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28 길을 내시고 물을 주신 능력의 하나님 (시편 114편 1-8절)

(시 114:1)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며 야곱의 집이 방언 다른 민족에게서 나올 때에
(시 114:2) 유다는 여호와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은 그의 영토가 되었도다
(시 114:3) 바다는 이를 보고 도망하며 요단은 물러갔으며
(시 114:4) 산들은 수양 같이 뛰놀며 작은 산들은 어린 양 같이 뛰었도다
(시 114:5) 바다야 네가 도망함은 어찜이며 요단아 네가 물러감은 어찜인고
(시 114:6) 너희 산들아 수양 같이 뛰놀며 작은 산들아 어린 양 같이 뛰놂은 어찜인고
(시 114:7) 땅이여 너는 주 앞 곧 야곱의 하나님 앞에서 떨지어다
(시 114:8) 저가 반석을 변하여 못이 되게 하시며 차돌로 샘물이 되게 하셨도다
출애굽 사건은 시편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중요한 주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으로부터 구속하신 사건이기에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 입니다. 시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과거에 출애굽 하던 사건을 회상케 하고 있습니다. 그를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성경을 가지고 계신 분은 114편을 한 번 자세히 보십시오. 7절 한절만 제외하고 모든 구절들이 비슷한 내용을 조금 다르게 두 번씩 표현하고 있습니다. 1절을 예로 봅시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며” 이 표현하고, “야곱의 집이 방언 다른 민족에게서 나올 때” 이 표현은, 사실 같은 이야기를 다르게 말하고 있을 뿐 입니다. 이를 ‘대구법’이라고 합니다. 대구법은 사실을 두 번 다르게 말함으로 그 내용을 강조할 때 사용합니다. 3절도 봅시다. “(시 114:3) 바다는 이를 보고 도망하며 요단은 물러갔으며” 이 역시 똑 같은 내용을 조금 다르게 두 번 표현 한 것입니다. 시편 114편을 지은 저자는 7절 한 구절만 제외하고 시 전체를 대구법으로 사용함으로써 이 내용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그의 독자들에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시의 내용을 한 번 살펴봅시다. 1절은 말 그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오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2절에서 ‘유다가 여호와의 성소가 되다’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여기서 ‘성소’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 입니다. 따라서 유다가 여호와의 성소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유다에 임재하시겠다는 의미입니다. 2절에서 사용된 유다는 뒤에 나오는 ‘이스라엘’을 다르게 표현한 것입니다. 즉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머무실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죠.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3절을 봅시다. “(시 114:3) 바다는 이를 보고 도망하며 요단은 물러갔으며” 바다가 이스라엘 가운데 하나님이 임하시는 것을 보고 도망쳤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바다가 바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때 건넌 ‘홍해’ 입니다. 그런데 대구법에 따르면 바다와 대치되는 단어로 ‘홍해’가 나와야 하는데, 3절을 보니 ‘요단’이란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시인은 모세 때 갈라진 ‘홍해’ 대신에 여호수아 때 갈라진 요단강 사건을 여기 기록해 놓은 것이죠. 홍해 도하 사건과 요단강 도하 사건은 시기적으로 40년 차이가 있는 별개의 두 사건 입니다. 이것은 시인의 실수가 아니라, 홍해 도하와 요단강 도하 사건 둘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하심을 나타내는 초자연적인 사건이기에 두 사건을 같은 구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4절을 봅시다. “(시 114:4) 산들은 수양 같이 뛰놀며 작은 산들은 어린 양 같이 뛰었도다” 수양은 껑충껑충 높이 뛰어다닙니다. 그런데 만일 산들이 수양처럼 뛰어다닌다면 얼마나 큰 일 입니까? 이 모습은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임재 하시고, 그들에게 율법을 주실 때 지진이 발생한 것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주님의 임재로 말미암은 지진을 마치 산들이 수양처럼 뛰놀았다고 기록한 것입니다. 시를 자세히 보시면 3,4절의 내용이 5.6절에서 다시 한 번 반복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인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홍해가 갈라진 사건과 시내산에서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을 때 시내산 전체가 진동한 사건을 강조함으로써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7절에 사용된 ‘땅’이란 단어는 온 피조물들을 대표하는 단어 입니다. 이 세상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 앞에서 떤다는 것은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진다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으로 구원하실 때 바다를 가르시고, 산을 크게 진동시킨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경외하라는 것이죠. 시인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베푸신 놀라운 기적을 이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8절 입니다. “(시 114:8) 저가 반석을 변하여 못이 되게 하시며 차돌로 샘물이 되게 하셨도다” 이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르비딤에서 반석에서 물이 나오도록 하신 사건을 의미합니다. 반석에서 물이 난 것을 마치 반석이 변하여 물이 고여 있는 연못이 된 것처럼 묘사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이와 같이 초자연적인 일들을 행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역사를 살펴보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갖은 고생을 다 겪어야 했습니다. 애굽을 나왔으나, 앞에 바다가 가로 막고 있어 앞으로 나아갈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진군을 가로막은 바다를 반으로 가르심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른 땅을 밟고 바다를 건너가게 하셨습니다. 그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마실 물이 없어 목말라 할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친히 반석에서 물이 나오게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하나님은 친히 광야에 길을 내시고 물을 주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시인은 우리에게 이 위대하신 하나님을 경외하고 찬양하라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이 믿고 따르는 하나님은 과연 어떤 분이십니까? 시인이 과거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상함으로써 그들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상기 했습니다. 그 가운데 그는 바다를 갈라 길을 내시고, 광야에서 물을 내신 하나님을 언급하며 주님의 위대하심을 나타내었습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하나님이 바로 이 위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현재 우리의 힘으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 간구하십시오. 주님께서 놀라운 방법으로 해결할 길을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현재 여러가지 상황이나 환경 속 부족함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지는 않습니까? 광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반석에서 물을 내신 주님께서, 우리 삶의 모든 필요도 풍성하게 채워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홍해도, 광야도 장애물이 되지 않았습니다.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세상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은혜와 도우심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복된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