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11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 (요한복음 7장 10-18절)

유대인의 3대 절기인 초막절이 되자, 예수님의 형제들은 예수님께 공개적으로 드러내 유대로 가라고 요구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자신은 갈릴리에 머물겠다고 말씀 하십니다. 바로 이 장면이 문제가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어제 살펴본 본문과 연결해 본다면,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7장 8절에는 이번 명절에는 예루살렘에 안 올라가시겠다고 말씀하신 후, 10절에서는 자신이 말씀하신 것과 다르게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의 행동이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내용상의 모순이거나, 예수님 스스로 말과 행동이 다른 것도 아닙니다. 8절에서 예수님의 형제들은 예수님께서 공개적으로 예루살렘에 올라가라고 요구 했으나, 예수님은 그러한 방식으로 올라가지 않겠노라고 말씀하신 것이죠. 10절 말씀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수님은 형제들의 기대나 바람과는 다르게 공개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은밀하게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십니다. 10절에 예수님께서 은밀히 가셨다는 말은 비밀스럽게 어떤 일을 하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다른 순례자들과 떨어져서 성 안으로 들어가셨다는 의미 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은밀하게 행동하신 것은 아직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 즉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기 때문 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기 위하여 순종하고 계셨습니다.
초막절 명절을 맞이하여 수도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방문객으로 넘쳐 났습니다. 어딜 가나 사람들의 입에는 ‘예수’의 이름이 오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은 장안의 화제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보기를 원했고, 그를 만나기 위해 찾아 다녔습니다. 민심은 반으로 나눠 졌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병든 자를 치료하고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하기에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안식일 계명을 준수하지 않고,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하게 여겼다고 말하며 예수님을 이단 혹은 사기꾼이라 말하며 비난했습니다.
무리 중에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을 본 사람도 있었고, 그에 대한 소문을 들은 사람들도 있었기에 예수님에 대하여 호의를 가진 자도 있었고, 예수님이 메시아일지도 모른다는 믿음을 가진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이나 제사장과 같은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를 미워했기에, 사람들은 이들이 두려워 공공연하게 말하지는 못하고, 뒤에서 수군거리고 있는 분위기였습니다. 유대인들이 계속해서 예수님을 찾아 헤매었으나 찾지 못했고, 무리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수군거렸지만 그를 보지 못했습니다.
초막절은 본래 7일간 계속되는 명절 입니다. 그러나 하루가 더 추가되어 총 8일간 축제가 이어졌습니다. 14절을 보니 예수님께서 명절의 중간에 무리 가운데 나타나셨으니, 초막절이 시작된 지 4-5일째 되는 날로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명절 중간이다 보니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시기 입니다. 14절에 예수님께서 성전에 올라가 가르치셨다는 말씀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성전에서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당당하게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계시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본문 말씀에 기록되어 있지 않아, 우리는 예수님의 설교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이 얼마나 대단했는지요, 당시 예수님의 가르침을 귀로 듣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그의 권위 있는 말씀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더 놀라워했던 것은 예수님이 나사렛이란 조그마한 촌동네 출신이고, 그의 아버지가 당시 천하고 가난한 직업으로 여겨졌던 목수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 입니다. 15절 말씀을 보십시오. “(요 7:15) 유대인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 유대인들은 여섯 살이 되면 회당에서 율법을 배웁니다. 오늘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있듯이, 예루살렘에는 ‘서책의 집’, ‘설명의 집’, ‘연구의 집’이란 교육 기관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관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학비를 감당할 수 있는 유대 엘리트 층의 자제들이었습니다.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서 예수님은 정규 교육도 받지 못했을 터인데, 그가 이와 같이 지혜롭고 권세가 있는 은혜로운 가르침을 베풀자 사람들은 놀랄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이들은 예수님이 랍비가 되기 위한 정규 교육과정도 다니지 못했다는 점을 앞세워 예수님의 가르침에 정통성이 없다고 깎아 내렸습니다. 무리가 자신의 가르침을 듣고 수군거리자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습니다. 16절 입니다. “(요 7:16)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예수님은 비록 공적인 교육을 받은 기회는 없었지만, 그의 가르침에 권세가 있고 은혜가 충만했던 이유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 입니다.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의 가르침은 랍비들의 전통에서 왔으나, 예수님의 교훈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온 것이기에 전혀 다른 가르침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자신의 가르침을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주장하고 또한 하나님께서 그를 보내셨다고 말씀하시자, 비난하던 무리들은 예수님을 보고 또 다시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그를 더욱 미워했습니다. 이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17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 7:17)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예수님은 누구라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려고 한다면 자신의 가르침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알 수 밖에 없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진심으로 좇아 거룩한 삶을 살고자 한다면, 예수님의 교훈과 가르침이야말로 거룩한 삶에 대하여 가장 적절한 방도를 제공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가르침이 결코 자신의 영광이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교훈은 모두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전한 것이며, 그로 인해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원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바른 동기와 바른 마음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을 가르치는 자신의 교훈에는 그 어떠한 거짓이나 불의가 없다고 당당하게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는 어제 새벽에 갈릴리에 머무시는 예수님을 보며, 예수님께서 크고 작은 일을 행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결정 하셨음을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가르치거나 말씀을 전하는 것에 있어서도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르셨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에 집중하시고 또 그렇게 살아가셨습니다.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입거나 시험에 든 사람은 없을까요? 성도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은혜 가운데서 새로운 힘을 주고, 격려하며 위로하는 말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을 통해 오늘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