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04 권력에 취한 다윗 (삼하 11장 1-13절)

팔레스타인 지역의 겨울은 몹시 춥고 비가 많이 내렸으므로 전쟁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오늘날처럼 추위에 대비한 두꺼운 옷이나 장비가 없었던 시대였기에 왕들은 겨울철에는 전쟁을 피했습니다. 1절을 보면 “그 해과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라고 말합니다.즉 따뜻한 봄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군대 총사령관 요압과 군대를 암몬의 수도 랍바를 공격하기 위해 내봅니다. 분명 1절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었으나, 이스라엘의 왕인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어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왕으로서 다윗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음으로서 그가 지닌 의무를 등한시 하는 모습을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2절 보십시오. 사람은 본래 낮에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2절을 보니, 다윗이 침상에서 일어난 시간이 언제인가? “저녁 때”입니다. 오늘날에야 전등이 있어서 컴컴한 밤에도 활동이 가능합니다만, 고대 사회에서는 밤은 활동을 끝내고 잠이 드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어떤 성경학자들은 전쟁에 나가지 않고 왕의 책무를 소홀히 한 게을러진 다윗이 낮잠을 자고 저녁에 일어난 것은 아닌가? 하고 추측을 해보기도 합니다.

어찌 되었든, 모두가 잠든 컴컴한 밤에 다윗은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을 거닐고 있었습니다. 이 때 다윗은 한 여인이 목욕하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그녀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으나 다윗의 눈에 그녀는 심히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이에 다윗은 사람을 보내어 그 여인이 누구인지 알아보게 하였습니다. 알고보니 그녀는 다윗의 충신인 엘리암의 딸이요, 또 다른 충신 헷 사람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였습니다. 다윗에게는 37명의 용사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바로 밧세바의 아버지 엘리암입니다. 밧세바의 남편 우리야도 37명의 명단에 포함됩니다. 밧세바의 할아버지 아히도벨은 다윗의 모사였습니다. 그러니까 밧세바는 다윗 왕국에서 충신으로 자리 잡은 가문 출신의 여인입니다. 다윗은 자신을 믿고 따르는 충신 집안에 몹쓸 죄악을 저지른 것입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들을 유의해야 합니다. 무엇을 보고 사느냐가 그 사람의 인생을 좌우합니다. 몇 해 전 14살이 된 한 중학생 격투 게임에 빠진 중학생이 호기심으로 초등학생 친동생을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컴퓨터 게임에 탐닉해 사람을 죽이는 것에 호기심을 느낀 이 중학생은 문득 아무런 이유 없이 동생을 죽이고 싶어졌습니다. 그리고 집 안방에서 휴대용 손도끼로 동생의 목을 찔러 살해했습니다. 더 끔찍한 사실은 자기 친구를 만나 “내가 동생을 죽였다”고 털어 놓은 뒤, 제2의 살해 대상을 찾으러 다녔다는 것입니다. 경찰은 인터넷 폭력 게임에 중독된 이 중학생이 게임에 심취한 나머지 사이버 공간과 현실 세계를 구분하지 못하고, 충동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만일 이 중학생이 사람 죽이는 모습들을 눈으로 보지 않고, 아픈 사람을 살리는 모습들, 힘들고 어려운 이웃들을 돌보고 봉사하는 모습들을 그의 눈에 담았다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사람은 무엇을 보느냐가 참 중요합니다. 또한 죄를 지으려는 꾀가 떠오를 때, 그 유혹을 단칼에 차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고, 그 꾀를 실행하려는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렇게 시편에서 신앙의 고백을 했던 다윗이 그만 목욕하는 여인을 보고 음욕에 빠져 죄를 짓는 길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다윗이 전령을 보내어 밧세바를 자기에게 데려오게 하고, 그 여인과 더불어 동침한 것이죠. 성경은 다윗이 이후 여인을 집으로 돌려보내어 마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듯 행동하는 사악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밧세바는 이 일로 다윗의 아기를 임신하게 되고, 이 사실을 급히 다윗에게 알렸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악을 감추고 덮기 위해서, 전쟁터에 나가 적군과 싸우고 있는 그의 충신 우리야를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내라고 총사령관 요압에게 명령했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전쟁터에서 싸움을 멈추고 수도에 도착한 우리야에게, 다윗은 아무 일도 없는 척 전쟁의 상황을 물어보고 그에게 왕이 먹는 귀한 음식들을 하사하며 집에 가서 쉼을 가지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우리야가 그의 집에 돌아가서 아내 밧세바와 동침함으로써 다윗이 임신시킨 사실을 덮으려 했던 것입니다. 