $10불도 주고, $100불도 주고 싶습니다. 그러나 $5불 받아도 감사할 줄 모르고 불평하는 자녀에게 더 많이 주고 싶지는 않은 법입니다. 마찬가지로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더 큰 감사의 열매들을 주십니다. 작은 감사가 큰 감사를 낳습니다.
평범한 일상 속에도 감사할 수 있는 요소들은 많이 있습니다. 지금 내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이 너무 힘들면, ‘나는 감사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 삶 가운데 감사할 것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지난 2020년도 한 해 동안 자연재해로 인해 집이나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올해 미국 서부에서 급속도로 확산되어 진행된 산불은 미국 역사상 최악의 산불로 기록되었습니다. 통계를 보니까 올해 캘리포니아에서 산불로 인해서 무너진 건물이 8천 2백개가 넘고, 불에 타 사라진 가정집의 경우는 5만 3천개가 넘습니다.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과 보금자리를 잃어버린 것이죠. 뉴스를 보니 산불로 모든 것을 잃고 망연자실하는 사람들의 두 눈에서 뺨을 타고 눈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오늘밤 잠자리에 누워 추운 바람을 피해 잘 수 있는 보금자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지난 11월 20일 금요일 기준으로 일리노이주에 입원 환자 수가 6천 명이 넘었습니다. 이 중 ICU에 들어가 있는 환자 수가 약 1200명, 산소 호흡기를 사용해야만 하는 환자가 약 600명 정도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이 순간에도 일리노이주에서만 코로나로 인해 6 백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선을 넘나들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 우리가 아프지 않고 건강한 모습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입니까?
코로나19로 여파로 아르헨티나 국민의 35.5%가 빈곤층으로 전락했습니다. 얼마전 까지만 해도 반듯한 직장을 가지고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집세를 내지 못해 거리로 내몰렸습니다. 한 남성은 몇 달전까지만 해도 대형 호텔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경제 봉쇄가 100일 넘게 이어지면서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거리로 나앉게 되었습니다. 추워지는 날씨 속에서 집에서 쫓겨난 수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추위와 사투를 버리며 밤을 지새우고 있습니다. 길거리에서 사망하는 사람이 늘자, 다급해진 부에노스아이레스 시 정부에서는 노숙인들을 위해서 방한용 옷과 긴급식량을 제공했습니다. 정말 우리들은 감사할만한 요소가 없는 것일까요? 생각해보면 얼마나 감사해야 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까?
지난 주일 아침 아무도 없는 교회에서 본당에 올라와 홀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른 것은 구하지 않고 오직 감사의 기도만 올려드렸습니다. 감사할 일들이 너무나도 많더라고요. 기도하기 전에는 내 삶에 부족한 것들, 가지지 못한 것들, 이루지 못한 것들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감사하는 기도를 시작하다 보니 하나님께서 지난 한 해 동안 저와 제 가정에 허락해 주신 복이 얼마나 많은 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어디 가서 남들에게 자랑할만큼 큼직한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제가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 그 자체가 너무 감사한 거에요. 아프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 지금 이 순간까지도 하나님께서 변함없이 먹여 주시고, 입혀 주시고, 필요를 채워 주신 은혜가 너무 감사한 거죠.
무언가 큰 일이 있을 때만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사실 감사할 일이 별로 없습니다. 우리의 일상은 평범한 사건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병원 응급실 혹은 중환자실에 가보면 우리가 얼마나 감사한 삶을 살고 있는지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살아 숨쉬는 것, 두 발로 걸어 다니는 것, 맛있게 밥 먹고, 따뜻한 잠자리에서 하루를 마감할 수 있는 것, 이 모든 일상이 다 주님의 은혜입니다. 저를 한 번 따라해보시겠습니까? “일상의 감사가 일생의 감사가 된다.” 일상에 대하여 감사하는 사람은 일평생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일상에 감사하는 습관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그리하면 감사할 요소들이 얼마나 넘쳐나는지 새롭게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일상 가운데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2. 이제까지 도우신 은혜에 감사하라
둘째로 이, “이제까지 도우신 은혜에 감사하라” 입니다. 인간의 두 눈은 앞에 달려 있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앞만 보고 사는 존재는 아닙니다. 때로는 걸어온 길, 지나온 길을 되돌아봐야 합니다. 본래 ‘추수감사절’이란, 한 해 동안 땀 흘려 농사 지은 곡식을 추수하며 지난 한 해 돌보아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예부터 우리나라 말에 ‘농사는 하늘이 짓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농사는 농부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농부는 열심히 밭을 갈고 씨를 뿌려보지만, 비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만 학수고대할 뿐입니다. 따라서 농부의 정성어린 마음과 손길에도 불구하고 하늘이 도와줘야지만 가을에 풍년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농부의 땀과 정성에도 하늘이 도와주지 않으면 한 해 농사가 망합니다. 이게 어디 농사만 그러하겠습니까?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다 잘 사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남들보다 더 열심히 사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더 힘들게 사람도 있습니다. 때로는 예측하지 못한 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몸이 병들기도 합니다.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생기기도 하고, 자녀들로 인해 속 썩이기도 합니다. 반대로 어떤 분들은 자기가 생각해도 지혜도 부족하고, 능력도 부족하고, 기술도 별로 좋지도 않는데 삶이 수월하게 풀리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컨트롤 할 수 있는 것들보다도, 컨트롤 하지 못하는 것들이 더 많이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없는 요소들이 존재하는 것이죠. 바로 그러한 지점들을 생각하며 우리 삶을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도우셨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까지 걸어온 지난 시간들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지금 이 순간까지 우리들을 도우신 하나님께 감사할 것들이 있지 않습니까?
‘지나온 시간 하나님이 나를 위해 무엇을 도와주셨는가?’하는 분들이 더러 계실 것입니다. 그런 분들과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 번 나누어 보고 싶습니다. 한 사람이 일생 동안 몇 끼를 먹을까요? 우리의 식사량을 계산하기 쉽게 대략 ‘1년에 1천 끼를 먹는다’고 합시다. 50년을 살아가면 5만끼, 60년을 살아가면 60만끼, 70세를 살아가면 70만끼니를 먹은 셈입니다. 이것을 계산해보니까 한 사람이 일평생 먹는 음식물이 평균 62톤이나 된다고 합니다. 엄청난 양입니다. 지나온 시간 굶지 않고 살아온 것조차도 하나님의 크신 은혜입니다. 찬송가 459장의 가사를 기억합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자나 깨나 주의 손이 항상 살펴 주시고 // 모든 일을 주안에서 형통하게 하시네”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것은 모두 다 주님의 크신 은혜 덕분입니다. 이제까지 도우신 은혜를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3. 삶의 모든 순간에 감사하라.
셋째로 삼(언어유희), “삶의 모든 순간에 감사하라” 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은 바꾸어 말하면 “모든 상황 속에서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즐겁고 기쁜 날에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슬프고 괴로운 일들이 가득한 날에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자신이 처한 상황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까?
세상에는 분명 많은 슬픔들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부모님을 잃고 어려운 일들을 겪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린 자녀가 백혈병 혹은 소아암에 걸리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가 자동차 사고로 죽을 수도 있고, 아버지나 어머니나가 암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들과의 영원한 이별은 언제나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과연 이러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감사할 수 있을까요?
분명 삶의 시련들은 우리를 시험에 빠지게 만듭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삶의 시련은 뜨거운 용광로와도 같습니다. 우리는 시련을 통해 연단을 받습니다. 어쩌면 2020년도가 삶 속에서 가장 뜨거운 용광로처럼 느껴지는 분들도 더러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서 우리 영혼은 정화됩니다. 고난과 시련을 통해서 더욱더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됩니다.