다윗이 자신의 불륜을 감추기 위해 얼마나 간사하고 사악하게 움직였는지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집에 돌아가서 편히 쉬라는 왕의 권면에도 불구하고, 우리야는 집으로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왕의 문에서 부하들과 함께 불편한 잠을 자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다윗은 자기의 계획대로 우리야가 움직이지 않자, 그를 다시 불러들였습니다.그리고 우리야에게 물었습니다. “그대는 오랫동안 집을 떠났다 돌아왔는데 왜 집으로 가지 않는가?” 이 때 우리야의 답변은 그가 얼마나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충성되어 살아온 멋진 사람인지를 보여줍니다. “(삼하 11:11, 개정) 우리아가 다윗에게 아뢰되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야영 중에 있고 내 주 요압과 내 왕의 부하들이 바깥 들에 진 치고 있거늘 내가 어찌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처와 같이 자리이까 내가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기로 왕의 살아 계심과 왕의 혼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나이다 하니라”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모두 장막을 치고 지내며, 저의 상관이신 요압 장군과 임금님의 모든 신하가 벌판에서 진을 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저만 홀로 집으로 돌아가서, 먹고 마시고, 나의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 할 수가 있겠습니까? 임금님이 확실히 살아 계심과, 또 임금님의 생명을 걸고 맹세합니다. 그런 일은 제가 하지 않겠습니다.”우리야는 지금 그가 치르고 있는 전쟁을 여호와의 거룩한 전쟁으로 인식하고 있는 충신 중의 충신이었습니다. 신명기 23장 말씀을 보면, 여호와의 전쟁 중에는 성행위가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하여 집에 돌아가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충성스런 우리야와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다윗을 대조하며, 다윗이 얼마나 사악한 일을 저지르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다윗은 한 번더 우리야를 집으로 돌려 보내기 위해서 13절 말씀을 보니 그를 따로 불러서 맛있는 음식을 먹게 하고 술에 취하게 만들었습니다. 다윗은 우리야가 술에 취하게 되면 판단력이 흐트러져 집에 돌아갈 줄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충신 우리야는 술에 취하고도 주의 부하들과 더불어 불편한 곳에서 잠을 잘 뿐, 그의 집으로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우리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면 그로 하여금 그의 아내 밧세바와 동침하게 하여, 그녀가 임신한 아이가 우리야의 아이라고 주장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야의 충심으로 인해 다윗의 계략은 수포로 돌아가게 됩니다.

다윗은 찾아온 유혹을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유혹을 받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으나, 유혹이 유혹으로 끝나도록 해야 합니다. 유혹에 넘어가면 아무런 변명의 여지도 남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잘 돌보라고 다윗에게 왕의 권력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서 주신 왕의 권력을 가지고 밧세바를 불러들여 죄악을 짓는데 사용했습니다. 또한 다윗은 자신의 죄가 드러남으로써 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여러 차례나 주어졌음에도 끝까지 자신의 추악한 죄를 은폐하려고 시도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다윗이 지은 더 큰 죄악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유혹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으로 주신 삶의 요소들을 가지고 죄악의 자리에 나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또한 성령께서 깨닫게 하신 죄가 있다면, 그 어떤 추악하고 더러운 죄라도 반드시 은폐하지 말고 주님께 가지고 나아와 진심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는 자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죄악에 대하여 용서를 구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붙드는 자에게 죄사함의 자비가 주어집니다.