시련은 거센 폭풍우처럼 우리들의 삶을 흔들어 놓습니다. 그러나 바람의 흔들림 속에서 나무가 그 뿌리를 땅 속으로 더 깊게 내리듯이, 삶의 시련들을 통해 우리들의 믿음의 뿌리도 더욱 하나님 속으로 깊어집니다. 저를 한 번 더 따라해 봅시다. “시련이란 보자기에 쌓인 하나님의 선물이다.” 보자기에 쌓인 선물은 지금 당장은 그 진가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시련의 보자기가 풀리고, 그 안에 있는 선물을 보게 되면 그제서야 ‘아하’하고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아, 하나님이 그래서 나에게 그런 시련을 주셨구나.” 하나님은 그 사랑하는 자에게 잠만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신학자는 “하나님은 그 사랑하는 자를 시련으로 단련시킨다”고 말했습니다. 성경 속 하나님께 사랑받았던 사람들을 한 번 떠올려 보십시오. 아브라함, 야곱, 요셉, 다윗, 다니엘… 이 모든 사람들이 불 같은 시련을 통해 그들의 믿음이 단련 받았습니다.
명태를 추운 겨울에 밖에 걸어 놓고 얼고 녹는 과정을 반복하면 황태가 됩니다. 명태를 황태로 만드는 것은 다름아닌 추운 겨울 날씨입니다. 겨울이 따뜻하면 황태 품질이 떨어집니다. 그러나 겨울이 추우면 추울수록 황태 수확률이 올라갑니다. 명태는 그 추운 겨울 바람 속에서 얼고 녹는 과정을 반복해가며 색깔도 바뀌고, 그 맛도 확 바뀝니다. ‘명태’보다 ‘황태’가 더 비싼 이유입니다. 시련이 가치를 더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다시 말하면 인생에 따뜻한 봄바람 불 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추운 겨울바람 불때에도 감사하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시련이란 분명 견디기 힘든 고난입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시련을 통해 하나님 앞에 더 한걸음 나아가십시오. 눈물 속에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주님을 더 간절히 찾으십시오. 부디 시련 때문에 하나님에 원망하지 마시고,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지금은 다 이해 못해도 시련의 보자기가 벗겨지는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시련 속에는 하나님이 감추어 놓으신 선물이 있습니다. 등산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등산을 하다 보면 산에 올라갈 때는 분명 보이지 않았던 풍경인데, 산에서 내려갈 때만 보이는 풍경이 분명 있습니다. 희한하죠? 그런데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인생이 잘 나갈 때는 잘 보이지 않았던 하나님인데, 이상하게 우리 삶이 바닥에 닿을 때 더 하나님이 가까이에 계신 것처럼 느껴집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예배 드리고 있는 이 시간, 분명 어떤 분들의 영혼은 추운 시련의 겨울을 보내고 계시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거나, 나 자신이나 가족이 건강을 잃어버려 육신의 아픔에 처해 있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또한 일터에서 어려움을 겪고 계신 분들도 계실 것이며, 특수한 상황 속에서 힘든 시기를 보내고 계신 성도님들도 계실 것입니다. 몸이 아프고 입맛은 없고, 힘은 들지만 그래도 밥을 먹어야 힘이 나고 몸이 병을 이겨내듯이, 고난 가운데 눈물은 흐르지만, 그래도 여전히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의 영혼은 반드시 살아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감자 한쪽을 심으면 60개의 감자를 얻게 됩니다. 벼 한 알을 심으면 180알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수박 씨 하나를 심으면 수백 개 수천개의 수박을 얻을 수 있습니다. 황량한 땅에 도토리 한 알을 심으면 커다란 떡갈나무 숲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심는 것과 수확의 비밀입니다. 오늘 이 복된 주일 ‘감사의 씨앗’을 기도로 심으십시오. 그 감사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셀 수 없는 더 많은 감사의 열매들을 얻게 하실 것입니다. 일상에 대하여 감사하십시오. 이제까지 도우신 은혜를 감사하십시오. 삶의 모든 순간 속에서 감사하십시오. 이를 통해 우리의 삶에 더 크고 놀라운 감사의 제목들이 가득 넘치는 남은 2020년도 한 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